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저우
# 액체
기차고 지하철이고 타려면 짐 검사를 한다. 짐 검사를 할 때 액체류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야, 액체류 폭발물 위험에 대비한 엄격한 관리라 치자. 공항처럼 적어도 100미리 규정까지는 없으니 안도하며. 그런데 기차 선반에 가방을 올려둘 때도 가방에 물병이 꽂혀있으면 주인을 찾아 자리에 갖고 있도록 한다. 가방 검사 하면서 물인지 다 확인하셨잖아요. 솔직히 안 보이게 가방 안에 넣어뒀음 몰랐을 거잖아요. 형식적이며 보수적인 안전주의 관리에 다시금 놀라본다. 베이징이나 상하이급의 대대도시에서는 바쁜 시간에 지하철 짐 검사를 하는 것에 나름의 불만이 있고, 이에 대해 중국에서는 자동화와 인력충원으로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봤었는데 과연. 통제를 통해 제로리스크를 꿰하는 방식이 이렇게 일상에 스며들어있는 건 참 익숙해지지 않는다.
# 치롄산맥
장예를 벗어나 란저우로 향하는 기차에서 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조한 사막 지역임에도 산 위는 하얗게 만년설을 덮고 있다. 친근해 보이지 않는 황량한 모습이 쓸쓸하면서 멋지다. 그러다가 길고 긴 터널에 들어선다. 잠시 끊어졌다가도 계속 이어진다. 엄마 생각을 한다. 엄마는 긴 터널만 지나치면 이게 무슨 터널인지 얼마나 긴 터널인지를 무척 궁금해한다. 그럴 때면 지도를 인터넷을 찾아가며 터널의 정체를 뒤적이곤 했다. 나는 어렸을 때 터널을 지나치면 터널이 끝날 때까지 눈을 감고 숨을 참고 있곤 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길 없다. 어렸을 땐 뭐든 재밌으니까.
# 마무리
분명히 오늘은 그냥 쉬어야지 했는데 새로운 도시에 오니 괜히 도파민이 터지면서 밖에 나와있다. 사실 계획도 별게 없고 완탕을 먹어야지 하며 마크해 둔 곳은 변덕스럽게도 또 가기가 싫다. 왠지 실크로드 여정의 끝이니 양꼬치를 먹어야 할 것 같다. 우즈벡에서는 양갈비를 꼬치에 꿰어 구워주는 호탕함이 있었는데 길을 따라오며 어째 양꼬치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더니 란저우 야시장에 도달하니 고기 한 조각의 크기가 퍽 귀여워졌다. 이러니 10 꼬치에 20위안이구나 싶다. 10 꼬치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5 꼬치만 먹어도 돼? 했는데 이건 뭐 20 꼬치도 가능이다. 야시장은 관광객용이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향신료가 강해지고 음식이 점점 매워지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우유껍질이 올려진 요거트도 마지막으로 하나 먹어본다. 아까 중산교는 둘러봤지만 밤의 중산교를 보러 다시 간다. 낮보다는 훨씬 분위기가 좋다. 흔히 말하는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황하강인데 지금은 강가에서 산책하고 체조도 하는 그저 흔한 강의 느낌이다. 이 강을 따라서 중국 문명이 발생했구나, 하며 그래도 다시 한번 내려다본다.
# 우육면 1
우육면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곳이 우육면의 고향이라고 하니 괜히 먹어보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압박감이 든다. 대만에서 우육면을 먹었을 때 아무래도 내가 음식점 선정을 잘 못한 것인지 거의 먹지 못했다. 이후로 우육면은 도전하지 않았는데 안 먹으면 역적 같고(실상은 아무도 관심 없다), 진짜 한 번은 더 먹어봐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신중하게 맛집을 점지해 본다. 미식가도 아니고 중간에 마음도 잘 바꾸면서 괜히 디안핑은 들여다보면서 애먼 데이터를 소비한다. 이놈의 디안핑은 이미지 압축도 안 되어 있는지 데이터를 쭉쭉 잡아먹는다. 어쩌다 클릭한 글이 영상이라도 붙어있으면 아주 화들짝 놀란다. 우육면에 대해 짜게 식은 내 마음을 돌릴 가게 어디인가.
