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7] 중국

둔황

by 인디

# 기차

투루판에서 둔황까지는 가는 길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비수기 탓인지 지형 탓인지 한 번에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애매한 도시에 중간 경유지를 만들거나 지도로 봤을 땐 좀 돌아가더라도 환승을 해야 했다. 나에게 기차는 가장 편한 이동 수단이라서 합쳐서 7시간 정도의 여정은 그리 하드코어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게다가 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중국 대륙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으니 지루할 틈도 없다. 우즈벡에서부터 위구르까지 이슬람 문화에 계속 노출되다 보니 카펫을 볼 때마다 어쩐지 알라딘이 생각났는데 내친김에 알라딘 OST를 들으며 가본다. 영화도 물론 좋았지만 나의 취향은 오리지널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다. 특히 레아 살롱가의 음색은 언제 들어도 기가 막힌다. 그녀의 결혼식에 영상을 봤었는데 그녀가 셀프 축가를 부를 때 신랑이 오열하는 것이 백번 천 번 이해가 갔었다. 그 노래를 듣고 안 울면 그는 로봇이거나 악마가 틀림없다. 여하튼 그녀에 대한 내 뜨거운 마음은 다시 넣어두고 BG로 알라딘을 깔며 기차는 달린다.


# 모가오굴

천년의 미술관을 보러 가보자. 비수기라고 입장료를 반값으로 받는 것은 꽤 유연한 정책이다. 하지만 외국어 가이드가 한 타임 밖에 없어서 두 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 모든 것은 장단의 조화니까.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개인의 소망과 신념, 간절함과 경건함이 모여 만들어낸 거대한 미술관인 이곳은 겉에서 봤을 때는 크기에 압도되는데 막상 492개의 석굴 중 들어가 볼 수 있는 석굴은 8개뿐이다. 가이드님 말씀으론 지진과 전쟁 등의 화재로 인해 대부분 훼손되어 이렇게 일부만 개방한다고 한다. (AI 말로는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은 동굴 중 어마어마한 작품이 있다는데.. 누구 말이 맞는 거야. 인간의 입김과 체온이 작품에 좋을 리가 없으니 비공개하는 것도 당연하다만) 압도적인 문화유산임은 분명한데 동굴마다 자물쇠가 달려 있으니 맥이 좀 빠진다. 그래도 가이드님을 따라가 들어서는 석굴 안은 대단한 미술이 펼쳐진다. 수염이 있는 인도식 불상이 등장하고, 페르시아풍 컬러가 펼쳐진다. 벽화에는 중앙아시아 사람의 얼굴이 보이고, 사냥하는 고구려 사람도 등장한다.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된 불교가 이곳에서 오랜 시간 다양한 문화를 양분으로 꽃을 피워냈다.


+ 터키석이나 사파이어를 갈아 색을 냈다고 하는 벽화는 이 오랜 시간에도 색이 너무나 선명하다. 역시 사람들이 괜히 보석, 보석하는 게 아니구나 싶다.


+ 35미터가 넘는다는 불상을 보기 위해 들어서면서는 흠칫했다. 9층 건물 안에 가득 찬 존재감이 느껴졌달까. 물론 아래에서 올려다보느라 발과 콧구멍 위주로 보고 전체적인 인상은 보지 못했다.


# 기념품

배낭이 허락하는 선에서 친구나 가족을 위한 기념품을 고른다. 우즈벡에서는 자꾸 중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뭔가를 사야 하는데 싶어 마음은 급했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무게나 부피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취향에 맞으면서도 가격이 적당한, 삼박자를 채운다는 게 이미 기준이 너무 높다.) 되려 중국에 오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더 눈에 들어온다. 못 찾으면 그만인데 왜 그렇게 마음 졸였나 싶다. 친구를 위한 앙증맞은 미니 향로를 발견한다. 완벽하다. 종종 향을 피우는 그녀가 이것을 받으면 좋아할 게 눈에 선하다. 여행을 떠난 사람이 한국에 있는 사람을 위해 자꾸 무언가를 고르는 건 무슨 마음일까. 그리움인가.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여행하는 동안에도 당신들을 생각했다는 증표가 아닌가 싶다.


# 야시장

기대치 않았는데 랜턴 축제가 한창이다.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이자 세계적 유산을 가진 위엄의 도시지만, 규모로는 인구 20만 정도의 작은 도시라 (중국은 인구 100만 도시도 중소도시 취급이라 하니 20만이면 아주 초소형 도시인가 보다) 야시장도 딱 마음 편한 크기다. 먹거리 가판대 근처에 테이블마다 모닥불을 펴두고 동그랗게 모여 앉아 먹는 모습이 꽤 낭만 있어 보이지만, 이곳도 (중의적으로도ㅎㅎ) 1인용 테이블은 없다. 혼자 자리를 차지하는 건 민폐 같아 음식을 포장해 본다. 근데 사실은 난 지금 간단한 샌드위치가 먹고 싶은데 찾아보고 찾아가고 하는 게 귀찮다.


# 명사산

어렸을 때부터 사막에 로망이 있었다. 모래뿐인 사막이 뭐가 좋을까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 나고 자란 도시 사람이라 내심 그 적막함, 그 간결함을 동경하는 건가 싶다. 도심에서 가장 가깝다는 사막 중 하나인 명사산으로 간다. 명사산은 압도적 자연이나 생황 공간으로써의 사막이라기보다는 관광지로의 사막인데 도심이 끝나고 갑자기 사막이 나타나는 느낌은 재밌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모래 놀이하듯 사구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 것도 색다른 광경이다. 도심에 가까운 친근한 사막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싶다. 관광지 사막이네, 하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안고 모래 언덕에 그냥 앉아있으니 나쁘지 않다. 건물도 나무도 없으니 거리감도 없어지도 시간도 느리게 가는 듯하다. 바로 몇 발자국 옆이 도시라는 걸 알면서도 까마득히 멀게 느껴진다.


+ 혼자 온 현지인들이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한다. 흔쾌히 찍어주는데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이런저런 과격한 포즈를 잘도 취한다. 귀엽네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난다.


# 마라탕

마라탕이 난리인 건 한국뿐만이 아닌가 보다. 마라 하면 사천이 중심인데, 이곳 간수 지방도 마라 열풍이 은근하다길래 슬쩍 한 번 합류해 본다. 기세 좋게 들어서지만 사실 어떤 주문 시스템인지 모르겠다.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유쾌한 사장님께서 너 중국사람이 아니로구나, 한국 사람이니, 하며 친절히 안내해 주신다. 중국 두부 맛있어 (네, 저 그거 사랑해요) 버섯도 맛있어 (네, 두 꼬치 들어갑니다) 조언에 따라 담다 보니 뭔가 한가득이다. 감자면도 추천하셨지만 다 먹지 못할 거 같아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맛있으니까 맛보라고 공짜로 넣어주신다고 한다. 본토에서 아주 매운 건 좀 쫄리니까 중간 매움으로 부탁드리고 자리에 앉으니 간수 지방 특산 차도 맛보라고 살구차를 또 공짜로 주신다. 마라샹궈와 탕의 중간의 모습으로 등장한 요리는 검붉은 위용에 비해 생각만큼 맵지 않다. 한국에서 먹던 맛이랑도 다르다. 한국에서 먹은 게 사천요리의 한국 버전이라면, 지금 먹는 건 사천요리의 간수 버전인 건가. 사천요리의 사천 버전이 궁금해진다. 아직도 기대할 게 있다니 좋다. 사장님께 맛있었다고 감사하다고 다시 인사를 한다. 쉐쉐, 하고 인사드리니 안녕히 가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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