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삼키는 밤

폴란드_크라쿠프

by 인디

회사를 오가는 지옥철을 탈 때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를 떠올리곤 했어.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출퇴근 시간의 9호선 급행열차는 타인과의 적절한 사회적 거리를 쥐어짜 한 덩어리가 된 사람들의 인류애를 휘발해 움직이거든. 아우슈비츠 정문에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쓰여 있기도 했으니 급행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사람들이 각자의 노동 현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그 아이러니마저 비슷하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폴란드에 가기 전까진 홀로코스트가 나에게 굉장히 심각하고 중요한 것은 아니었어. 여러 영화나 문학에서 유대인 학살이나 강제 수용소를 접하긴 했지만 우리나라와 연관된 역사는 아니다 보니 좀 멀게 느껴졌달까. 아우슈비츠를 방문하기 위해 폴란드에 가야겠다, 가 아니라 폴란드에 가면 아우슈비츠에 가봐야겠다, 정도의 희미한 의지만 가지고 있었던 거 같아.


아우슈비츠에 가던 날은 날씨가 너무 흐렸어. 해마저 없는 겨울날, 그곳에서는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얼어붙었지. 지금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모든 공간에 슬픔과 절규로 가득 차 있었어. 학살되고 고문당하던 장소뿐 아니라 그들에게 빼앗은 칫솔, 신발, 머리카락 더미를 보면서 사람의 생명이 저런 것들보다 더 가치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지. 몇 번이나 그곳을 떠나고 싶기도 했어.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이곳의 이 악문 의지가 느껴져서 도저히 그럴 순 없었어. 피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참혹한 만행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절망을, 평범한 인간이 경계하지 않으면 얼마나 쉽게 악해질 수 있는지를. 목구멍에 차오르던 뜨거운 무언가를 계속 삼켜야 하는 시간이었어.


감당하기 힘든 비극의 현장에서 돌아오자 사람의 온기가 절실했어. 호스텔에서 만난 소녀(이곳에 오래 머물며 아우슈비츠의 사진을 찍고 있다고 했어)와 함께 나가 빈 속에 마신 맥주 한 잔에 취해서 숙소로 돌아왔던 기억이 나.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괜히 크게 떠들고 웃었던 것 같아.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겁먹게 되는 그런 낮을 보내고 나면 술이 없으면 정말, 정말 잠들기 힘든 밤이 찾아오거든.


그 후로 동선이 허락하는 선에서 유대인 거주 구역을 부지런히 찾아다녔어. 그들이 평범한 인간임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고, 그들이 인간성을 말살당한 공간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재하던 공간을 보고 싶었는지도 몰라. 그 지옥을 가로질러 생존한 사람들이 혹은 그 주변인들이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지는 감히 짐작하지도 못하지만 말이야.


너희가 크면 어떤 일을 하게 될까. AI가 일단 많은 직업을 삼킬 테니 인공지능에게 잠식되지 않은,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일을 하게 되겠지? 앞으로 어떤 업들을 경험하게 될지 모르지만 너희도, 나도 인간이라는 직업만큼은 죽을 때까지 그만두지 못할 거고 사람답게 사는 그 책임만큼은 성실하게 해내자, 하고 바라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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