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부활

by IndigoB

차디찬 물살이 가슴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차가운 물이 코와 입으로 쉼 없이 밀려들었다. 그건 단순히 숨을 못 쉬게 하는 무서움을 넘어, 내 온몸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지던 폭포 소리는 어느 순간 먹먹한 정적 속에 잠겼다. 나를 향해 울부짖던 어머니의 비명도, 하늘을 가르던 번갯불도 아득한 수면 너머로 흩어졌다. 내 몸은 끝을 알 수 없이 깊은 물 밑으로 속절없이 가라앉았다.


(나 참말로 죽어?)


초점을 잃어 허한 눈동자가 도통 어디가 어딘지 몰라 시커먼 어둠 속을 더듬었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엄청난 무게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그저 조용한 어둠에 둘러싸여 몸의 혈관을 타고 뜨거운 맥박이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을 받았다. 팔을 머리 위로 뻗어 허우적대면서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해봤지만 거친 숨만 가빠져왔다. 난 그대로 점점 약해져 가는 맥박을 느끼며 아무 소용없을 것 같은 체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때였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찬 물속에서 한 줄기 눈부신 흰색 광채가 불현듯 피어올랐다. 내가 저고리 속에 품고 있다가 벼랑 아래로 떨어질 때 함께 떨어트린 그 까만 깃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순간 부르르 떨더니, 스스로 빛을 내뿜고 마치 하늘을 나는 새처럼 팔랑거렸다. 이내 물 속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가벼운 날갯짓을 시작했다.

(내 눈에 헛것이 다 보이네!)


그러다 그게 차츰 제비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눈앞을 천천히 맴돌았다. 제비가 지나간 자리마다 은은한 빛의 궤적이 그려졌고, 빛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 중에 흩어지는 꽃가루처럼 물 안에서 사라졌다. 그 빛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는 동안 차디찬 물의 감각은 점점 둔해지고, 꿈길을 헤매는 듯 기억 저편에서 문득 떠오르는 한 장면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꽃향기를 실은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따스한 봄날 아침이었다. 나는 부엌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밥 지을 불을 지피려고 장작을 땠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의 온기가 발갛게 달아오른 내 뺨을 적시던 그때, 다친 제비가 내 어깨 근처로 날아와 사뿐히 내려앉았다.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요양하던 제비는 유독 내 주변을 맴돌며 자주 따라다녔다.



녀석은 꼭 사람처럼 내 얼굴을 빤히, 아주 오랫동안 쳐다봤다. 왠지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눈망울이었다. 내 모습이 비춰보일 듯 말 듯,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 속이 그저 짐승의 눈이 아닌 것처럼 매우 신비로웠다. 그게 하도 신기하고 귀여워서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제비에게 말을 걸었다.

- 아야, 너 왜 글코 날 뚫어지게 보냐, 얼굴에 숯검댕이라도 묻었냐잉? 아니믄 내가 너므 이뻐설랑 요로케롬 쳐다보는 거여, 이잉? 봄볕도 따스한께 얼른 나아서 저그 넓고 파란 하늘로 신나게 날아가야제.


내 말에 화답하듯 고개를 까닥이던 제비의 잔망스러운 모습. 그때 내 손가락 끝에 닿았던 그 보드라운 깃털의 느낌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 정신 차려! 어서 눈을 떠!


꿈결처럼, 혹은 영혼의 울림처럼 단호한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쾅하고 울렸다. 나는 그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감겨 있던 눈을 뜨는 순간, 눈앞에 제비가 뿜어내던 빛이 순식간에 내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코와 입으로 서늘한 공기가 밀려 들어와 숨통을 확 틔웠다. 이내 호흡이 돌아오고 시야가 환해지자 내 안 깊은 곳에 낯설고 기이한 변화가 찾아왔다. 금방이라도 내 몸에서 뭔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것은 마치 아주 오랫동안 봉인되어 잠들어 있다가 한순간 폭발하듯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했다.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차가운 물살이 주홍빛으로 일렁이더니, 갑자기 어떤 강렬한 기운이 몸에서 쓱 빠져나와 순식간에 거대하고 신성한 어떤 형상으로 현신(現身)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한 하얀 용, 백룡(白龍)이었다.


