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6] 중국

투루판

by 인디

# 날씨

설경의 우루무치를 떠난 지 두 시간도 안되어 도착한 이곳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모래 냄새가 덮친다. 날씨앱을 열어보니 모래 폭풍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가 모인다. 그냥 한 나라가 아니라 대륙인 중국의 크기가, 사막의 도시에 왔다는 게 부쩍 실감 난다. 숙소에서는 내가 무사히 온 것을 축하해 주었지만 나의 날씨운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폭설에도 다행히 기차를 얻어 탔으면 모래 바람 없는 청명한 날씨까지 바라는 건 과욕인가 보다. 화염산은 이런 날씨에는 뿌옇게만 보인다니 원래도 서유기 테마의 화려한 데코를 자랑할 것 같아 긴가민가했는데 패스할 수 있어 차라리 시원하다.


# 예언 1

이 날씨에 멀리 가기도 뭐 한데 숙소 주변에 연 가게가 없다. 6시나 되어야 문을 연다고, 그나마도 성수기가 아니라서 주변 두 개 정도만 열거 같다고 한다. 두 개나 열다뇨, 세상에 제가 둘 중에 고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감지덕지다. 6시까지 기다리려니 배가 고파 옆에 있는 슈퍼에서 쿠키를 한 봉지 산다. 18위안을 지불하고 나오는데 주인분이 나를 다급히 부르며 따라 나오신다. 내가 뭘 잘 못 계산했나 싶어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6위안을 손에 집어 주신다. 아, 투루판이 좋아진다. 반드시 이 6위안을 그 가게에서 다시 쓰고 말겠다.


# 예언 2

사람이 참 간사하다. 며칠 만에 고기 지겨워, 채소 그리워하더니 아침부터 부산을 떨고 배가 고프니까 고기가 생각난다. 숙소 주인이 말해준 두 음식점 중에 당연히 나의 선택은 더 작고, 더 현지 식당으로 마음이 기운다. 동네 사랑방인지 식당 앞엔 아저씨들이 모여있다. 맛집이구나. 아저씨들 입맛은 못 속이지. 관상은 과학이라 믿는 신념에 비해 전혀 예리한 눈을 가지진 못했어도 이 사장님, 중국산 신상고속열차 타고 지나가며 봐도 선량한 인상이다. 메뉴를 보라며 꼬질한 종이를 꺼내주시고는 내가 번역하려고 폰을 들이대자 정성스레 펴주신다. 봐라, 관상은 과학이다. 부산하게 주전자에 한가득 따뜻한 차를 담아 오셔서 스위트하게 컵에 따라주시기까지 한다. 아휴, 관상은 과학이라니까. 신이 나서 고른 버섯구이를 먼저 내어오시는데 어찌 내 마음을 읽고 빨간 소스가 발라져 있다. 나는 내일 반드시 이 가게에 다시 올 것이다.


# 카레즈 수로

시간도 많은데 현지인 방식으로 가볼까, 한 건방진 마음이 화근이 되어 버스 오탑승 1회, 하차 실패 1회 끝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나란 인간은 시간을 허비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이곳은 한참을 서성이니 티켓 판매원이 어디선가 나타난다. (혼자라 그런지 가방 스캔도 패스다 야호) 어디로 어떤 순서로 봐야 할지 따라 할 사람이 없으니 내 마음대로 돌아다녀 본다. 인위적인 테마파크 같은 공간을 지나면서 이게 다는 아닐 거야 하며 초조해지고 있었는데 어찌어찌 수로를 찾아간다. 수로가 이렇게 동굴 안에 있을지 몰랐다. 이해는 못하지는 영상 자료를 보니 산 아래의 물을 증발 없이 끌어오기 위해 땅을 파 길을 만들고 물을 흐르게 한 것 같다. 근데 솔직히 물소리만 울리는 동굴에 혼자 들어가려니 쫄린다. 아까 괴상한 테마파크에서 얼굴이 퍼런 귀신같은 마네킹을 많이 봐서 기가 약해진 탓이라 자신을 달래 본다. 이 사막에서 물을 찾아 이렇게 땅 밑에 수로를 만들어 낸 인간의 발상과 기술이 놀랍긴 하다. 실크로드는 인간이 개척한 길이라기보다 자연이 허락한 길을 찾아낸 것에 가깝다 생각했는데 그 길을 찾아내고야 만 인간의 집요함이 경이로웠달까.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왠지 인류에 대한 존경심이 샘솟아서 한 바퀴 더 돌았다.


