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였다
솔직히 난, 브런치스토리를 일부러 외면했던 것 같다.
나는 최근 일여 년 동안 갖가지 정보와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한 OTT, 유튜브 채널에만 푹 빠져 살았다. 영화와 드라마,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등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 공휴일 새벽까지 한달음에 몰아보기로 보면서 주야장천 파고 또 팠다. 난 한번 몰입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이 다분하다. 뭐든지 질릴 때까지 한다. 사주 관련 서적에 심취했을 때 내 사주팔자를 대입해 보니 '편관'과 '편인'이 유독 많았다. '한 우물만 깊이 파서 그 우물 안에서만 노는 팔자' 즉, 남들이 잘하지 않는 분야를 전문적으로 할 팔자라 했다. '오, 이참에 사주 역학 공부를 해볼까?' 하는 황당한 고민도 잠깐 했었더랬다. 사실 예전 하던 일도 전문직이라면 전문직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그런 내 기질 때문인지 독서 또한 개인 취향에 맞춰 무조건 마음 가는 쪽으로 '이야기 사냥꾼'처럼 최근 발간한 역사서, 소설, 산문집, 시집까지 두루 미친 듯이 읽었다. 나의 누적 독서량은 대략 5~6,000권 정도로 추정한다. 물론 '만권 독서대왕님'도 있는 마당에 자랑할 정도까진 아니어도 일 년에 10권도 읽지 않는 요즘 사람 치고는 꽤 읽은 축에 들지 않을까. 교과서, 자격증, 자기 계발서, 문화예술 관련 서적이나 잡지 등은 예외다. 아직도 세상엔 읽을 책이 너무 많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책을 가려 읽기 시작했다. 내 나름 책을 선정하는 눈과 취향이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여하튼 활자 중독증에 걸린 환자처럼 정신없이 읽고 생각하고 비판했다. 머릿속에 뱅뱅 도는 생각을 노트에 빽빽이 끄적였다. 내게 처음으로 글쓰기 스승이 되어주신 작가님의 조언이 생각난다.
사람들이 잘 쓴 글은 잘 몰라도,
못 쓴 글은 귀신같이 알아보더라.
나는 얼마나 대단히 잘 쓴 글 쓴다고 남의 글에 지적질일까. 거의 충동적으로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브런치스토리 작가 신청을 했는데 다음 날, 너무나 수월하게 작가 등록 승인을 받았다. 그걸 본 나는 곧장 오만과 편견의 늪에 풍덩, 하고 다이빙을 했다. 어리석게도 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면 내 글을 읽은 독자들이 엄청난 호응과 응원을 해줄 걸로 착각했다. 결코 현실이 만만하지 않고 녹록지 않음을 내가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로 편입한 신입작가 응원하는 의미로 많은 작가와 독자들이 라이킷을 부담 없이 팍팍 눌러줬지만 댓글은 '무플, 그 잡채!' 이거나, 어쩌다 필명처럼 마음씨 고운 '꽃보다 예쁜 여자' 작가님이 써주신 댓글이 전부였다. 구독자가 생각 보다 늘지 않았다.
크게 기대는 안 하려 노력했으나 실망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자기 모멸감에 빠졌다. 지금 쓰고 있는 이글조차도 당장 맞춤법 검사를 실행시켜 보면, 오타와 띄어쓰기, 어휘의 부족이 금방 들통나는 주제에 김칫국부터 후룩 한 사발 들이켰던 나 자신을 외면하고 싶었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당시 도전했던 '스토리텔링 공모전'에서 떨어지고 더욱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자연히 브런치스토리에 대한 내 관심도 급격히 저 세상 어딘가로 가출했고, 외면하고 싶어 한 고의적인 마음도 다분했다.
브런치스토리는 내게 어떤 공간이었을까.
이 질문은 아직도 내게 어렵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하는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에 가깝다. 나는 질문을 달리 해보기로 했다.
브런치스토리와 브런치스토리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독자들은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봤을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존재감은 있었던가. 부끄러웠다. 어쭙잖은 에세이 몇 편, 쓰다가 중단한 소설, 영화에 대해 늘어놓은 장황설...
나는 과연 노력하는 작가였나. 놉!
매일 몇 문장이라도 써서 글쓰기 근력을 키우라고 브런치스토리 알림이 와도, 놉!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데, 내 엉덩이는 스토리 공부한다는 핑계로 OTT 콘텐츠를 시청하는 안락한 소파에 머물렀다. 바로 옆에 글을 쓸 수 있는 노트북이 있음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2025년 연말이 돼서야 나는 자본주의사회 표준 고용계약서에서 풀려났다. 다시 백수의 삶으로 되돌아오니 비로소 그동안 내가 써놓은 허접쓰레기들이 노트에, 노트북에, 포털 메일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걸 봤다. 이젠 그것들을 챙기고 정리하고 버릴 시간이 되었다 생각했다. 정말 허접쓰레기인지 아닌지 선별해서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나서 새로 집중할 시간이었다. 금방 새해가 다가왔다. 그리고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글들도 들여다봤다. 쓴 것도 별로 없지만 다시 읽어보니 손발이 오징어처럼 쪼그라들다 못해 없어졌다. 어쩌냐, 이걸 글이라고. 그래서 결말은 어쩔 건데? 욕심은 많아서 저질러놓은 건 참 많네. 쯧쯧.
