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_남해
분명 시작은 전주영화제였는데 청산도를 거쳐 진주를 지나 남해에 도착해 있었어. 5월의 신록을 따라 무작정 길을 걷다 보니 남해 바다를 보러 가고 싶더라고. 지금 오는 저 버스를 타라며 재촉하시는 동네 어른들의 말씀을 따라 황급히 버스에 올라탔어. 기사님께서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으시기에 상주은모래비치요, 했더니 버스비를 알려주시더라고. (꽤 오래전이라서 남해 지역엔 아직 버스 카드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 해변은 뭐, 당연히 아름다웠지. 은모래라는 명성에 걸맞은 반짝이는 고운 모래사장과 청량한 빛의 바닷물, 귀엽게 솟아있는 작은 섬들이 완벽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어. 오고 가는 너울을 바라보면 한 시간이나 앉아 있었을까, 이제 다시 온 길을 되짚어가려고 반대 방향에서 오는 똑같은 번호의 버스를 탔어. 요금을 내려는데 기사님께서 갑자기 아까 타신 분이죠, 하시는 거야. 해변을 올 때 탔던 버스가 종점을 돌아서 다시 돌아왔던 거지. 기사님은 아까 요금 계산을 잘 못 한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며 몇 백 원의 돈을 돌려주셨어.
그 사소한 일은 묘하게 마음에 남아 돌아가는 버스의 차창을 바라보며, 일상으로 돌아오고도, 아니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곰곰이 생각하게 했어. 기사님 외에는 아무도 모를 대수롭지 않은 작은 실수가 기사님의 마음에는 크게 남아 있었다는 것, 우연히 다시 만난 나를 알아보고 그냥 넘길 수도 있었던 실수를 정정하려고 했던 태도에 대해서 말이야. 내가 속한 사회 구조가 정의롭다고만 말할 수 없고 TV에서는 정의와는 거리가 먼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어도, 내 주변 일상의 사람들은 이렇게 습관적인 정의를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그래서 그들 덕에 실제 내 피부에 닿는 세상은 안전하고 살만하다고 느끼게 되는 거겠지. 결국 내 옆의 사람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태도가 모여 진짜 사회의 모습을 결정하게 될 거라고 믿으니까.
누군가를 의식해서 한 행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시선에 의해 옳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작고 큰 파급력을 가져. 선의는 전염되고 선의의 기억은 각인되거든. 그 기사님이 일으킨 잔잔하면서 묵직한 파동이 나를 반추하게 하고 더 정의로워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듯이 말이야. (가르침을 실천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은 아주 조금이라도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각도를 틀어놨을 테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꽤 큰 변화로 이어졌을 거야. 결국 그날 그분의 작은 행동이 나의 사람에 대한 믿음, 타인에 대한 기대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에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 그분은 영영 모르실 테지만.
너희에겐 하루 종일 서로를 감시하며 고자질하기도 하고, 때론 한 편이 되어 눈 감아 주기도 하는 서로의 눈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도 감시받고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나의 멋지지 않은 순간을 지켜보는 내가 있을 테니까. 나 역시 달콤하고 아늑한 익명성 뒤에서도 피할 수 없는 나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담금질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