# 교하고성

내가 원하던 것은 아프라시압처럼 완전 무로 돌아가지도 않았지만 억지로 재건한 것도 아닌, 상상력을 덧붙일 뼈대는 남았지만 그마저도 시간에 자연스레 풍화되어 가는 폐허의 고대도시, 바로 이거다! 2천 년이 넘도록 똑같이 도시의 입구에서 안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걸으니 먼 여정으로 인해 피곤한 몸을 쉬고 싶은 줄지어가는 낙타들이 보이는 듯했다. (미쳐가는 건가) 벽돌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천연 요새와 같은 계곡에 땅을 조각해서 만든 이 고대 도시도 역시 (우루무치의 미라처럼) 사막이 시간을 멈춰둔 까마득한 과거의 조각이었다. 흐린 날씨와 비수기가 합쳐져 다른 관광객을 마주치기 힘들 정도라 내 발걸음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절대 고요마저도 완벽했다. 모래 먼지 자욱하고 사람의 흔적이 지워진 고대 도시를 혼자 걸으니 문명이 끝난 디스토피아 세상에 나 혼자 생존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실크로드가 변화하고 몽골이 침략하며 도시의 쇠퇴 이후 아무도 이곳에 남지 않고 재건하지도 않았으니 어떤 의미에선 버려진 도시가 맞으려나. 도시의 끝에 다 달아 더 이상 남은 길이 없을 때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아쉽던지. 이 여정에서 이 느낌을 이길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

+

코로나로 회사 전체가 재택에 들어갔을 때, 무슨 일 때문인지 회사에 올 일이 있었다. 사무실 통로를 걸어 다니며 사두고 다 먹지 못한 간식, 책상 위의 사진과 포스트잇, 채 지우지 못한 회의실 칠판, 말라죽어 있는 화분들을 보면서도 사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잠기긴 했었다.

+

보안카메라, 휴지통, 표지판, 화장실까지 모두 도시에 맞춰 모래색으로 톤다운해 둔 중국의 자제력에 놀랐다. 이렇게도 할 수 있잖아요, 빨간색이 없어도 멋지잖아요!


# 예언 3

예언을 실현하러 왔는데 식당 주인분의 업무 처리 속도가 너무 느리다. 내가 도착했을 땐 아직 제대로 오픈 전 이신 거 같아 구글번역기를 통해 기다려도 되니 천천히 하세요,라고 쓴 내 손가락 방정이 원망스럽다. 저 근본은 한국인이니까 적당히만 천천히 하세요,라고 썼어야 한다. 아니 그냥 닥치고 앉아서 압박했어야 한다. 하하. 차 한주전자를 다 마셔가는데 선생님, 아.. 아직인가요? 준비하느라 많이 바쁘실 텐데 동네 꼬마 볼까지 꼬집어 줄 정도로 여유가 있으시네요.. 보아하니 그 녀석의 볼은 내일도 기회가 있을 텐데요. 실화인가 싶어 둘러보니 느낌이 준비가 이미 다 끝난 것만 같다? 조심스레 주문해 보니 당연히 오케이. 아무래도 구글번역기가 뭔가 나중에 시킬게요, 정도로 이간질을 한 거 같다. 주인분은 자리 차지하고 차만 죽어라 마시는 내가 영 제정신이 아닌 거 같지만 믿고 기다려 준 것이었나 보다. 관상에 대한 신념을 더욱 굳혀본다. 미친 셀프 고문을 했지만 모든 예언은 실현되었다!


#투루판북역

떠나는 날 아침에서야 겨우 해를 보았다. 아직 공기 중엔 모래가 다 가시지 않아 희뿌연 해였지만 우루무치부터 소원하다가 며칠 만에 보니 반가웠다. 역에 도착하니 사람이 엄청 많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투루판 도시는 정말 조용했는데 모든 사람이 역에 있었던 걸까. 금요일 효과인가. 아님 이것은 사실 한가로운 수준이고 14억 인구 정도면 어디든 이 정도 밀도는 보여줄 수 있다는 걸까. 돗자리나 침낭을 챙겨 온 현지인들을 보니 혹시나 행여나 빈 의자를 찾는 나약한 정신머리는 나뿐인 거 같다. 화려한 도시도 아니고 인프라가 편한 도시도 아니었는데 떠나는 게 왠지 아쉽다. 순하고 친절했던 위구르 사람들이 때문일지도 아마 다시 오기 힘든 곳이라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올 수 있다면 사막 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해가 작열할 때 오고 싶다.

+

땅은 더 좁지만 인도가 중국의 인구를 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지금의 인도는 어떤 인구밀도를 자랑하고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중국과 인도의 인구를 합쳐 35%가 넘는다니 전 세계 세명 중 한 명은 중국인이나 인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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