나는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고 완벽한 성공만을 바라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였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글은 내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돌이켜 반성하는 성찰의 글이자, 새로이 각오를 다지는 자기 암시의 글이다. 몰입해야 글 쓸 수 있다는 내 오만, 하늘이 내려주신 '어나더 레벨 탤런트'는 개풀 뜯는 소리, 나는 엉덩이 종기 돋도록 버티고 앉아 뭐라도 끄적여야 글이 나오는 지극히 평범한 자칭 작가 나부랭이...
그 사이 누군가는 치열하게 글 쓰고, 열심히 노력해서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작년 내가 처음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등록하기 몇 달 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선배 작가님이 있었다. 우연히 그 작가의 글을 읽었는데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우리가 평소 정확한 뜻을 잘 모르거나 알아도 무의식 중에 그냥 사용했던 부사, 부사를 글감 소재로 쓴 에세이 연재글이었다.
제목은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이다.
저자는 '소위 김하진 작가님'이다.
편찮으신 어머님을 간병하고 육아와 가사 일도 병행하며 쓴다는 글과 함께 필력과 글 내용이 내 눈과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일단 아이템부터 '아묻따'로 먹고 들어가는 스타트업, 같은 에세이. 에세이의 떡잎이 무럭무럭 자라 이젠 어엿한 책으로 발간되고, 이미 2쇄까지 찍은 인기 에세이집이 되었다. 앞으로 3쇄, 4쇄 쭉 발간됐으면 한다. 이 책은 글 자체의 감동 이외에 교육적인 의미와 가치까지 겸비한 책이라 주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소위 작가님은 그새 신춘문예에 도전해서 2024년에 등단까지 한 능력자였다. 등단작가가 인기작가의 필수조건은 아니라도, 작가로서 소양과 능력을 검증하는 라이선스이므로 공모전 도전은 꼭 해볼 만하다 본다. 나라는 사람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일종의 출사표, 작가 개인을 브랜드화해서 홍보할 때도 필히 요구된다. 이건 좀 과장 섞어서 하는 얘기지만, 내가 브런치스토리에서 가장 인정하고 동경하는 작가이다. 물론 다른 유명한 브런치작가님들도 있지만 유독 내가 소위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유하자면 아이돌그룹 BTS의 팬 '아미'같은 마음이라서라고. 진심으로 잘 돼서 유명해졌으면 하고 응원했던 작가와 글이었다.
어제저녁, 정확히 말해 1월 6일 20시에 '소위 김하진 작가의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북토크'를 Zoom 회의로 진행했다. '아호파파B' 작가님과 '환오' 작가님이 진행한 북토크 방은 과연 나를 포함한 여러 작가님들로 인산인해였다. 소문난 잔칫집처럼 북적북적했다. 이미 책을 몇 권 내신 유명한 작가님들도 계시고, 나처럼 문청인 분들도 계셨다. 거의 70명 가까이 모이다 보니 Zoom 회의 대화창은 한꺼번에 대여섯 개 대화글이 휙휙 올라왔다. 처음엔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렸는데, 자꾸 오픈해 달라 아호파파B 작가님이 요청하셔서 그냥 꼬질한 행색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뒤늦게 후회했지만 어쩌랴, 백수가 그런 걸...
여하튼 소위 작가님이 리허설까지 할 정도로 열심히 준비해 주신 덕분에 출간작가로서 몸소 겪은 체험담과 정보를 자료화면 딱, 띄워서 얘기하시는데 역시 프로페셔널하다 생각하며 감탄했다.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푸셨지만 핵심은 마지막에 숫자로 요약 정리한 문장으로 보여주셨다.
< 작가가 전하는 글쓰기 5대 원칙>
1. 완성하라: 졸작이라도 끝을 맺어야 실력이 된다.
2. 꾸준히 하라: '기어이'하지 말고 매일 조금씩 하라.
3. 발견하라: 영감은 멀리 있지 않다. 일상을 관찰하라.
4. 전략을 세워라: 시장을 분석하고, 퇴고로 작품을 입체화하라.
5. 도전하라: 한 곳에 얽매이지 말고 다양한 루트를 두드려라.
그리고 작가님의 마지막 코멘트가 내 마음을 울렸다. 소위 김하진 작가님, 감사해요.
영감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끝까지 쓰십시오.
될 때까지 도전하십시오.
그래! 내 영감님은 언제 불시에 올지 모르니, 휴대전화 메모장과 에버노트 앱은 필수지! 일상에서 발견하려면 유심히 살펴야 한다. 30초 정도 지나면 생각이 흐릿해진다. 관찰하고 발견하면 바로 어디든 적자. 글감만 잡으면 상상의 나래는 무한대로 뻗어가니까. 그리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쓰자. 결말까지 쭉! 포기하지 않으면 돼. 매일 꾸준히 하면 마지막에 꼭, 뭔가 내 손에 쥐어질 거야.
앞서 같은 길을 묵묵히 걸어간 작가가 뒤따르는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조언한 것들을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는 나의 의지이다. 한 곳만 파는 외골수 기질과 게으른 완벽주의를 내몸에서 벗겨내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벗겨낸 자리에 나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입히고, 성실하게 써보기로 결심했다.
이건 뭐, 새해 작심삼일, 연초 계획 같은 말이지만, 실천하는 걸 염두에 두고 스스로 자기 암시를 걸어본다.
어쩌면 나도 소위 작가님처럼 등단하고, 책도 낼 수 있어. 그래, 할수 있어. 힘내자!
나도 소위 김하진 작가님에게 덕담 한 마디 남기려고 한다.
소위 작가님,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단편소설집 꼭 출간하셔서
더, 더 유명해지시길 응원합니다.
건강도 잘 돌보시면서 집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