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산문집 [ 끝내주는 인생 ]

나 홀로 독서 챌린지(feat. 방구석) NO. 2

by IndigoB
오랜 스승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렇게 끝나는 편지였다.

"슬아, 생이란 아흔아홉 겹 꿈의 한 꿈이니
부디 그 꿈에서 무심히 찬연하기를."
'까까머리 이 남자애들은 지금 무얼 하며 살까?'


처음 이 산문집 제목을 보며,

직관적으로

'왜, 얼마나 끝내주는 인생일까'

궁금해했다.


'끝내주는' 이라는

다소 역동성이 가미된 형용사를 보며

뭔지 모를 것을 이미 완성시켰다는 확신,

그래서 뿌듯해하는 자부심을 읽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가.

'와, 정말 끝내줬어!'

'이거 완전 끝내주지 않아?'

우리가 입버릇처럼 읊는 그 '대박'처럼 말이다.


나는

이 젊고 진취적인 신진작가가

최근 몇 년 새 이룬 성과를

무척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

끝내주는 인생이란 혹여

자신을 지칭하는 게 아닌가, 하고 추측해보기도 했다.


이슬아, 그녀는

한국의 문학계와 출판계에서

자신의 재능과 기량을 선보일 '지면'을 얻기가

코끼리를 냉장고에 쑤셔 넣는 것보다 힘들 거란 현실

일찍이 자각하고,

그녀 스스로 변방에서

지면을 창조하는 작가이자 출간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일간 이슬아'

이는 실로 '개혁군자'다운 행보였다.


매일 간행하는 글이,

말처럼 그리 싶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다소 무모해보이는 용기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만들면 돼, 하는

그 패기와 도전 정신에 박수!

오, 난X은 난X이로세, 라고

어느 나이 지긋한 언니(?)가 말했다. 하하하.


꺄악, 이슬아 엉니~~~ 멋쪄부러!
내가 언니보다 훨씬 생체 나이가 많지만 뭐 어때.
그냥 늙은 동생 하면 되지 뭐, 흐흐~~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자.


산문집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슬아 본인뿐 아니라

가족, 배우자, 친구, 지인, 동료들...


그중에서도

글을 배우진 못했지만 타고난 총기(?)로

신내림을 받고 집안을 부양했던

증조할머니 '순남'씨 이야기는

'나의 유래'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를 통해

이슬아 본인 인생이 그저 나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순남 씨의 피를 이어받아

슬아의 할머니에게로,

다시 어머니 '옥희'씨에게로,

마침내 슬아 본인에게까지 이어지는 생의 연결이,

사는 내내 고단하고 퍽퍽한 삶이었어도

애써 버티고 오롯이 살아냈던 순남 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낭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끝내주는 인생으로

이어가겠다고 다짐하는 화자, 이슬아.


산문집을 읽은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고 사유했던 산문이

'그랜드 도터'다.


나도 가끔 뜬금없이

내 뿌리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함이 생길때가 있다.


누군가의 피와 살이

지금의 나를 만든 재료가 됐을 텐데,

나는 어디에서 비롯되어 어디로 이어질까.


때가 되면 땅으로 되돌아가는 게

자연의 섭리지만,

그들의 삶이 끝을 향해

매일 뚜벅뚜벅 걸어갈 동안

내 삶은 새로 나고 자라고 똑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의 삶은 내 것이 맞지만,
동시에 나만의 것만은 아니다.


육체는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나

그가 남긴 유산과 정신의 흔적은 그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어느덧 나는

가족이나 배우자, 친구, 동료, 친지 등이

죽을 위기를 넘기거나 죽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서글픔'의 감정에 혼란하고 어지럽다.


그리고

미래의 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지금 그걸 맞을 준비가 제대로 되었는가 하는

좀 때 이른 듯한 고민에 빠진다.


진정 나는

내 삶은 비록 고단하고 힘듦의 연속이었으나

그 인생 자체로 끝내주는 인생이었다고,

말하며 조용히 죽고 싶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과 꽤 촘촘하게 얽히고설키며

유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산문집 '끝내주는 인생'에는

삶의 궤도 안에서 운명인 듯 필연처럼 마주치는

나의 사랑, 가족, 친구, 동료, 사람들 이야기도 나온다.


