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영국_에든버러

by 인디

오랜 친구가 에든버러 대학에서 박사 과정 중이었어. 놀러 와, 한마디에 먼 길을 날아 간 건 학교-운동-집의 쳇바퀴를 돌며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와 진짜 놀기 위해서였어. 익숙한 한국이 아니라 이국적인 에든버러의 언덕길에서 만난 친구는 더 반갑더라고. 여행 짐이 매우 단출한 나지만 친구방 한편에 나의 물건들을 꺼내 놓고 작은 옷장에 소박한 내 옷가지를 몇 개 걸었어. 중고 물건 상점에 가서 이곳에 머무를 동안 신을 첫 크록스도 사서 친구의 신발 옆에 놓아두었지. 나에게 공간을 내어주니 좁은 방은 더욱 비좁아졌지만 친구는 즐거워 보였어.


친구와 나는 각각의 바이오리듬으로 움직였어. 친구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공부하러 갔고 나는 게으른 아침을 즐겼지. 느지막이 집을 나서서는 미술관에 가기도 하고, 노란 꽃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아서 시트에 올라 펄럭이는 바람을 맞으며 앉아있기도 했고, 많은 빈티지 상점을 정성스레 구경하기도 했어. 자유롭게 에든버러를 헤매다가 늦은 오후가 되면 친구를 만나 함께 서로의 하루에 대해 얘기하며 저녁을 보냈어. 주로 장을 봐서 저녁을 만들어 먹고 아주 가끔 외식도 하면서.


주말에는 하이랜드로 하이킹을 가기도 했어. 가방은 마트에서 산 식료품으로 가득 채우고 저렴한 산장을 찾아서 머무르며 한국의 산과는 다른 낯선 언덕들을 올랐지. 때론 친구의 동기들 모임에 같이 가기도 하고 스코틀랜드 춤을 함께 배우기도 하며 친구의 일상에 잠시나마 스며들었어. 마냥 부럽게만 느껴지던 외국 유학 생활은 외로움과의 싸움이더라. 친구는 혼자 동기부여하며 공부하고 홀로 자신을 돌보며 하루를 보냈어. 의지하거나 서로 자극하는 비슷한 처지의 유학생들과 교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일상과 여가를 채우는 것을 혼자서 해내야 했지.


에든버러 같은 도시에서의 삶은 그저 눈부실 것 같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책과 보내다 보면 이곳이 어디인지 잊어버리곤 한댔어. 장학금을 받더라도 비용 절감을 위해 필수인 셰어하우스는 여러 규칙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긴장하고 있어야 하기에 편안한 공간만은 아니었고. 연휴엔 그나마의 친구나 지인들은 가족이나 연인과 시간을 보내고 마트와 대중교통도 쉬기 일쑤라 혼자서 굶지 않으려면 미리 식료품을 사두어야 한다고 했어. 그곳에서의 연휴는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대비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더라고. 멀리서 보면 꿈꾸듯 낭만적인 것들도 가까이서 보면 단조로움 속에서 아주 잠깐 반짝하는 순간이 있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런 주름진 삶의 모습이었지.


내가 돌아가고 얼마간은 다시 혼자인 생활이 더 쓸쓸했다고 연락이 왔었어. 또 놀러 갈게, 했지만 친구가 학위를 받을 때까지 다시 가지 못했지. 친구는 영국을 거쳐 싱가포르로 다시 호주로 이동했어. 그리고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기 위해, 정당한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도 더 열심히 살아도 그들의 사회에 소속되기란 쉽지 않아. 국적이라는 건 속해있는 사람에게는 안전망이 되어주지만 바깥의 사람에게는 쉽게 넘을 수 없는 견고한 벽이니까. 그래서 친구는 안정된 일뿐 아니라 내 집을, 내 사람을, 내 편을, 이방인인 자신을 그 타국에 붙들어 줄 무언가를 계속 갈구하고 있는 거겠지. 내 나라에 살고 있는 나는 여행할 때를 제외하면 나를 규정하는 국가의 존재에 대해 크게 느끼지 않지만 친구의 해소되지 않는 불안과 부단한 노력을 볼 때마다 내가 누리는 이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해. 그래서 다음번에 친구에게 놀러 갔을 땐 마침내 그곳이 친구를 품어주는 따뜻하고 안전한 진짜 집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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