도시의 두 얼굴

미국_로스앤젤레스

by 인디

LA와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도로에서는 사고가 잦다는 말을 들었었어.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굽이치는 산악 도로도 속도 제한 없이 달리는 아우토반도 아닌 직선의 도로가 그런 악명을 가지고 있다니 의아했어. 가는 길 내내 옆으로 보이는 건 옥수수밭뿐, 몇 시간을 달려도 바뀌지 않는 풍경에 졸음운전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더라고. 결국 사람에게 치명적인 건 지루함인가,라고 생각했었지.


나를 태워갈 야간 버스는 샌프란시스코의 밤에 출발해 LA의 새벽에 당도하는 일정이었어. 내 옆 자리의 사람은 자신의 담요를 같이 덮자고 제안했고 나는 한 번은 거절했지만 두 번째 권유는 거절하지 못했어. 왠지 모를 찜찜함에 (분명 호의뿐이었을지 모르지만 잔뜩 경계했지) 담요의 끄트머리만 당겨서 덮었어. 분명히 경직된 채 있었던 것 같은데 인간 잡초는 어느새 잠들어 도착할 때까지 푹 잤지만 말이야.


검푸른 새벽에 LA의 다운타운에 도착했어. 걷다 보면 해가 뜰 텐데, 돈은 부족해도 시간과 체력은 넉넉한 나는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했지. 골목을 돌자 양쪽으로 늘어선 도로에 노숙자가 가득했어. 각자의 담요나 옷가지를 덮고 자신의 전재산이 담긴 쇼핑카트를 곁에 둔 채로 도로에 빼곡히 늘어서 자고 있었지. 일찍 깬 일부 사람들은 기대어 앉아 있기도 했고 이발 봉사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의 머리를 다듬어 주고 있었어. 새벽안개 때문인지 그 모든 장면은 흑백 영화처럼 회색으로 보였어.


인도에서도 종종 슬럼가를 지나쳤었지만, LA에서는 만날 거라 생각지 못했던 광경이었지. 얼마나 그 거리에 서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아마 몇 분, 사실은 몇 초였는지도 모르지. 정신을 추슬러 블록을 벗어나는데 어떤 남자가 손을 앞으로 내밀고 말을 걸어왔어. 사실 뭐라고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고개를 젓자 욕설을 내뱉었어. 무서웠지만 희미하게 밝아오는 햇빛 덕인지 도망칠 정도는 아니었어. 아니, 그냥 몸이 굳어 버린 걸지도 모르지만. 다운타운을 벗어나 멍한 채로 언덕을 오르는데 떠오르는 해를 뒤로 어떤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어. 그 건물에는 멀리서도 선명히 보이도록 CITY OF HOPE이라고 쓰여 있었지. 씨, 이게 무슨 희망의 도시야. 눈물이 터졌어. 그날 아침 나는 아무런 희망을 보지 못했거든.


사람이 살기 좋은 LA의 기후는 (역세권을 부르짖는 우리와는 다르게)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사는 부자들도 시내의 가장 낮은 곳에 지내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매력적이었을 거야. 적당한 온도와 기분 좋은 햇살은 누구나 공짜로 누릴 수 있으니까. 미국은 나에게 어느 나라보다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던 곳으로 기억해. 그 다양성의 혼재를 보며 연민이나 선망이, 고도화된 자본주의가 가진 편리나 극단의 이면까지, 해결되지 않고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엉켜가는 기분이었어. 나에게 여행은 일상을 벗어난 비현실적인 경험이면서도 일상을 핑계로 미뤄둔 현재에 대한 질문에 대면하는 시간이기도 하더라고.


집돌이인 너희들이 언젠가 다른 세상이 조금 더 궁금해질 때 꼬물거리며 시작할 너희의 여정을, 너희를 찾아올 질문과 너희만의 답을 담은 모험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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