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걸지 않은 삶

중국_마카오

by 인디

처음으로 겜블링을 본 것은 라스베이거스에서였. 공간을 가득 메운 화려한 불빛과 소리, 번뜩이는 사람들의 눈빛에 압도되어 잔뜩 긴장한 채 슬롯머신 앞에 앉았지. 5달러는 쪼잔한 느낌이고 10달러는 너무 많으니까, 매우 적당한 7달러를 기계에 넣으며 어디선가 주워들은 대로 따면 그만둬야 한다, 따면 그만둬야 한다고 비장하게 되새겼지. 서툰 손길로 기계를 돌리다가 근데 이거 재밌는 거 맞는 건가 의아해하던 찰나 오, 7달러 50센트를 땄어. 의지의 인간은 배운 대로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지. 어차피 큰돈도 없는데 그냥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게 앉아있었더라면 달랐을지 모르지만 쫄보의 경험은 시시하게도 거기까지였지.


카지노는 할머니(그러니까 나의 엄마)와 함께 간 마카오에서 다시 구경할 수 있었어. 이런 거 재미없어하시겠다 싶어 대충 둘러보고 가려고 했는데 웬걸, 처음 보는 낯선 광경에 할머니는 완전 매료되었어. 우리가 주로 구경한 건 홀짝과 같은 어렵지 않은 룰을 가진 게임이었지. 하지만 그 간단한 게임 안에서 오가는 돈은 전혀 간단한 돈이 아니더라. 할머니는 자기 돈도 아닌데 누가 돈을 따기라도 하면 이제 얼른 그만하고 가라고 발을 동동 구르고 돈을 잃으면 어떡하냐며 혀를 찼어. 아마 저기에 앉은 사람들은 돈이 돈으로 안 보일걸? 하며 (나도 잘 모르는 주제에) 거들먹거리며 말했지만 겜블링을 구경하는 할머니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지.


- 5만 원 걸고 우리도 해볼까? 눈을 떼지 못하고 구경하는 할머니에게 제안했지.

- 뭐 하러 그 돈을 버려.

- 어차피 홀짝이니까 서로 반대로 걸면 하나도 안 잃잖아.

- 그럼 하나도 재미없는데 뭐 하려 해.

- 그럼 그냥 5만 원 없어질 때까지 해보지 뭐.

- 왜 아까운 돈을 써. 대화는 무한루프 속을 헤매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할머니 말이 맞아. 내가 제안한 절대 잃지 않는 필승법은 홀이 나오든 짝이 나오든 상관없지만 상관이 없기에 재미도 없겠지. 아무것도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지 않겠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처럼. 이건 감정으로도 경험으로도 마찬가지 일거야. 상처가 두려워 마음을 사린다면, 실패가 두려워 시작도 하지 못한다면, 낯선 게 두려워 항상 익숙한 선택만 한다면 감정의 진폭도 적어질 테고 다양한 질감의 경험을 얻지도 못할 거야. 감정의 온도, 기억의 밀도, 서사의 두께 모두 안전한 정도로만 쌓이게 될 테니까.


나이가 들어가며 이리저리 두드려 맞아 마음의 탄성은 둔해지고 어딘가에 베팅할 만한 마음의 여유조차 남아있지 않은 기분이었는데, 요즘은 다시 조금은 마음을 걸어볼까 싶기도 해. 내 삶의 테이블에 조금 더 배팅해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달까. 이건 어쩌면 좀 잃더라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나에 대한 믿음이 되돌아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무엇이든 좋은 징조 같아. 그 끝엔 어쩌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큰 손해 보는 날들이 더 많을 거야. (적어도 난 그런 것 같아.) 그래도 그만큼 경험은 다채로워질거고 그것은 잃어보지 않으면, 잃어야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것일 거라 믿어. 너희도 잃을까 주저하게 될 때 한 뼘씩만 더 용기를 내길 바라며. (근데 겜블링은 안 하는 게 맞단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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