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
# 버스
나는 웬만하면 대중교통도 다 시도해 본다. 가능한 모든 옵션을 알고 자율성을 갖는 편이 좋다. 아직 숙소 체크인 시간도 여유가 있겠다, 기차에서 잠도 충분히 잤겠다, 택시 기사님들을 물리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본다. 미리 확인해 본 결과 큰 도시가 아니라서 인지 버스패스 QR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ID번호가 필요하다. 그럼 외국인인 나는 버스를 어떻게 탈 수 있는지 궁금하다. 둔황에서는 버스 안에 알리페이나 위챗으로 지불이 가능하도록 QR이 있었다. 현지인들을 따라 느긋하게 기다리니 버스가 온다.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 제일 뒤에 서서 느지막이 올라타본다. QR이 보이길래 찍어보았지만 그저 중국어가 가득한 페이지가 열린다. 현금이라도 있으면 내겠지만 그마저도 요원하다. (현금으로 낼 때는 2배를 내라고 한다. 물론 거스름돈 따위는 없다.) 장예에서 버스는 틀린 건가 싶어 내리려는데 날 지켜보던 눈길들 중에 한 여성분이 알리페이가 있냐고 하면서 다가온다. 있는데 교통패스 QR은 발급 못 해요. 내 폰을 살펴보더니 그냥 내가 내줄게, 하고서는 자신의 폰을 찍는다. 당황해서 위챗이나 알리페이로 돈을 보내드리겠다고 하니 괜찮다고 계속 손사래를 치신다. 큰돈이 아닌 걸 알지만 이런 친절에 돈의 크고 작음이 무슨 상관인가. 낯선 도시에 오자마자 받는 과분한 친절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어디서 왔냐고 내릴 곳은 아냐고 물으신다. 고덕지도를 보여드리며 안심시켜 드린다. 자기도 3일 동안 여행을 왔다며 수줍게 웃으신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하고 버스에서 내리며 내일 무지개산에서 우연히 또 마주치게 되길 괜히 바라보았다.
# 대불사
대불사의 매표소를 못 찾고 빙빙 돈다. 기차에서 봤던 여행자들을 우연히 대불사 입구에서 봐서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는데 어느새 놓쳤다. 놓치고 나니 지도를 봐도 모르겠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다. 와불이라면 방콕에서도 봤는데 굳이 들어가서 봐야 할까,라는 삐딱한 마음이 든다. 중국 최대 와불이라고 하지만 방콕 와불이 더 큰데도요? 진짜 마지막이다 하고 다시 처음 입구로 돌아오니 건너편에 바로 매표소가 있다. 원래도 넉넉지 않은 총기가 고갈된 결과다. 입구에 들어서니 뽀얗게 모래 덮인 절이 색이 바랜 채 서 있다. 절에 들어가면 역시 모래빛으로 자연스럽게 색이 바랜 와불이 누워있다. 보자마자 정이 간다.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방콕의 금빛으로 번쩍이던 와불은 이제 막 누웠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싶지만 이건 누가 봐도 누운 지 오래됐다. 종교는 없지만 느낌이 좋으니까, 와불을 돌며 생각나는 모든 사람의 복을 빌어본다.
# 습지
사막에선 물을 따라 도시가 만들어진다. 저 멀리 산에서 내려온 물이 이곳에서는 넓게 습지를 이뤘다가 강을 따라 바다를 향해 흘러보지만 고비사막을 채 지나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한다. 습지공원을 가려고 사진을 보다 보니 어디 가서 뭘 봐도 여긴 경주 같구나, 여긴 설악산 같구나, 하는 아저씨처럼 창녕 우포늪을 떠올렸다. 아마 이런 습지를 방문한 시기가 비슷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해 봄이 시작되기 전, 우포늪에 갔었다. 역시나 시즌이 아니어서 사람이 없었고 버스가 한대 나타나 여쭤보니 시내와 반대 방향이었다. 기사님은 추운데 그냥 타라 하셨고 루트를 모두 돌아서 다시 시내로 갈 때까지 버스 투어를 했다. 아무도 없는 버스에서 나는 저 뒷자리에 앉아 기사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눴었지. 그러고 보면 길에서 참 친절을 많이 마주친다. 내가 이렇게 복이 많다. 혼자 추억놀이를 하다 흐리고 추운 날 넓은 습지를 걸을 생각을 하니 입맛이 싹 가시면서 습지공원 방문은 포기다.
