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5] 중국

우루무치

by 인디

# 시간

한밤에 출발해 겨우 2시간 반의 비행이었는데 아침이 되어있다. 중국은 전역에서 베이징 시간을 쓰기에 베이징보다 한참 서쪽에 위치한 우루무치는 해와 시간이 따로 논다. 이전에 스페인에서도 도통 지지 않는 해가 그저 신기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일 거다. 시간이라는 건 절대적인 게 아니라 결국 인간이 규정한 틀이라는 것이 이럴 때 실감이 간다.


# 아이들

숙소 바로 옆은 초등학교다.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언제 창 밖을 봐도 운동장에서 뛰는 아이들이 한가득이다. 동네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학교가 끝났나 보다. 빨간 옷을 입은 아이들이 잔뜩 신이 났다. 아빠, 엄마와 조부모님과 손을 잡고 걸어가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은 어디나 같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솔직히 말해 (하지만 조심스럽게) 흔히 생각하는 중국이나 인도사람의 거침없음 - 적극성이라고 해두자 - 은 많은 인구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들의 사회적 진화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기회를 빼앗기는 현실,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그런 현실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 능력이랄까.


# 언어 1

문자의 발명으로 인간이 최초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랬다. 그 덕분에 개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생각을 꺼내어 표현할 수 있게 되고, 전해지고, 심지어 타인에게 이식할 수 있게 된다고. 그렇게 오래전 발명된 글쓰기가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렇게 현대인도 질리지도 않고 하고 있다.


# 언어 2

잘은 몰라도 확실히 신장에서의 언어는 다르게 들린다. 좀 더 매끄럽게 흐른달까. 중국은 서로 다른 언어를 같은 문자로 묶어놓은 형국이라고 한다. 같은 한자를 보고 표준 중국어와 이전에 들른 광둥, 상하이나 후난 지역도 모두 다르게 읽는 것이다. 사실 다른 언어로 봐도 무방할 정도지만 한자라는 문자에 묶여 서로를 방언이라 부르는 것. 중국사람들이 광둥이나 신장 지역을 여행하면 외국을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받을 것 같다. 문자의 발명은 거대 문명의 역사를 통틀어 몇 번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라는데, 백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문자를 창조해 내다니 갓세종을 외쳐본다.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도 문자는 한자를 쓰고 그저 다르게 읽는 중국어의 또 다른 방언이 될 뻔한 게 아닌가. 갓세종!


# 식사

나름 열심히 디안핑(dianping)을 보며 맛집도 공부해 보았지만 숙소를 나서다가 발견한 만두집에 이끌려 들어간다. 미식가가 못 되는지라 이국적 음식에 크게 도전적이지 않은데 한 끼를 때우는데 꽤나 충동적이긴 하다. 주변의 다른 사람이 다 비빔면을 시켜도 꿋꿋이 완탕을 시켜본다. 사람들이 산더미 같은 면을 맛있게 먹는 소리를 들으니 완탕에 대한 기대치도 올라간다. 하지만 예전에 먹은 것보다 못했다. 분명 ‘전통을 계승한 완탕’이라는 홍보 문구를 번역기로 돌려보고 흐뭇하게 들어섰는데 역시 답은 비빔면이었나 보다. 예전에 만났던 두 명의 중국 소녀가 맛집은 두 가지 앱으로 크로스체크를 해야 한댔는데 디안핑말고 다른 하나의 앱 이름을 까먹었다. 마치 우리가 맛집을 찾을 때처럼 네이버맵으로 정보를 찾고 카카오맵으로 평점을 확인하는 것과 비슷한 시스템인가 싶다.


