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_양곤
도시를 한 바퀴 도는 기차가 있다고 해서 아침부터 그것을 타려고 벼르고 있었어. 화려한 금색의 사원들은 충분히 봤으니 잘 꾸며진 관광지가 아니라 도시의 전체적인 인상을 느끼고 싶었거든. 그런데 호스텔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와 정보를 주고받느라 원래 예상했던 시간보다 출발이 늦어졌고 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잔뜩 높아져 있었어. 늦어진 시간 덕에 주로 미얀마 시민들의 출퇴근용으로 쓰인다는 생활형 기차엔 앉을자리가 넉넉했어. 다만 기차는 생각보다 더 느렸고, 천장의 낡은 선풍기로는 열차 안에 가득 찬 한낮의 열기를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지. 습하고 더운 공기가 눈꺼풀에 감긴 채 규칙적인 흔들림까지 더해져 나는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졸기 시작했어.
잘 정비된 시가지를 벗어나자 도시의 또 다른 민낯이 드러났어. 선로 옆에 늘어선 양철 지붕의 판자촌과 흙바닥 위에 꾸린 생활공간에서 느리게 움직이던 사람들, 햇빛에 바랜 듯한 빨래들, 흙먼지를 머금은 집기들. 비몽사몽으로 밖을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어. 미얀마의 현실을 보고 싶다는 명목하에 이렇게 타인의 빈곤을 기차 밖 풍경으로 소비해도 괜찮은 걸까, 어떤 삶의 형태를 내가 빈곤이라고 규정 지을 수 있을까, 하는 많은 생각이 스쳤거든. 그들의 삶을 불행하다고 단언할 수 없고 분명히 나름의 행복이 - 어쩌면 내 삶보다 더 양질의, 더 잦은 행복이 -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할 기본적인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삶은 선택의 박탈로 이어지기에 불공평하다는 감각은 생생했지. 어쩌면 그들에게는 가혹한 현실을 나는 멀찍이 떨어진 채 한 바퀴 둘러본다, 여행자로서 자주 그리고 쉽게 그렇게 해왔을 거라는 자각이 죄책감과 함께 밀려왔어. 그렇게 놀이동산 기차를 탄 듯 스쳐가는 구경꾼이 된 나는 내가 본 것들을 어떤 감정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기차에서 내렸고, 아직까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어.
그리고 내가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어. 군부가 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무력으로 무너뜨렸고 오랫동안 미얀마인들이 힘써왔던 민주화가 다시 뒷걸음질을 쳤지. 그 순한 얼굴로 수줍게 웃던 미얀마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어. 군부에 항의하며 시위하는 시민들을 군부는 폭력으로 진압했지.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기사를 봤어. 그리고 때마침 코로나가 세계를 강타했고, 무너진 보건 시스템 때문에 미얀마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보도되었어. 깔로라는 도시에서 트래킹을 함께 했던 가이드에게 괜찮냐고 안전하기를 기원하겠다고 메시지를 남겼었어. 괜찮아,라는 짧은 답은 되려 나를 더 무력하게 느끼게 했어. 내 마음은 진심 었지만 먼 타국에서 보내는 우려와 기원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되겠나 싶었지.
그 사이 코로나가 지나갔고 여전히 미얀마에서는 내전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나는 안전한 한국에서 가끔 기사를 찾아보며 간간히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대부분 잊고 지내. 내 작은 문제에 골몰하고 내 고민에 가슴을 치면서. 빈곤, 테러, 재난, 난민, 전쟁과 같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비극적인 일들이 연일 터지지만 여전히 세계의 다른 곳을 탐험하고 싶다는 나의 욕망은 그치지 않지. 그저 구경꾼이 되어 세상을 유랑하는 사람의 옅은 죄책감을 안고도 다음을 꿈꾸고 있는 거야.
미래에도 여전히 집돌이일지 알 수 없는 너희에게 이 세계가 나에겐 얼마나 흥미로웠는지 얘기해 주려고 시작한 이야기가 오늘은 좀 어두워졌네. 그렇지만 이것도 내가 절대 눈 감을 수 없는 현실임을 잘 알고 있어. 그리고 나라는 미미한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든 영향력을 미칠리는 만무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나의 방문이 작더라도 착취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적어도 멈추지는 않으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