# 무지개산
분명히 어제 확인했을 때도 흐림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해가 떴다. 기대치도 않았는데 태양이 조명을 켜줬다. 분명 AI는 어제 날씨 운이 없는 나를 위로하며 흐린 날은 색이 파스텔톤이라 느낌이 색다르다는 둥 입을 털었는데, 해가 났다고 하니 무지개산은 날씨가 반이라며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신이 나서 지껄인다. 박쥐가 따로 없다. 무지개산은 산이라기보다는 둥글둥글한 융기에 가깝다. 3천 년 전 미라다, 3천 년 전 도시래, 천년동안이나 이어진 미술관이야 하고 인간의 문명에 호들갑 떨며 여정을 이어왔는데 지구가 억년 단위에 걸쳐 만들어낸 풍경 앞에선 숙연해진다. 히말라야 산맥을 만든 그 판의 충돌의 영향으로 이곳에선 퇴적층이 구겨지며 밀어 올려졌고 이후 침식되어 만들어진 지형이라 한다. 몇 만 년간 물이 지나가며 퇴적시켰을 하나하나의 층이 신비로울 정도로 선명하다. 어렸을 때 지구과학인가 교과서에서 이 무지개산 사진을 보고 중국엔 별게 다 있네, 했었다. 그게 꽤 인상에 남아서 지구과학 따위야 잊어버린 지 오래라도 그 기억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물론 사진에서 본 것처럼 또렷한 무지개 빛깔은 아니다. (반성하라, 포토샵) 채도가 다른 빨강들, 노랑, 흰색과 약간의 녹색 정도인 것 같다. 다만 빛의 양과 들어오는 높이에 따라서 보이는 건 천차만별일 거다. 기대했던 총 천연컬러는 아니라도 각각의 줄무늬가 만들어지기까지, 그 층을 들어 올리고 깎이기까지 인간이 상상하기에 아득한 시간을 보고 있는 것이 경이로웠다. 나 자신이 좀 더 하찮게 느껴졌달까.
+ 히말라야 산맥은 사고 지점에 가깝기도 해서 아직도 계속 자라나는 중이고, 이곳 단샤 지형은 침식 등으로 계속 변화라는 중이라니 지구가 살아있단 느낌이 든다.
# 귀가
무지개산 왕복버스표를 끊으니 버스터미널에서는 버스가 북문에서 널 내려줄 테니 돌아올 때는 내린 북문에서 다시 타라고 했다. 하지만 버스는 날 서문에서 내려주었고 혼란이 시작됐다. 하차 시 질척거리며 차장님과 같이 내린 소녀에게 지금 내리는 이곳 서문에서 다시 타는 거라고 확인받았다. 무지개산 구경을 마치니 전망대를 도는 셔틀버스가 나를 북문에 내려준다. 난 서문으로 다시 가야 하는데. 셔틀 기사님과 직원분들의 친절에 기대 겨우 서문으로 돌아온다. 버스 시간은 15:30이라 했지만 아까 확인한 곳에서 30분 전부터 대기를 타본다. 버스표지판만 덩그러니 있어 불안하지만 두 번 체크한 정보니 마음을 다잡는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버스가 오더니 나를 부른다. 장예 시내에 간다고 하니까 일단 이것을 타고 다른 버스로 갈아타라고 한다. 구글번역기가 제대로 동작하는 건지 의심스럽지만 기사님이 앉으라고 재촉하신다. 엉거주춤 앉아본다. 초조하게 지도를 보고 있으니 버스는 시내와는 반대 방향으로 한참 달린다. 그러다 도로의 교차지점 어디선가 멈춰 다른 버스와 조우하더니 갈아타라고 한다. 4차선 무단횡단을 안전히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도움도 주신다. 갈아탄 버스는 온 길을 다시 되짚어 가 내가 기다리던 지점을 15:25에 지나친다. 애당초 그냥 써있던데서 기다리면 되었던 것 같은데 이 시스템은 뭐지 싶다. 추운데 기다리고 서있지 말라는 배려인 건가. 놀랍게도 버스는 15:30에 북문에도 들렀다가 시내를 향해 간다. 임기응변과 변칙 속에 모든 사람이 한 말이 결국 모두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