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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 Column

당당히 그레이헤어로 늙자!

시선과 편견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by IndigoB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염색한 모발이나 새치커버용 흑발 외엔 다양한 색상의 머리카락을 찾아보기 어렵다.


비교적 젊은 2, 30대 사람들은 밝고 다양한 색깔로 멋 내기 염색을 하는 반면, 40대 이후 중년 나이대 사람들은 점차 하얗게 세어 늘어가는 흰머리를 가리기 위해 한 달에 한번, 짧게는 2주에 한번 꼴로 미용실을 방문하고 있는 게 실정이다. 과거부터 서양에선 많은 여성들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회색빛이 도는 은발(그레이 헤어)을 유지했다고 한다. 가끔 패션쇼 등에서 시니어 모델들의 멋진 백발머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동양인에 비해 희고 밝은 톤을 지닌 외국인들이 은발로 전환되는 과정이 크게 지저분하다거나 추레해 보이지 않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하나 과연 그 얘기가 백 퍼센트 옳은 의견일까.


항상 햇빛 아래 노동하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의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색이 은발 또는 백발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 편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되려 그러한 스타일로 계시는 분을 보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더군다나 대다수 한국인들의 피부톤이 생활환경과 조건에 따라 희고 밝은 톤에서 누르스름한 톤까지 참으로 다양한 얼굴들이 존재한다. 외국인과 비교했을 때 조금 옅은 황색이라는 것일 뿐 각자의 피부톤과 스타일에 따라 그레이 헤어와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왜! 한국 사회에서만 유독 보기 힘든 모습일까?


단, 주변인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하지 않을 뿐, 전 세계적으로 금발 또는 은색 머리는 꽤 흔한 편이다. 사실 외국에서조차도 동양인에게는 예외 없이 검은 머리를 강요한다. 반면 백인에겐 별 상관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동양인이 나이가 들어서도 검은 머리를 유지하기를 강요하는 편견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염색을 끊고 자연스럽게 흰머리로 바뀌는 과정을 통해 그레이헤어로 전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는 염색을 통해서 잠시동안 젊은 외모로 변신했다가 그리 오래지 않아 적지 않게 값비싼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수고와 번거로움을 매번 감수해야 했다. 염색을 끊어볼까 결심했던 처음엔 뿌리염색으로 검었던 머리가 두피에서 일정한 길이로 하얗고 선명하게 자라 올라오는 모습을 감내해 내기가 무척 신경 쓰이고 힘들었다. 스스로 참고 인내해야 하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무엇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껄끄러운 시선과 핀잔을 듣게 되는 순간이 더욱 나를 힘들게 만들었고, 다시 미용실로 가서 염색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자기 외모 관리에 소홀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싫어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해 머리 두건과 모자로 애써 가리며 다니기도 했다.




십여 년 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염색하지 않은 은발의 단발머리를 한 모습으로 뉴스나 신문 정치, 사회면에 꽤 자주 등장하곤 했었다. 그리고 많은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그 모습을 보고 '아, 굳이 나이 듦을 속이는 염색을 중단하여도 괜찮구나'하는 각성을 하기 시작했다. 강장관의 자신감 넘치고 지적인 모습에 반한 많은 한국 여성들은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라는 막연한 동경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이 이미 몇 해 전부터 이웃 나라 일본에서 먼저 그레이헤어 붐이 일기 시작했다는 사실나는 인터넷 포털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자칫 늙어 보이고 추레해 보인다는 이유로 한 달에 한 번, 많게는 두 번 이상(전체 혹은 뿌리 염색 포함) 미용실에 들러야 했던 중장년 여성들에게는 어쩌면 신선한 충격과 함께 이러한 차별적인 문화와 편견 때문에 더 이상 고통받을 필요성이 없음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리라 짐작된다.


한국은 외모에 집착하는 사회적 분위기, 특히 한국 여성에 대한 외모 평가와 나이 든 사람에 대한 편견이 만연해있는 것이 사실임에 틀림없다. 나는 현재 청년에서 중년으로 삶의 과도기적인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이 듦에 부끄러워하지 말고 위축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용기 내어 오늘도 고통받고 있는 그레이 헤어들에게 고한다.


AI 이미지 생성 - Microsoft Copilot


나이 드는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죄지은 사람처럼 쫄(?) 지는 말자고. 신체가 어리고 젊어서 청년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마음이 항상 젊은 사람으로 늙어가자고.


남들 시선 신경 쓰지 말고 자연스럽게, 당당히 그레이 헤어로 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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