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2]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by 인디

# 머리카락

일찍 눈이 떠졌다. 이슬람 문화를 제대로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온 것이니만큼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에 대해 뒤적거려 본다. 불완전한 인간의 불안을 토양으로 유일신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돋아나 지리, 사회적으로 어떤 해석을 붙였고 정치적으로 어떤 굴곡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궁금증을 따라가다 보니 몇 시간이 훌쩍 흐른다. 우즈벡은 이슬람교가 국교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무슬림이라는데 기도 소리가 거리에 들리지 않고 생각보다 히잡을 쓰지 않은 여인들도 많다. 찾아보니 과거 소련 통치 시절 종교 억압의 영향이라고 한다. 억압은 끝나도 그로 인한 습관은 남는다. 다시 히잡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머리카락에 다다른다. 머리카락을 종교적 순결이나 경건, 공손함으로 연결 지었던 것이 시작점이라면 이슬람에서는 일상생활의 규범으로 남았고 가톨릭에서는 수도원과 의례를 중심으로 관습적 상징으로 남았다. 머리카락에서도 세 종교들의 연결고리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뿌리가 다른 힌두교나 불교에서도 머리카락은 여전히 팔자가 사납다. 세속적 욕망과 집착으로 낙인찍혀 수행자라면 남녀 불문 삭발을 해야 하니 말이다. 아니 머리카락에 대체 무슨 죄가 있는 거야,라고 안타까워하다가 인간이 머리카락으로 어떻게 개성을 표현해 왔는지,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도 탈모와의 전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무엇보다 최근 머리를 기르고 염색에 재미 붙인 나를 생각하니, 머리카락은 세속 그 자체다! 하고 납득하게 된다. 인터넷 이론 공부도 재미있지만 이건 한국의 내 침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이제 직접 보러 나가야겠다. 살아있는 진짜 문화를.


# 도시풍경 1

어제보다 부하라의 아름다움이 더 눈에 들어온다. 이 도시의 차분하고 정갈한 아름다움. 이곳은 교역하는 사람들이 오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학문과 종교를 공부하기 위해 모이는 도시였다고 한다. 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진지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음이 놀랍다. 아시아와 유럽의 미를 합쳐놓은 듯한 우즈벡인들의 아름다움도 눈에 들어온다. 터키인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너는 너를 유러피안이라 생각해 아님 아시안이라고 생각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아시안이라고 생각해. 초록색 눈에 밝은 황갈색 머리의 그녀는 대답했었다.


# 도시풍경 2

자연스러운 모래색 벽돌로 촘촘히 아름다움을 쌓고 필요한 만큼만 푸른빛으로 수놓은 건축물들을 본다. 다양한 색으로 총력을 기울인 것보다 이렇게 힘을 뺀 건물들이 유난히 파랑 하늘과 잘 어울린다. 세계 각지의 인간들이 오랜 시간 똑같이 아름다움이란 것을 찾아 헤매고 나름의 답을 도출해 세심하게 구현해 낸 것일 텐데 결과는 어쩜 이렇게 다를까. 아름다움이란 역시 객관적일 수 없는 문제다.


# 라마단

지금은 라마단을 관통하고 있다. 이슬람교의 중요 행사인 라마단 기간을 우연히 맞추다니 운이 좋았다. 그런데 낮 동안 금식하고 해가 지면 들썩인다는 종교적 워크숍을 아직 제대로 느끼기는 어렵다. 낮엔 닫은 식당들이 꽤 많아서 라마단을 느낄 수가 있는데 왜 밤에 더 기뻐하며 폭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는 거죠. 라마단 기간에 되려 살이 찌는 사람이 있다고 다 듣고 왔는데도요! 중앙아시아는 좀 조용하다곤 하지만 이 선비 같은 사람들은 너무 차분하다. 사마르칸트는 더 크니까 좀 다를 거야, 그곳은 인간미가 더 있을 거야,라고 굳게 믿어본다.


# 숙소

비수기 여행의 장점은 올드시티 내 숙소도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무문을 지나 돌로 된 비밀스러운 통로를 지나치면 멋진 나무 기둥들이 둘러싼 중정과 같은 공간이 나온다. 그리고 그 공간을 바라보고 객실이 배치되어 있다. 가족이 운영하는 숙소라서 그들의 부엌에서 아침을 만들어 내어 준다. 아침을 천천히 먹다 보면 모든 가족을 한 번쯤은 마주칠 수 있다. 도시의 다른 건물들처럼 모래빛 집에는 화려한 문양의 카펫이 많이 깔려 있다. 분명 내 방에 있으면 화려함을 넘어 음흉해 보일 것 같은데 다른 환경에서는 이다지도 조화롭다. 우즈벡에도 온돌과 같이 방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처음 숙소에 들어섰을 때 방뿐 아니라 화장실 바닥까지 따뜻했었고 온돌의 나라에서 온 이방의 발바닥은 그 온기가 참 반가웠었다. 전쟁 폐허 위에 새로 쌓아 올린 나라, 재개발과 신축이 만연한 나라에 살다 보면 이렇게 건물 안에서 역사와 일상이 공존하는 느낌, 과거가 이어져 현재에 이른 느낌을 받기 힘들다. 그래서 한옥에서 사는 것을 꿈꿨나 보다. 한옥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바닥에 누워 오래된 지붕의 서까래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불편함이 기꺼워지곤 했었다.


# 이란

미국이 이란을 공습했다. 친구에게 연락이 온다. 생존 신고 가능? 가능합니다. 너네 엄마께도 연락드려라. 부족한 친구의 효심까지 챙긴다. 친오빠도 연락이 온다. 너 어디라고? 우즈벡.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관심은 없지만 생사정도는 알고 싶어 한다. 진정성이 있다. 엄마는 조심하라고 한다. 사실은 내가 뭘 조심해야 하는지 모른다. 이란이나 이스라엘의 군사시설에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하는 건지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건지. 하지만 넵 조심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어린 시절엔 삼국지 열풍이 있었다. 나도 덩달아 삼국지를 열심히 읽었었다. 처음엔 유비의 촉나라를 그저 응원했고 나중엔 특정 장수들의 활약상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다음은 10만이 죽었다, 20만이 죽었다, 하는 문장만 눈에 밟혔다. 소설적 과장이 있더라도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모른 채 징병된 수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유명 장수가 아닌 이상 왜, 어떻게 죽었는지 설명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천하통일 따윈 상관없이 어느 나라에서든 충분히 삶을 누려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더 이상 삼국지가 재미있지 않았다. 전쟁 같은 큰 사건 앞에선 개인의 삶이 축소된다. [삼체]에서처럼 지구의 생존이 걸리면 국가 간 갈등도 축소된다. 외계인의 침공만이 인류의 광기 어린 체스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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