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이 맞는 걸까 싶을 정도로 웃자란 풀들을 헤치고 - 중간에 만난 할아버지께서 쭉 올라가면 된다고 조언해 주시지 않았다면 쫄아서 되돌아갔을지도 모른다 - 언덕에 올라선 순간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굽이치는 풀들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평일 아침 당포성은 아무도 없었고 제멋대로 자란 풀들은 주말이라고 크게 상황은 다르지 않을 거란 걸 말해주었다.
통영의 웬만한 언덕은 모두 오를 가치가 있다. 올라서면 보이는 바다와 그 바다에 무심한 듯 신중하게 놓인 오밀조밀한 섬들. 가까운 섬들은 질감과 색감이 모두 입체적이고 또렷했지만 머얼리 섬들은 운무에 가려 짙고 옅은 아련한 음영으로 보였다. 한 폭에 담긴 다양한 느낌에 시선을 가까이 두었다 멀리 두었다 하면 오랜 시간 바라봐도 질리지 않았다. 각각의 섬도 가까이 보면 저마다의 북적임이 있을 텐데 멀리서 바라보는 섬들은 한없이 고요했다.
풍류를 알았던 조상님들은 산수가 아름답고 풍경이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정자를 세워두었다. 아무도 없는 정자에 앉아 고요와 바람을 즐긴다. 풍화되고 스러진 옛 유적은 예전의 위풍이 온전하지 않아도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져 좋다. 되려 내가 예전의 모습을 상상해 채워 넣을 수 있어서 더 좋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장소라면 아무런 방해도 없이 기꺼이 더 나래를 펼쳐볼 수도 있다.
내려오다 보니 가을 손님맞이를 기대하듯 풀깎이가 한창이었는데 푸릇한 풀냄새가 상쾌했다. 새로 지은 크고 번듯한 주차장을 보면 앞으로의 매력 어필에 대한 포부가 느껴지기도 했다. 올라온 길이 아니라 주차장을 지나 내려가며 이렇게 멀쩡한 길이 있었는데 대체 왜 지도는 그 지름길을 가르쳐줬는지 의아했다. 지도도 당포성 가는 길에는 서툰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