# 신장

그랜드 바자를 들렀는데 입구에 무장 군인 세명을 본다. 처음엔 마네킹인 줄 알고 지나치다가 살짝 움직여서 진짜 깜짝 놀랐다. 박물관 앞에도 전차 같은 게 세워져 있다. 독립 요구와 테러 사건 등으로 인해 중국 내 경비가 삼엄한 곳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일상적인 풍경 안에 이렇게 많은 군인들을 보니 놀랍다. 불시에 길거리 검문을 당하지는 않지만 시장이든 도서관이든 어디든 입장하려고 하면 스캔을 당한다. 이곳은 실크로드의 교차로로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넘나들며 교류하던, 역사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지역 중 하나였을 텐데 지금은 가장 통제받는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니. 아이러니다. 내가 일개 여행자로서는 면밀히 느끼지 못해도 그들의 삶 안에는 종교, 언어, 문화적 억압이 실재하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 특정 민족을 감시하는 시스템 위에 세워진 하나의 중국은 언제까지 가능할까.


# 민족 박물관

해가 늦게까지 떠 있다고 안심하여 꾸물거렸더니 박물관 폐장 시간이 촉박해졌다. 박물관은 사회적인 시간에 따른다는 걸 간과했다. 미라! 미라를 보고 싶은데 박물관은 꽤나 크고 허둥지둥하니 더 못 찾겠다. 미라를 발견하고 어찌나 안도했는지. 애타게 찾던 미라는 보존 상태가 정말 훌륭하다. 사막은 파괴적이지만 기록을 보존하는 데는 이만한 저장소가 없나 보다. 머리카락은 기본이고 얼굴의 타투, 죽음 후 평온한 표정까지 알아볼 수 있다. 30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내가 이들을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놀랍다. 미라 전시관만 세 바퀴를 돌고 나서야 집착을 끝냈다.


+ 또 다른 놀라움은 이런 미라를 보여주는데 입장료가 공짜다. 우즈벡에서는 외국인에게만 몇 배씩 더 입장료를 받아도 문화재 보존료라고 생각하자고, 그런가 보다 했는데 무료라니. 대국이다.


# 폭설 1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온다. 이번 겨울에 눈을 많이 못 봤는데 여행지에서 이런 눈을 보다니 아름답다. 기차역으로 향하기 위해 나서는데 눈이 심상치가 않다. 버스는 오버다 싶어 택시를 불렀지만 기사님이 자꾸 엉뚱한 데서 전화만 거신다. 전화를 받을 수도 없고 제가 받아도 별 수 없으니까 그냥 제가 있는 데로 와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빌어도 소용없다. 취소하고 다른 택시를 호출하느라 여유롭지 않던 시간이 이젠 촉박하다. 길은 막히고 내 마음은 초조하고. 겨우 도달해 가방 검사를 하니 기차역이 왜 이렇게 큰 거냐. 가방을 들쳐 매고 뛰어 겨우 게이트에 도달했는데 빨간 글씨가 심상치 않다. 운행 중단. 역무원을 잡고 물어본다. 투루판 가는 기차가 오늘은 다 취소일 거란다. 카운터가 어디냐고 가서 확인해 본다고 하니 자기가 확인해 주겠다고 한다. 눈 때문에 기차가 취소되었고 다른 표를 사더라도 계속 기차 앱을 보면서 운행하는지 체크해야 한다고 최종 심판을 받는다. (정말 친절한 역무원이셨다.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뜻하지 않는 폭설로 길이 막혀버린 옛 실크로드 상인에 빙의해 본다. 나의 운을 믿고 길이 열리길 기다릴 것인가, 우회해서 길을 이어갈 것인가.


# 폭설 2

그 결정은 내일 하자, 하고 일단 수수료 내고 투루판 숙소를 취소했는데 혹시나 해서 다시 기차앱을 열어 보니 오후 기차가 재개되었다. 젠장! 내가 대국의 제법 잽싼 일처리를 미처 내다보지 못했다. (안전 불감증이라는 건 꿈도 꾸지 않는 일본에서는 폭설로 기차가 취소됐을 때 열차 노선을 체크하고 재개하는데 하루가 꼬박 걸렸더랬다.) 이 모든 상황을 내다본 중국인들이 오후 좌석표를 모두 선점해 버렸지만 입석이라도 감지덕지하고 탄다. 하마터면 못 가는 줄 알았잖아요! 바보같이 우루무치에서 오늘은 뭘 먹지 고민하고 있었잖아요! 꽤나 운이 좋은 사람이 되어 다시 실크로드의 여정을 이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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