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의 빵

페루_ 쿠스코

by 인디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쫓기듯 남미로 갔는지 모르겠어. 첫 직장을 퇴사한 날 (출근 마지막 날까지 야근을 했지.) 밤에 가방을 싸서 그다음 날이 출국이었어. 공항 검역소에서 황열병 주사를 맞고 겨우 떠날 준비가 끝났어. 인천을 출발해 일본과 미국을 거쳐 비로소 리마에 도착했을 땐 이틀 후 (삼 일 후인가?) 새벽이었어. 한산한 공항의 불 꺼진 식당 앞 의자에 앉아 무작정 해가 뜨길 기다렸지.


리마는 온통 회색이었어. 날이 흐리고 꿉꿉해서 시선 가는 곳마다 뿌연 느낌이었지. 리마와는 빠른 작별을 고하고 쿠스코로 향하기로 했어. 저녁에 출발하는 쿠스코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컨디션이 안 좋았어. 크게 아프지 않고 쉽게 지치지 않는 돌쇠 타입이었던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어. 일단 맥도널드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먹었지. 처음엔 분명 앉아있었는데 어느덧 의자 위에 스러져 누워있었던 것 같아. (다국적 대기업의 서비스에 기대야 할 때를 기억하렴ㅎㅎ)


그래도 이층 버스의 제일 앞자리에 배정받아서 기분이 좋았어. 넓은 창으로 풍경을 보다가 푹 자면서 가면 되겠다고 희망에 차있었지. 그런데 럭셔리 버스는 아니지만 분명 몸을 꽤 뉘일 수 있는 2등석 침대 버스였는데 의자를 젖히고 살짝 잠들었다가 깨면 이상하게 등받이가 세워져 있었는 거야. 다시 젖히고 뒤척이다 보면 또 세워져 있기를 반복했지. 참 운 좋게도 고장 난 자리를 배정받았던 거야. 밤새 90도로 앉아있는 것도 지치고 입맛이 전혀 없어서 간식조차 입에 대지 않았어. 비몽사몽 속에 버스는 끝없이 달렸어. 들이었나 산이었나 바깥 풍경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어느 산 위의 휴게소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린 나는 다시는 저 버스에 올라탈 수 없다고 생각했어. 절대, 절대! 망연자실해서 앉아 있는데 어떤 페루 커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어. 죄송해요, 스페인어를 이해할 수 없어요.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더니 그들은 먹는 시늉을 했어. 무엇을 먹을 거냐는 뜻일까? 속이 안 좋아서 주스를 마실까 해요. 음료 가판대를 가리키며 말했어. 그들은 빵 가판대를 가리키며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어. 빵집에서 파견한 사람들인가? 난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 저으며 꿋꿋이 주스만 가리켰지.


쥬스무새인 나를 포기하고 떠났던 그들이 빵 한 봉지를 들고 돌아와 나에게 내밀었어.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니 먹으라고 재촉했어. 빵에 이토록 진심인 사람들이라니. 그들을 더 이상 실망시킬 수 없어 우물쭈물 빵을 하나 집어 바싹 마른입에 욱여넣었지. 빵을 우물거리며 앉아있는데 놀랍게도 메슥거리던 속이 좀 가라앉고 맥없던 몸에 기운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어. 그들은 웃으며 빵을 봉지째 안겨주었지. 21시간의 90도 정좌 수련 끝에 쿠스코에 도착했을 때, 한 봉지의 빵을 모두 먹어치운 나는 완전히 살아나 있었어. 그 뒤의 여정 동안 흔한 배탈도 없이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았어. 페루 천사들이 준 빵은 완전 무적이었다니까.


알고 보니 고산증에는 빵과 같은 탄수화물을 먹어줘야 한대. 피로한 몸에 황열병 접종, 긴 비행에 이어 장시간 버스를 타고 고산지대로 이동하면서 고산증이 왔었나 봐. 나약한 아시아인이 비실거리는 것을 보고 따뜻한 페루인들이 응급처치를 해 준거지. 말도 통하지 않는 이방인을 위해 애써 빵을 사다 준다는 거, 절대 쉬운 일이 아니야.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은 (그러나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자발적 친절을 베푼 적이 있었는지 혹은 도움을 바라는 사람에게조차 무심한 적은 없었는지, 그들은 나를 곰곰이 되돌아보게 했어.


가끔은 친절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 같을 때가 있어. 친절과 참견의 경계에서 망설일 때도 많지. 도와줄까 싶다가도 내가 상대의 세계에 눈치 없이 끼어들어 그 세계의 질서를 해치는 건 아닐까 하고 주저하게 되잖아. 그 미묘한 타이밍, 친밀도, 분위기와 상대의 반응을 가늠해 보기에 지쳐 마음 편한 각자도생의 외길을 자주, 주로 선택했지. 그 길에 익숙해질수록 선뜻 친절을 베푸는 것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기만 했어.


그런데 무적의 빵과 그들의 친절이 주었던 온기를 기억할 때면, 조금 손해 본다 해도 조금 뻘쭘해진다 해도 나도 더 친절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겨. 상대의 여지를 좁히거나 해치지 않는다면 가끔은 먼저 친절을 베풀어 누군가의 하루를 잠깐이라도 밝혀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달까. (삐끗해도 뭐 지나가는 오지라퍼 밖에 더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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