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할머니를 꿈꾸며

스위스_루체른

by 인디

물가는 여행의 속도에 영향을 미쳐. 이 비싼 하루를 효율적으로 쪼개서 어디도 가고 무엇도 보고 하느라 시선도 마음도 쫓기기 시작해. 게으른 여행자인 나도 스위스의 며칠은 꽤나 부지런히 돌아다니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나름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숙소로 향하던 늦은 오후, 별것 없는 드넓은 풀밭 가운데에 의자를 놓고 햇볕을 쪼이며 책을 읽고 계시던 할머니를 봤어. 파랗고 청명한 가을날은 해가 꽤 낮아졌음에도 여전히 기분 좋게 선선했지. 잰걸음에도 고개를 꺾어가며 그 모습을 오래 바라봤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저런 일상의 여유를 누리는 스위스 할머니가 너무 부러웠어. ‘할머니’보다는 ‘스위스’에 방점이 있었기에 스위스에 산다면 마치 나의 일상에도 저런 여유가 깃들 것 같은 환상에 젖었지. 그래서 스위스를 그릴 때면 어김없이 그 할머니를 기억했어.


내 일상의 어느 날, 점심시간을 쪼개 가을빛을 즐기려고 공원을 걸었어. 풍경은 여유롭지만 그 풍경을 가르는 내 발걸음은 여전히 재고 바빴지. 낙엽 쌓인 풀밭을 걷다가 문득 스위스 할머니가 또 떠올랐어. 어쩌면 스위스인이라서가 아니라 할머니라서 아닐까. 그녀도 고되고 쓴 시절을 애써 견디고 지나 할머니가 되어서 비로소 얻은 여유일 거라고, 그것을 내가 섣불리 질투해서는 안된다, 뭐 그런 생각이 스쳤어.


돌이켜보면 고등학생 때 나는 빨리 할머니가 되고 싶었어. 매일 억지로 눈을 떠야 하는 만성 수면부족인 고딩에게 원하면 잠을 실컷 잘 수 있는 (혹은 잠이 적어져 더 이상 졸리지 않은) 할머니의 삶, 얼마나 꿈만 같겠어! 성인이 된 이후에는 비단 잠 때문이 아니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대한 갈망으로 막연히 할머니의 삶을 이상화하기도 했어. 할머니가 되면 능력이나 가치를 증명하려는 욕심이나 부채감도 내려놓고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더 내 멋대로 살아도 되는 궁극의 자유가 생길 것 같았지. 그런 기대감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노화의 공포와 슬픔을 애써 떨쳐보기도 했어.


근데 그런 삶은 생의 주기에 따라 저절로 얻어지는 건 아닐 거야. 실은 내 마음의 상태를 가늠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게 무엇인지, 내가 소박하고 어쩌면 궁상맞을 때도 있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을지, 그것에서 진정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일지 같은 것들 말이야. 그런 것들이 좀 더 뚜렷해지면 나이와 상관없이 스위스 할머니의 삶에 가까워질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할머니를 꿈꾸던 건 너희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마음과 비슷할지 모르겠다. 다다를 미래에서 만날 기쁨과 슬픔에 대해 한 치 앞도 모르면서 그저 순진하게 기대하니까. 좋든 싫든 우리는 어김없이 생의 단계를 밟아 그곳으로 갈 테니 일단은 지금을, 할 수 있는 한 즐기며 살아내야겠지.


+

덧) 그래도 너희보다 한참 전에 성인이 된 나는, ‘엉망이고 힘들지만, 너도 좋아하게 될 거라고.(It sucks. You're gonna love it!)’ [프렌즈]의 모니카처럼 말해줄 수 있을 것 같긴 해.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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