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산(龍琇山).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에게 물려주셨다는 산이었다. 하지만 그 산은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온 선산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사연으로 할아버지 소유가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언가 알고 계셨을 할머니마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용수산은 우리 가족에게 더 깊은 의문점이 되어버렸다.
산은 오르면 오를수록 커다란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아 꼭 절벽처럼 느껴졌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절벽 꼭대기에는 아주 넓고 맑은 호수가 하나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아무리 지독한 가뭄이 와도 그 물은 마르는 법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호수 밑바닥이 끝도 없이 깊을 것이라고 소곤대곤 했다. 호수 물이 절벽 끝으로 모여 폭포가 되어 쏟아졌는데, 좁고 길게 뻗은 물줄기가 꼭 용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거꾸로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멋졌다.
그림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운 산이었지만, 사실 용수산은 풍경 말고는 별로 쓸모가 없는 험한 곳이었다. 대부분 가파른 바위라 제대로 된 길도 없었고, 입구에만 나무가 좀 자랄 뿐 울창한 숲도 보이지 않았다. 폭포 옆 골짜기를 따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만이 산 정상에 닿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힘들게 올라가서 호수를 보고 나면 고생한 게 다 잊힐 만큼 좋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산을 무서워했다. 절경에 취해 있다가 다시 내려올 때 마주하게 될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애초에 함부로 발을 들이기 어려운 산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큰아버지에게 그 산을 다시 돌려달라고 말했다. 큰아버지는 조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실 웃으면서도 슬쩍 관심을 보였다.
- 그 용수산,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산이여. 산 아래 쪼금 있는 땅도 나무랑 칡덩굴만 빽빽하지, 자갈투성이라 농사도 못 지어먹는단 말여.
큰아버지의 말에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 형님, 아버님께서 제게 그 산을 왜 물려주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라. 그냥 저희 식구들이 부지런히 땅을 일구다 보믄, 뭐라도 심어 먹을 게 있지 않을까 혀서 돌려달라 청하는 것이죠잉.
- 흥부야, 이 물색없는 눔아! 그 산에 집채만 한 호랑이가 산다는 소문도 못 들었냐? 괜히 올라갔다 호랑이 밥이 됐는가, 소식 끊긴 놈이 한둘이 아녀! 어리석긴, 쯧쯧.
- 형님,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애물단지 같은 산을 왜 악착같이 뺏으셨습니까여? 그 산은 원래 제 것이었응께 인자 돌려주시고, 걱정은 그만 내려놓으쇼잉. 대신, 저희 식구들이 형님 댁 일을 다 도와드리겠습니다요.
- 어허! 너으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설랑 우리 집 살림 거덜 내려는 건 아니고?
- 아이고, 형님! 의심도 참 많으십니다요. 밑에 어린것들은 빼고, 애들 넷이랑 저랑 안사람까지 거들믄 되지라? 일하는 동안 양식거리만 좀 주시믄 충분합니다요. 허허허.
- 흠, 그래도 많이는 못 주니께 그렇게 알어. 내 분명히 말혔다! 잉?
- 말 나온김에, 용수산 땅문서는 꼭 돌려주셔라. 땅 명의도 본래대로 고쳐주시고... 형님이 약속을 지켜 주셔야, 저도 힘을 보탤 것잉게요. 이런 큰집에 두 분만 계시믄 참말로 위험하지 않겠소잉? 암요!
큰아버지는 쓸모없는 산이라면서도 막상 돌려주려니, 다시 그놈의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커다란 눈을 희번덕거리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속이 타는지 자꾸만 입맛을 다시는 큰아버지를 보니, 왠지 내 마음도 덩달아 조마조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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