# 우육면 2
괜히 현지인 맛집 같은 거 찾다가 크게 데일 수 있으니 관광객에게도 인기 많은 집으로 찾아간다. 란저우에서 시작해서 베이징까지 분점을 낸 식당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대중적이다. 셀프 배식이라니 현지 느낌도 충만하다. 국수 할아버지와 소통이 되지 않아 잠시 버벅거린다. 미리 공부한 대로 번역기를 통해 소면으로 주세요,라고 써서 보여드렸으나 아뿔싸 할아버지의 노안까지는 내가 배려를 못 했다. 캡처해서 크게 하던가 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앞서 받아간 분의 국수를 가리키며 똑같이 주세요,라고 소통해 본다. 성공이다. 면은 일반 소면보다 쫄깃하고 국물은 짭짤하다. 매운 소스도 두 스푼 넣었지만 그리 맵진 않다. 미식가가 아닌지라 뭐 대단한 표현을 못 찾겠다. 우리나라 소고기뭇국의 더 진한 버전에 향신료 약간 추가한 정도일까. 8위안인데 양은 겁나 많다. 예전에 베트남 쌀국수를 처음 먹었을 때, 이게 뭐지 싶었다. 이 찝찔하고 냄새나는 국물은 뭘까. 한 번 먹고 절레절레했었는데 그게 묘하게 생각이 나는 거다. 그래서 또 다음이 생기고 자주 먹게 되었지. 어쩌면 지금은 우육면 퀘스트를 깬 느낌으로 홀가분할 뿐이지만, 혹시 모르지. 어느 겨울밤 이 국물이 생각날지.
# 중국여행 1
중국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선호가 있겠지만 나는 여행지로써 중국이 꽤나 흥미롭다. 마냥 편하진 않지만 적당한 변수와 적당한 좌충우돌과 적당한 실패 같은 것들이 딱 재미있게 버무려진다. 이것도 첫인상이 중요할 텐데 아마도 내 중국여행의 첫 단추가 잘 끼워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베이징에서 잠시 공부하고 있던 친구를 만나러 온 것이 나의 처음이었다. 같이 먹고 싶은 게 너무 많다던 친구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학교 뒤 작고 허름한 만두집으로 데리고 갔더랬다. 친구가 (내가 듣기엔 세상 유창한, 그러나 사실은 옹알이에 불과했을) 중국어로 만두를 시키고 주인분이 만두를 들고 오시는데, 찜기에 깔린 회색천이 나를 꽤 공포에 떨게 했었다. 야, 저건 행주는 아니겠지. 하하. 인육만두는 아니겠지. 하하. 잔뜩 쫀 마음을 허세로 부풀려가며 만두를 맛봤는데, 진짜 너무 맛있는 거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나의 인생만두다. 그녀를 철저히 신봉하게 된 나는 이후로 그녀의 계획에 따라먹고 움직였다. 물론 때때로 폭우, 폭염, 핸드폰 분실, 주문 실패 등 우리를 엿먹이기 위해 도사리고 있던 곡절을 하나하나 격파해야 했던 건 사실이지만 중국이 가진 압도적 역사, (의외로) 침대칸에서 내가 깰까 조심하고 (놀랍게도) 한자 몇 개 들이밀며 물어봐도 최선을 다해 소통해 주던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물론 이 큰 나라에 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규정할 수도 모든 속내를 알 수도 없지만 나의 가장 큰 적은, 행주니 인육이니 지껄이는 내 편견이었다. 그래서 이리 더하고 빼보아도 얻은 게 더 많았던 즐거운 기억으로 마무리되었고 그다음 중국을 주저할 이유가 나에겐 많지 않았단 생각.
# 중국여행 2
중국에선 하루 정도만 움직여도 음식, 문화, 지형, 역사가 휙휙 바뀌는 압축적인 여정이 가능하다. 지역색이 강렬하고 역사가 깊다 보니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마저도 든다. 그래서 (미안하게도) 살고 싶은 나라는 아니지만 여행하기 참 재미있는 나라. 한 나라에서 오천 년의 역사가 누적해 둔 문화적 깊이, 음식의 다양성, 지형적 다이내믹을 느끼기에는 중국만 한 데가 없다. 한나라 안에서 이 정도 역동적임을 느끼려면 인도 정도일까. 통제적 정부의 계획 아래 설계된 인프라도 이용하기에 편리한 것은 덤. 실크로드 여정을 마치고 중부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야간열차를 탄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아예 또 다른 문화와 역사가 기다리는 곳에 도착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