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미운 놈 떡 하나, 고기 한점

by IndigoB

시종일관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꽥 소리만 지르던 큰아버지였다. 그런데 목소리에 기름칠을 좀 했는지, 훨씬 누그러진 말투로 큰어머니에게 아버지와 내 몫으로 밥과 국을 더 가져오라고 시키는 게 아닌가. 큰어머니는 눈을 붕어처럼 대문짝만하게 뜨고는, '세상에 해가 서쪽에서 떴나' 싶은 표정으로 구시렁대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도 얼른 큰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가 상 차리는 걸 도왔다. 아무도 초대하지 않은 집에서 자기들끼리만 생일상을 차려 먹으려니, 밥상머리가 휑하니 허전해서 그랬나 보다 짐작했다. 우리는 상 두 개에 밥을 나누어 차렸다. 짭조름한 간장 냄새 풍기며 반들반들하게 조려진 닭고기에, 노란 콩고물을 눈송이처럼 소복하게 뒤집어쓴 인절미까지 자리를 잡으니 제법 잔칫집 같았다.


아버지와 내가 뼈가 마디마디 비명을 지르도록 떡메를 치고 뒤집어서 만든 그 인절미를 보니, 아까의 눈물겨운 사투가 생각나 눈시울이 시큰했다. 나는 코를 개코처럼 킁킁대며 쌀밥과 고깃국에서 나는 달큼한 냄새를 들이마셨다. 그간의 서러움은 숭늉에 밥 말아 먹듯 꿀꺽 삼켜버리고, 난생처음 마주한 이 호화로운 밥상에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멍하니 밥상을 내려다보는 아버지 표정도 나랑 판박이였다. 남녀가 유별하다는 케케묵은 법도 때문에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큰어머니와 내가 상을 따로 두고 앉았다. 큰아버지가 입을 꾹 다문 채 수저를 집어 드는 찰나, 아버지가 그 틈을 타 축하의 말을 화살처럼 쏘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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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 생신 감축드립니다. 앞으로 무탈하시고 강건하시길 기원합니다요. 형님과 함께 식사하는 게 이 얼마만인지... 감개가 무량하지라.

- 으이구! 내가 너 이뻐서 귀한 쌀밥과 고깃국을 덥석 내주는 줄 아느냐. 자꾸 니 눔이 찾아오는 바람에, 미운 놈 떡 하나 준다 생각허고 실컷 멕이고 쫓아낼 심산으로다 이러는 거여. 알아들었음 얼른 먹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거라잉.

- 네에, 형님 덕분에 오늘 배불리 실컷 잘 먹겠습니다요. 허허허!


아버지는 자존심은 안방 장롱에 넣어두고 왔는지 실실 웃으며 큰아버지 비위를 맞췄다. 두 형제가 마주 앉아 밥 먹는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눈물 없이는 못 볼 감동의 한 장면이었다. 그 바람에 나도 모르게 '큰아버지가 겉으론 툴툴거리며 심술맞게 굴어도, 알고 보면 속정 깊은 사람 아닐까' 하는, 지나가던 개가 웃을 생각까지 했다.


아버지가 수저를 들고 살짝 뒤돌아보며 나에게 얼른 먹으라는 듯 눈썹을 움찔거렸다. 배가 고파 등에 배꼽이 닿을 지경이었던 나는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밥과 국을 폭풍처럼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맞은편에 앉은 큰어머니가 벌써 밥그릇 밑바닥을 구경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닭고기 조림도 서너 조각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속도가 거의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고기 조각이 하나둘 증발하는 걸 보니 내 마음도 숯불 위 콩 볶듯 조급해졌다.


나는 시선을 고기에 고정한 채 미친 듯이 수저를 놀렸다. 큰어머니는 음식을 씹기는 하는 건지, 목구멍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고기를 빨아들였다. 매일 이런 걸 드시고 사실 양반이 날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저러는 게 분명했다. 아까 곰방대가 큰어머니 이마로 날아가던 살벌한 기억이 스쳤다. 수저와 그릇이 부딪치며 내는 '쨍강' 소리가 흡사 전쟁터의 칼싸움 같았다. 그러다 마침내, 양념 국물이 고인 그릇 한복판에 딱 하나 남은 닭 조각이 보였다. 내 눈이 번개처럼 번뜩였고, 잽싸게 그것에 젓가락을 내리꽂았다. 그렇지! 이번엔 내가 더 빨랐다. 마지막 금쪽같은 고기 한점을 사수했다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내 입술이 실룩거리는 걸 참느라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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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우악스럽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큰어머니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화가 뿔 끝까지 난 큰어머니가 그릇을 자기 쪽으로 확 낚아채는 게 아닌가. 그 바람에 밥상 한쪽이 번쩍 들리며 기우뚱해졌다. 덜컹거리는 상 위에서 내 젓가락은 춤을 추듯 튕겨 나갔고, 그릇들도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들썩였다. 내 소중한 닭고기 한 점은 결국 방바닥으로 데구르르 굴러떨어지고야 말았다.


- 어허! 체통 없이 밥상머리에서 뭐 하는 짓이여? 임자, 어서 찬 냉수나 좀 떠 오소!


큰아버지가 소란스럽다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그 말투가 욕심쟁이 큰어머니보다는 굴러온 돌인 우리를 구박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내 등 뒤에서 밥을 먹던 아버지가 숟가락을 가만히 내려놓더니, 큰아버지 쪽을 유심히 살피며 넌지시 물었다.


- 그러나 저러나, 형님! 진작부터 여쭤보고 싶었습니다만, 아랫사람들 다 어데 가고 집에 아무도 ... 집에 뭔 변고라도 생긴 겝니까?

- 어허! 변고는 무슨 변고! 밥 다 먹었음 그만 썩 돌아가거라!

- 허참, 어찌 이리 역정을 내십니까여? 저 형님 아우, 흥부 아닙니까? 형님께 무슨 일이 있다믄 제가 응당 알아야 도리입죠!


큰아버지는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갑자기 길길이 날뛰며 우리를 내쫓으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늘따라 찹쌀떡처럼 착 달라붙어 연유를 물어댔다. 바닥에 떨어진 닭고기가 너무 아까워 얼른 손에 주워 들고 침만 삼키던 나는, 괜히 고집 피우는 아버지에게 그만 가자고 옷자락을 당기고 싶었다.


평소 같았으면 큰아버지 호통 소리에 신발도 못 신고 벌써 도망갔을 아버지가 왜 이렇게 완강한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걸까? 이러다 또 사달이 날까 싶어 내 심장이 다시 북 소리처럼 둥둥 울리기 시작했다.


- 아니, 이 눔이 나헌티 고러케 줘터지고도 날 형님으로 여기다니, 니 놈 속도 참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로구나!







다음 주엔 설 명절 연휴로 연재를 잠시 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설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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