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가볍게 주무르며,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맞춰 무겁게 입을 뗐다. 그의 눈동자에는 며칠 전 겪었던 기이한 일에 대한 당혹감이 여전히 서려 있었다.
- 그게... 이틀 전 꿈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님이랑 어머님이 나타나셨는디...
행랑아범은 구슬을 감싸던 보자기 끝을 매만지던 손놀림을 멈추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 내게 물려주셨던 산, 용수산이 시방 큰일 났응게 싸게 가보라고, 어치케나 어두운 낯빛을 하시는지... 근디 뭣 땜시 위험헌지는 통 말씀을 안 해주시는거여.
꿈에 나타나신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을 떠올리는 아버지의 멍한 눈길이 멀찍이서 은은하게 비치는 호롱불에 가 닿았다. 행랑아범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천천히 고갤 앞뒤로 주억거렸다.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버지가 계속 다음 이야기를 해주길 애타게 기다렸다.
- 하도 꿈이 뒤숭숭하니 가슴이 떨려서, 이 아이, 용순이를 데리고 일단 큰집부터 가봤소. 거그를 가야 뭔 소식이라도 알 것 같아서...
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불길하다는 듯이 몸을 떨었다. 보랏빛 불꽃이 일렁이는 구슬에서 비치는 빛이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 위로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 근디 큰집엘 갔더니, 집안 분위기가 아주 거시기헌 게 심상치 않은겨. 형수는 영 눈빛이 불안해 뵈고, 형님은 뭔 비밀이 있는지 화가 잔뜩 나 있고... 두 사람 말곤 집에 쥐새끼 한 마리도 없구 말이여. 암만 봐도 이상혔어.
아버지는 그날 썰렁했던 큰집 분위기가 떠오르는지 눈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행랑아범은 그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구슬을 다시 한번 비단 보자기로 조심스레 덮었다. 보랏빛 불꽃이 가려지자 동굴 안을 비추는 횃불이 노인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문득 내 마음속에는 산의 정기가 죽어간다는 말처럼 서늘하고 무거운 어둠이 내려앉았다.
행랑아범은 아버지의 꿈 이야기를 듣더니, 뭔가 알 것 같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역시 조상님들, 아니 두 어른께서 작은 서방님을 일루 부르신 거구만요. 큰 서방님이 천지분간 못 허고 산의 노여움을 샀응께, 어여 수습하라고 말입니다요.
행랑아범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노인의 거친 손마디가 비단 보자기 위를 힘없이 문질렀다. 그는 보따리를 다시 한번 고쳐 쥐며 말을 이었다.
- 이 구슬이 그냥 보물이 아녀요. 이게 바로 용수산의 심장인디, 큰 서방님이 산신령님 성소에 쳐들어와설랑 요걸 보자마자 탐을 내서 손을 대부렀소. 그 뒤로 산맥이 뒤틀리고 산 기운이 썩어가는 게지요. 계속 이대로 놔두믄 결국 산이 갈라지고 무너져서 저 아래 강이고 뭐고, 마을까지 죄다 뒤덮일 것이구먼요. 우덜이 요걸 다시 돌려놔야 허는디...
노인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도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우리 쪽을 살폈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졌지만, 남자 장정들의 눈빛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아버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행랑아범을 바라보았다.
- 그라믄... 시방 이 구슬 땜시 용수산이 요 모양 요 꼴이 됐다는 건가?
- 예! 그러니 귀신 돌아댕기는 소리가 자꾸 들리고, 산짐승들도 다 미쳐가고 있지라. 서방님도 보셨지 않습니까? 안개가 도깨비처럼 사람 홀리는 거 말입니다요.
행랑아범이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여전히 밖에선 폭포 소리가 마치 산이 지르는 비명처럼 동굴 안을 울렸다. 그제야 비로소 우린 단순히 산에서 길을 잃은 정도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거대한 ‘재앙의 입’ 속에 제 발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리고 나는 몹시 떨리는 두 손을 꽉 틀어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 서방님! 애기씨! 지금부터 제가 허는 얘기, 잘 새겨들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꼭 믿어 주셔야 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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