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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digoB Apr 11. 2024

봄의 시작을 알리는 감자 순

야매 귀농인 이야기

 순순히 가기 싫은 겨울이 샘내듯이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2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작물을 제외하면 노지 농사의 시작은 보통 감자 재배부터 시작된다.  씨감자로 쓸 강원도 수미감자 10kg 한 박스를 아파트 현관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두었다. 적정온도 15~20도를 유지해 주었더니 동글한 감자에서 노르스름한 싹들이 올망졸망 고개를 쑥 내민다. 손가락으로 슥슥  만져보면 쬐깐한 놈들이 제법 단단하고 야무지다. 한 달 정도 싹을 틔워 놓고 기다리는 동안 감자 심을 땅에 퇴비거름을 주고, 트랙터로 갈아 뒤집고, 고랑을 파놓는다.


3월 초순, 감자 싹이 몸체 밖으로 튀어나와 영화에  나오는 크리처 새끼 알처럼 우글우글 제멋대로 자라 나온다. 작은 감자는 그냥 하나 통째로 심고, 성인 주먹만 한 크기의 감자는 튀어나온 싹을 중심으로 2~3등분으로 잘라 다시 1주일 정도 절단 부위가 마르게 큐어링을 한다. 땅 속 온도가 15~20도로 감자 싹이 얼지 않을 정도가 됐다 싶을 때, 드디어 씨감자를 심는다. 25cm 간격으로 흙 표면에 구멍을 내고 그 자리에 감자 싹이 하늘을 향하도록 가지런히 넣고 흙을 덮는다. 그전에 봄비가 한차례 내려 땅속이 촉촉한 상태라면 씨감자를 넣고 흙만 덮어 주면 되고, 땅이 건조하여 수분이 필요하다 싶으면 축축하게 물을 주고 흙을 한번 더 덮어준다. 씨감자를 심은 고랑 위에 농업용 비닐을 덮어 마무리해 준다. 이로써 감자심기는 끝. 차암, 쉽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마냥 쉽지만도 않다.


보름 정도 지난 4월 5일 식목일 날 밭에 나가보니 짠, 하고 감자 순이 올라와 멀칭 비닐 바로 까지 솟아올랐다. 감자 순이 햇빛을 받아 뜨거워진 비닐에 닿아 잎이 타들어 가기 전에 구멍을 내주어야 한다. 뽕! 감자 순이 숨통이 트여서 쏙, 하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벌써 잎 가장자리가 노르스름하게 변해서 조금은 아파 보였다. 그런데 사실은 그냥 사람 입장에서 아파 보이는 것일 뿐,  감자에겐 아무런 타격이 없다. 이제부터 노지의 하늘 볕, 바람, 공기, 땅 속 영양분과 습기를 받아들여서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순이 자랐다 싶으면 제일 튼튼하고 좋아 뵈는 하나만 남기고 솎아주어야 한다. 나중엔 그마저도 감자꽃대가 올라오면 꽃과 꽃대를 제거해 준다. 영양분이 땅 속 감자에게 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3, 4월이 되면 항상 벚꽃, 목련, 매화 등 봄꽃만 생각했었다. 시골 마을로 농사지으러 들어온 지 3년 차. 이제는 봄의 시작을 감자 심는 일로 맞이한다. 춥다, 춥다 하며 웅크리고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던 겨울이 지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뭔가를 부지런히 심고 가꾸어야 할 농번기 계절이 다가왔다. 정말 작고 시시해 보이던 것에서 유의미한 무엇이 싹트고 자라 나온다. 땅에 뿌리내리고 생명을 잉태하는 식물과 나무들. 그들의 신비한 메커니즘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이제야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이 자연 앞에서 겸허해져야 함을 알게 되었다.


감자는 6월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한다. 일찍 스타트를 끊은 만큼 그 어느 작물보다 빨리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작물이 감자다. 금방 캐놓은 감자를 따끈하게 쪄놓으면 포슬포슬한 식감에 달달하니 맛이 좋다. 햇감자를 1주일 정도 숙성시키면 포슬함이 조금씩 사라지고 대신 쫀득함이 살아난다. 요리해 먹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간장, 설탕을 기본으로 감자조림을 하면 열 반찬이 부럽지 않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침이 고이고 입맛이 돈다. 장 보러 가던 마트 진열대 위에 올려져 있던 감자를, 매번 시큰둥하게 바라보던 내가 이제 직접 감자를 키워낸다.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매일이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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