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 나에게 남긴 흔적 중 하나는 인내심이다. 빈번한 소홀함에 상처받지 않고 자잘한 불편에 불평하지 않으며 경미한 통증 정도는 가볍게 견딘다. 누가 물으면 괜찮아,라고 답하고 그러고 나면 진짜 괜찮아진다. 어차피 부족한 거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 하고 가난에서 비롯된 경험 혹은 무경험을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담담해지고 한편으로 무뎌진다. 가난은 아이를 그렇게 기른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대다수의 사건들이 축소된다. 마치 번호표 뽑고 기다린 듯 닥치는 크고 작은 사건에 크게 호들갑 떨지도 않고, 사람들과 주고받는 씁쓸한 냉소와 비아냥들도 잘 삼킨다. 아픔도 여전히 잘 견딘다. 증상들이 있어도 이 정도는 뭐,라고 생각하기에 이미 진단을 받으면 꽤 멀리까지 간 경우가 많다. 참고 참다가 잇몸과 이가 다 상해버려 젊은 나이에 틀니를 해야 했던 엄마까지 가지 않아도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십이지장궤양과 복합적인 위장 문제를 발견한 때에도 그랬고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참았냐고 물으셨다. 참 미련했다) 이후 자궁근종이나 여러 건강 문제들도 그러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처받고 아려도 금세 잊기 일쑤고 내가 덜 즐겁고 힘들어도 상대에 맞추기 십상이다. 미련하게 유지되는 관계 속에서 길을 잃고 자존감이 깎여나가거나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이게 아닌가, 하고 들여다볼 때도 있다. 종종 지금 얽힌 관계를 털고 훌쩍 떠나고 싶어 하는 나를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즐거움만큼 부담감으로 엮여있는 관계도 적지 않다고 짐작해 본다. (관계 유지 비용에는 서로 그런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예민하지 않게 구는 사람이 정말 예민한 사람일 수 있다는 누군가의 진단에 크게 고개를 크게 끄덕였을 것이다.
결국 작은 상처나 아픔에 무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세심하게 돌보지 않게 되고, 증상이 커져서야 돌아본다. 인내심이 미덕만은 아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