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_자다르
크로아티아에서 남쪽으로 이동 중에 자다르라는 도시에 들르게 되었어. 그저 하루 쉬어갈 생각이었던 터라 숙소에 짐을 맡겨 두고 산책이나 할 겸 어슬렁 거리고 있었지. 자연스레 낮은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 바닷가로 향했어. 가까이 다가가도 연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어. 그렇게 바다 오르간을 만났지. 바다 오르간은 2차 대전 후 콘크리트로 재건되어 있던 삭막한 해변을 건축가가 재생시킨 악기이자 예술 작품이었어.
바다가 노래를 하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하고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겼어. 바람과 중력이 만들어 내는 파도가 인간이 준비해 둔 악기를 연주해. 비슷한 반복은 있을 수 있지만 단 한 번도 똑같은 연주를 하지 않아. 정해진 악보도 없고 어떤 의도도 없지.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연주를 듣는 관객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다른 감정이 차오를 거야. 무성의한 단조로운 소리가 시시할 수도, 내 안의 무언가와 조우해 벅차오를 수도 있겠지. 어쩌면 음악이라고 정의할 수도 없을 불규칙적인 소리겠지만 나에게는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지 않고 그저 자연이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음악이었어.
바다 오르간 옆에는 태양의 인사(greetings to the sun)라는 조형물이 어둠이 내리면 화려한 빛을 내뿜기 위해 낮 동안의 햇빛을 충전하고 있었어. 패널 위에 반짝이던 석양빛과 윤슬을 머금고 반짝이는 바다가 들려주는 음악이 얼마나 황홀하던지 나는 해가 지고 어두워지도록 해변을 떠나지 못했어. 느리지만 확실하고 묵직한 바다의 연주, 그날의 연주는 그랬어. 화가 난 어떤 날은 더 빠른 템포로 잔잔한 날은 조금 더 속삭이듯 가볍게 연주하겠지. 날씨와 시간에 따라 매일 다른, 오직 그 순간에만 단 한 번 존재하는 연주라니, 멋지지 않아? 그렇게 우연히 도착한 그곳이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가 되었지.
인간이 창조하고 소비하는 패턴에서 벗어나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공공예술이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곳. 인간이 설계한 조형물에서 시작해 자연이 창조자가 되고 다시 인간이 호응하는 단 한 번뿐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유일한 그 예술적 순간은 나같이 음악적 조예가 없는 사람도 감동시키지 않을까 생각했었어. 그래서 정해진 관람시간도 비용도 들지 않는 이런 공공예술을 가까이 두고 즐길 수 있는 자다르의 시민들이 부러웠지.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 그날의 우연이 빚어내는 찰나가 각자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예술로 기억될지도 모를 멋진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