순백의 비늘은 물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하며 마치 수천 개의 진주를 박아놓은 듯 눈부셨고, 그 몸집은 폭포 전체를 감쌀 만큼 거대했다. 머리에는 고목나무뿌리처럼 우아하게 쭉 뻗은 은빛 뿔이 돋아 있었고, 눈동자는 수천 년 세월을 오롯이 품은 듯 자애롭고도 깊은 지혜의 빛을 띠고 있었다. 백룡은 거대한 몸을 둥근 모양으로 비틀어서 아직까지 정신이 몽롱한 나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내 살갗에 용의 하얀 비늘이 닿자마자 온몸을 얼려버릴 것 같았던 냉기가 눈 녹듯 사라졌다.

소용돌이치던 물살이 백룡의 신성한 기운에 밀려나 스스로 길을 텄고, 거센 폭포의 물줄기는 백룡의 차분하고 우아한 움직임 앞에 두 갈래로 쩍 하고 갈라졌다. 나는 중력을 거스르는 힘에 이끌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고, 우리 가족이 두려움과 슬픔에 울부짖는 그 벼랑 끝까지 백룡에 의해 올려졌다.


백룡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나를 너럭바위 위에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몸을 휙 돌려 큰아버지와 복면을 쓴 괴한들을 향해 대지를 뒤흔들 만큼 거센 포효를 냅다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백룡이 포효하는 소리가 용수산과 산 아래 들녘, 저 멀리 있는 마을까지 온 천지에 울려 퍼졌다. 하늘에서 번쩍이던 번개조차 그 기세에 눌려 순간적으로 멈춘 것 같았고, 금방이라도 산 전체가 무너질 듯 요동쳤다. 백룡이 아가리를 크게 벌리자, 번갯불보다 훨씬 더 뜨겁고 맹렬한 불꽃이 큰아버지 무리를 향해 쏟아졌다.



불꽃이 지나간 자리는 바위가 촛농처럼 녹아내렸고, 칼을 휘두르던 복면 사내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함하고 겁을 집어먹은 큰아버지는 벼랑 끝에서 멀찍이 떨어져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몸을 움츠렸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제 남은 건 큰아버지 놀부와 그 옆을 지키던 대여섯 명의 사내뿐이었다. 바로 그 찰나였다. 줄에 묶인 채 기회를 노리던 행랑아범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저고리 소매 속에 몰래 숨겨두었던 작은 칼을 꺼내 자신과 옆에 있던 장정들을 묶은 줄을 단숨에 끊어버렸다.


- 이 천하의 몹쓸 놈들! 감히 신성한 산을 욕보이다니, 내 이 뜨거운 손맛 좀 봐라!


흥분한 행랑아범의 외침과 함께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다. 포박에서 풀려난 장정들이 남은 괴한들에게 달려들었고, 그 틈을 타 행랑아범이 어머니와 언니들, 오빠를 차례대로 풀어주었다. 무서워서 뒷걸음질 치던 큰아버지는 이제 우리 가족들에게 꽁꽁 둘러싸였다.


- 이 사악한 놈! 네놈이 그러고도 울 애들 큰아버지라고 할 수 있냐? 넌 가족도, 뭣도 아녀! 이 천벌 받을 놈아!


분노에 찬 어머니의 매서운 호통이 빗줄기를 뚫고 울려 퍼졌다. 행랑아범은 끊어낸 줄을 다시 집어 들어 큰아버지의 두 팔을 뒤로 꺾어 단단히 결박했다. 천하의 악질 놀부, 큰아버지가 우리 가족 앞에 무릎을 꿇고 벌벌 떨고 있었다. 내 곁에 주저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눈에 잠시 안도하는 눈빛이 스치다 이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마도 아버지는 유일한 혈육인 큰아버지에게 실망한 마음이 가장 크겠지만 동시에 안타깝고 서글픈 감정 또한 느끼셨으리라 나는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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