슬아에게 얼른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겪는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보라,

살아생전 꼭 좋아하는 슬아의 글을

계속 읽고 싶다던 어느 할머니.


사기를 당해 돈 때문에 힘든 친구를

슬아와 또 다른 절친이 위로하다가 알게 된

키스와 관련한 웃긴 사연.


군인 친구의 간곡한 부탁으로

충동적으로 강연 요청을 수락했다가

겪는 황당하고 웃긴 사연.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통해 떠올려본

유년시절 동생 찬희와의 추억.


지금은 옆지기가 된

'이훤' 작가와의 영어수업에 관한 과거 이야기와

멀리 떨어져 있던 이훤 작가에 대한 슬아 나름의 소회.


이밖에도 이슬아 주변 사람들,

특히 글과 관련해 도움을 주는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은 이야기.

많은 이야기들이

산문집에 알알이 포도알처럼 박혀있다.



아주 최근 읽은

이슬아 작가의 소설 '가녀장의 시대' 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사회가 점점 가부장을 탈피하고

고대 모계 사회처럼

엄마 중심 가족 체계로 전환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봤는데...


아잉, 슬아 엉니가
그냥 막 소설로 똬악, 가녀장의 시대라고
세상에 선포해버렸지 모야~~!


발칙한데 당당한 그녀의 소설이

본인 얘길 한듯, 안한듯 논픽션의 경계를 슬쩍 허물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예스24


이슬아 작가는 좀 더 진보한 형태를 제시했다.

가부장도, 가모장도 아닌

딸이 가장이 된 '가녀장의 시대'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녀의 첫 장면소설이고,

제목부터 먹고 들어가는 이 매력적인 소설을

손에 잡고 읽기 시작하는데

앞서 말한 바,

나에게 정말 신선한 카타르시스를 줬다.


딸이 생계를 책임지고

아빠와 엄마가 집안밖의 일을 돌보는 조건으로

월급을 가장한, 용돈(?)을 받아

가정을 꾸린다는,

발칙하고 유쾌하며 깨발랄한 이야기.


이글을 읽으시는 독자 중,

아직 못 읽어보신 분이 계시다면

이땅에 살고 있는 딸들은

한번쯤 읽어보시라 권하는 소설이다.


개인 팬심을 상당량 섞은 글로

다시 얘기가 삼천포로 빠진 것에 대해

독자님께 유감스러운 마음을 전한다.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우헤헷.



다시 '끝내주는 인생'으로 되돌아오자.


이슬아는 산문집 마지막에

끝내주는 인생에 대해 인용한 대목이 나온다.


살아남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나이 든 언니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말하곤 한다.
하나의 고생을 지나면 또 다른 고생이 있는 생이었다고.
그중에서도 어떤 언니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끝내주는 인생이었다고.
그 언니의 말을 들으면 너무 용기가 나서 막 웃는다.

- 중략 -

마지막 문장을 쓰게 하는 건 언제나 독자다.
독자가 글을 완성시킨다는 진실을 작가만큼 사무치게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들이 기다려주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날마다 겨우 글을 완성한다.

글을 보내고 나면 책상을 치운다.
노트북과 키보드와 찻잔이 있는 나무 책상이다.
아침마다 책상에 앉을 수 있다면, 이 단출한 장소로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어디든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 p. 218~9


나는 처음 오해하고 잘못 받아들였던

그 '끝내주는 인생'이 뭘까 곰곰히 생각했다.


그래서

독자로서 생각한 끝내주는 인생이란,


좋든, 나쁘든 살만했고,
잘 살았든, 못 살았든 살아낸 것 자체로
충분히 인사받고 존중받아야 할 인생.

지금도 우리 모두가 사는 그 인생이
바로 끝내주는 인생이다.


마지막으로

필자 마음대로 선곡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생각나고 듣고 싶은 노래라서

링크해서 올려본다.



영화 보이후드(Boyhood) OST








덧붙임

이 산문집에 언급한,

이슬아와 남동생이 직접 작사, 작곡하고 부른 노래가

책 말미에 QR코드로 수록되어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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