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하루를 만나는 법

오스트리아_잘츠부르크

by 인디

나는 진짜 좋아하는 건 혼자서도 잘한다고 생각해. 내가 혼자 거뜬히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혼자일 때 더 만끽하기도 하는 것은 여행, 영화 보기, 빈티지 쇼핑이야.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세 가지가 모두 있는 완벽한 날이었어.


잘츠부르크의 호스텔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꿈지럭댔어. 야무진 여행객들은 모두 서둘러 하루를 시작한 후였지. 공용 공간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켜두었는데 거의 끝나가고 있었어. 언젠가 보긴 봤었지만 기억이 희미해서 이번에 제대로 보기로 했지. 영화가 끝나고 다시 영화가 시작했어. 나는 그곳에 혼자 앉아 영화를 한 장면 한 장면 음미했지. 발가락을 까딱거리며 좋아하는 OST도 즐겼어. 비로소 내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시에 왔다는 실감이 나서 마음이 부풀었어. 이제 밖에 나가면 마리아의 수도원도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던 곳도 결혼식 장소도 모두 가 볼 수 있으니까.


느지막이 밖에 나가 보니 어떤 광장에 플리마켓이 열려 있었어. 마을 사람들이 내놓은 손때 묻은 물건들을 찬찬히 구경했어. 한때는 그들에게 소중했을 수도 있고 처치곤란 애물단지였을 수도, 아니면 그저 잊혔을 수 있는 물건들 사이에서 나의 보물을 찾는 것은 항상 짜릿하고 재미있더라고. 마음에 드는 엽서를 몇 장 사고 나니 큰 수확이라도 한 양 기쁨이 차올랐지.


들뜬 기분으로 수도원이니 정원이니 마을을 쏘다니다가 해가 질 무렵이 되었는데도 아직은 숙소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야. 꽁꽁 언 발로 괜히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어느 모퉁이의 계단을 따라 올라갔어. 천천히 굽이진 계단을 오르다 보니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당도했어. 머리와 어깨에 눈이 쌓인 마을은 어스름한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따뜻한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지.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온 마을의 종들이 울리기 시작하는 거야. 소리, 박자와 깊이가 모두 다른 종소리가 겹겹이 쌓여 내가 있는 이 세상을 가득 메웠어.


우연한 장소에서 기대치 않은 아름다움을 만난 황홀함에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봤어. 아무도 없었지. 누구라도 붙잡고 진짜 아름답지 않아? 하고 이 감동을 나누고 싶은데, 정말 아무도 없는 거야. 이 멋진 순간을 나누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갑자기 어찌나 외롭던지.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처럼 ‘정말 드문 완벽한 하루를 보냈는데 왜 최고로 행복하질 못 하니!’ 하며 가슴을 칠 노릇이었지.


잘츠부르크를 다시 방문했을 때 나는 그 아름다움을 할머니에게 꼭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해질 녘에 많은 계단을 올랐어. 근데 그날의 공기와 시간과 장소를 도저히 못 찾겠더라고. 잔뜩 벼른 나에게는 온통 긴가민가한 계단과 긴가민가한 언덕들 뿐이었어. 할머니와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았다면 더 좋았을걸, 하고 뒤늦게 후회했지.


사실 계획 없는 여행은 실망할 일이 없어. 계획대로 되지 않을까 봐 조바심 날 일도 없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만 견뎌낼 수 있다면, 우연히 들어간 그저 그런 맛집에도 호들갑 떨고 의외의 장소에서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하거든. 물론 대부분 피로는 두 배고 우여곡절은 세 배로 엉키지만 그만큼 진한 기억이 남더라고. 그러니 어떤 날 너희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계획이 없다고 너무 조바심 내지 마. 그 엉킨 하루 속에서 예상치 못한 멋진 순간을 만날지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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