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화가 머리끝까지 난 괴물처럼 하늘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시커멓게 변해버렸고,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포승줄에 묶인 우리 어머니와 언니들, 오빠 얼굴이 하얗게 드러났다. 나는 정말 가슴이 덜덜 떨려서 미칠 것 같았다.
- 흥부야, 이눔아! 내 참을성도 한계가 있구마잉. 어째 내 손이 달달 떨려설랑, 요 칼날이 어디로 튈지 나도 모르겄구마잉. 흐흐.
큰아버지는 입술을 비죽거리면서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 손에 든 시퍼런 칼날이 어머니 목덜미 근처를 왔다 갔다 하는데, 어머니는 숨도 크게 못 쉬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때 넋 나간 사람처럼 그 모습만 보고 있던 아버지가 갑자기 내 어깨를 꽉 잡아챘다. 나를 보는 아버지 눈동자가 막 사정없이 흔들리는 걸 보고 내 심장이 서늘해졌다. 아버지의 떨리는 손끝이 동굴 안으로 향하는 입구를 가리켰다.
- 용순아! 용순아, 내 말 좀 들어보그라. 저그... 저그로 다시 들어가서 구슬 좀 싸게 가져오자. 얼른!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아부지, 안돼요! 그 구슬 빼내면 산이 다시 숨을 못 쉬게 된단 말이어요. 이제 겨우 살려놓은 걸... 우덜 손으로 도로 끊어버리자는 거여요?
- 아이고, 산이 죽든 말든 그게 뭔 상관이여! 시방 너으 어매 목에 칼이 들어와 있구, 니 언니들이랑 오라버니가 저 꼴을 하고 있는디!
아버지는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하면서 내 어깨를 흔들었다. 평소 법 없이도 살 것 같던 양반이 그러는 걸 보니 정말 내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큰아버지는 그 구슬이 아버지 수중에 있는 줄 알고 우릴 겁박하고 있지만, 사실 그건 조금 전에 내가 성소 제단 구멍에 쏙 집어넣고 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동굴 쪽을 쳐다봤다. 아까 들어갔을 때 느꼈던 그 따뜻한 빛이랑 발바닥에 전해지던 기분 좋은 떨림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걸 도로 내 손으로 꺼내버리면 용수산은 다시 그 축축하고 어두운 죽음의 산이 될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언니들이 끅끅대며 우는 소리랑 아버지가 빨리 들어가서 구슬을 가져오자, 소리치는 게 들리는데 도대체 이를 어쩌란 말인가.
(엄니랑 형제들을 살려야 헐지, 이 산을 지켜야 헐지! 난 어뜩 혀!)
내게 너무 잔인하고 힘든 고민이었다. 구슬을 내주면 우리 식구들은 살겠지만, 산을 배신하면 무슨 벌을 받을지 몰라 무서웠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지금 당장이라도 엄마 목에서 피가 솟구칠 것 같아 눈앞이 캄캄했다.
(천지신명님, 보고 계셔유? 제발 저희 좀 살려주셔요...)
나는 나도 모르게 품 안에 손을 쑥 넣어 까만 깃털을 만졌다. 그게 손가락 끝에 닿는 순간, 성소 안에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뜨거운 기운이 팔을 타고 몸 전체로 쫙 퍼지기 시작했다.
- 용순아! 얼른 들어가지 않고 뭐 하냐잉! 이 애비 말이 안 들리냐?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아버지가 팔을 휘저으며 울듯이 소리를 지르는 순간, 아버지의 왼발이 공중으로 붕 떴다. 아까 산기슭에서 떨어져 다친 오른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로 옆 낭떠러지 쪽으로 몸이 기울어진 것이었다. 벼랑 끝 너럭바위에 떨어진 빗물에 그만 발이 미끄러진 아버지의 몸은 이미 허공을 가르며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낭떠러지 아래엔 용수산 꼭대기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거센 폭포수가 계곡 아래로 거침없이 흘렀다.
- 아부지!
내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빗줄기를 가르며 미끄러지는 아버지의 몸이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지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아버지를 향해 온몸을 던졌다. 품 안의 깃털이 한 번 크게 꿈틀 하며 내 팔에 말도 안 되는 힘을 불어넣어 주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허공을 가르던 아버지의 저고리 자락을 낚아채서 바위 위로 확 끌어당겼다.
- 어이쿠!
아버지는 내 손에 이끌려 너럭바위 위로 간신히 올라왔다. 아버지가 안전한 곳으로 올라온 걸 확인한 순간,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너무 세게 잡아당긴 탓일까, 아니면 비에 젖은 돌바닥이 너무 미끄러웠던 걸까. 아버지를 끌어올린 반동 때문에 내 몸이 그만 앞으로 쑥 쏠리고 말았다.
- 용순아!
멀리서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발밑에 있던 바위가 사라지고 빈 허공이 발바닥을 스쳤다. 중심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려 봤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내 몸은 그대로 낭떠러지 아래, 거센 폭포수가 쏟아지는 계곡물속으로 처박혔다.
촤악!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커다란 물소리가 나를 덮쳤다. 눈앞이 하얗게 번쩍이더니 차디찬 물살이 순식간에 내 몸을 집어삼켰다. 숨을 쉴 수도,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 알 수도 없었다. 거센 물줄기가 나를 저 아래 계곡 밑바닥으로 사정없이 끌고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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