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썰렁한 잔칫집

by IndigoB

밥을 다 짓고 난 아궁이 앞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이다. 부지깽이로 잿더미를 살살 뒤적이다 보면, 발그레하게 불씨를 품은 숯덩이들이 보석처럼 숨어 있다. 그걸 화로에 소중히 담아 방으로 가져가면, 차갑던 방안 공기가 금세 훈훈하게 변한다. 그 은은하게 달궈진 숯 위에 알밤이랑 가을에 말려둔 생선을 올려놓으면, 지글지글 소리까지 어찌나 맛있는지 모른다.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쌩쌩 들이치는 한겨울에도, 우리 식구들은 화로 하나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방안 가득 비릿하고 고소한 생선 굽는 냄새가 퍼지고, 부모님에 언니, 오빠, 동생들까지… 좁은 방에 발 디딜 틈도 없었지만 우린 그냥 좋았다. 숯검댕이 묻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깔깔깔 웃음보가 터지면 가난 같은 건 잠시 잊혔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어도 식구들 온기가 있어서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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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이상했다. 고깃국 냄새가 진동하는 큰아버지 집은 어쩜 그리 썰렁한지. 아무리 이제 막 땅이 풀리는 봄이라 하인들이 일하러 나갔다 해도, 꼭 빈집 같이 이렇게 휑할 수 있냔 말이다. 좀 전에 다시 떠온 물을 마시고 막 정신을 차린 아버지가 크게 한숨을 쉬면서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마당 한가운데 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보더니 부르르 떨면서 몸서리를 쳤다.

- 쥐어짜도 피 한 방울 나올 저 인간들, 암만 집에 음식이 넘쳐나도 쌀 한 톨 나눠주는 법이 읎제!

아버지의 그 혼잣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큰어머니가 얼마나 무섭게 으름장을 놓던지, 난 부엌 아궁이 솥에 손 하나 까딱 하지 않았다.


- 근데요, 아부지! 참말로 이상허여. 부엌이고 어디고 할거 없이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없구먼요.

- 잉, 안 그래도 그런 거 같어. 자식 없는 내외한테 식솔이래야 밑에 부리는 하인들뿐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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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는 슬쩍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버지가 턱끝으로 큰어머니를 가리키며 눈을 찡긋하는데, '너는 큰어머니를 맡아라' 하는 신호였다. 곧바로 우리는 잽싸게 달려들었다. 아버지는 큰아버지의 떡메를 가로챘고, 나는 큰어머니 손에 든 나무 주걱을 냉큼 뺏어 들었다. 순간 큰아버지가 흠칫 놀라 눈을 치켜뜨고 아버지를 노려봤다.


- 이런 염병할 눔! 또 뭣이냐?


- 얘! 넌 왜 내 옆에 붙어 서서 치근대는 거여?


순간, 큰어머니 코 옆에 난 시커먼 왕점이 눈에 들어왔다. '움마, 우리 큰오빠 점이랑 똑같네!' 하는 생각이 들어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어쨌거나 나는 얼른 비굴할 정도로 살갑게 웃으며 말했다.


- 큰엄니, 다들 어디 갔길래 이 생고생을 하셔요? 저희가 할테니께, 편히 쉬셔여. 헤헤.

- 네에, 형님! 저와 용순이가 후딱 알아서 할테니, 얼른 주시고 저짝으로 가 계셔요.


- 흠! 좀 전까지만 혀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대들 땐 언제고, 갑자기 요로코롬 알랑대는 게 영 수상허다잉?


큰아버지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우릴 보며 투덜댔다. 그러자 아버지는 연신 고갤 조아리며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며 말했다.


- 아이고, 형님! 자식이 누구헌티 맞는 꼴을 보믄 애비 마음이 오죽하겄시여. 아깐 지가 잠시 헤까닥 했는갑소. 참말로 큰 실수를 저질렀구먼요. 부디 넓은 아량으로다가 용서 해주시랑게요.


- 오호라, 너 시방 나 자식 읎다고 유세 떠는 것이제? 뭔 말을 해도 내 귀엔 곱게 안들리니께, 그냥 싸게, 싸게 떡메나 치거라잉!

결국 큰 아버지가 미심쩍은 표정을 하고 절구에서 물러났다. 뱀처럼 실눈을 뜨고 입술과 콧수염을 실룩이며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째려보았다. 아주 못마땅해 죽겠다는 얼굴. 역시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잔소리를 속사포처럼 와르르 쏟아내곤 뒷짐을 지고 어슬렁대며 마루로 걸어갔다. 그새 큰 어머니는 '옳거니, 이게 웬 떡이냐' 하는 표정으로 앞치마에 손을 쓱 닦고, 실실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부엌으로 갔다.


- 아부지, 이 떡 맹들고 나믄 우리 밥 한술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남요? 지 배가 고파 힘이 하나도 없네여.


- 에고고, 이거 다 끝내고 니 큰어무니한테서 찬밥 한 덩이라도 얻어볼랑게, 쫌만 더 힘내보자!

아버지는 자신의 가느다란 팔보다 훨씬 굵고 묵직한 떡메를 머리 위에까지 들어 올리느라 끙끙 앓는 소리를 냈고, 나는 크고 끈적한 떡덩이를 주걱으로 뒤집느라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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