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선생님
그는 삼십 대의 국어 선생님이었다. 단정했다. 뿔테 안경이 잘 어울리는 여지없이 선생님 얼굴이었다. 양복 소매에 늘 토시를 끼고 수업에 들어왔다. 중학교 내내 나는 10반이었다. 일 학년과 이학년 때 담임은 기술과 공업 담당 선생이어서 우리 반은 늘 공작실 청소 담당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일 학년 때 국어선생이 담임을 맡자 나는 내심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막연하게 문학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공책에 시를 몇 편 써서 그에게 보아달라 청을 했다. 그는 흔쾌히 청을 받아주기는 하였다. 며칠 후 그는 나를 조용히 불렀다. 그는 내 시에 대해 즉물적인 시라는 둥 평이랄까 그런 것을 하더니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약하자면 시인이 된다는 것은 먹고살기 힘든 일이다. 그러니, 우선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그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거나 혹 그 말을 들은 뒤 시 쓰기를 그만두었다든가 하지는 않았다. 이학년 때 나는 교지에 시를 냈고, 교지 편집위원이던 그는 내 시를 실어 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가 내게 그런 조언을 한 이유는 아마도 그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교사가 되기 전 청년 시절의 그도 어쩌면 시인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시를 써서는 배곯기 십상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앞에 두고 고민하다가 시를 쓰기보다는 시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는지 모른다. 그는 성실한 선생이었다. 그리고, 솔직한 선생이었다. 학생들에게 원대한 이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는지 몰라도 무모한 꿈을 꾸지 않도록 해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는 어쩌면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어린 제자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 여린 청년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조언대로 나는 시를 쓰는 일과는 다른 길을 걸었고 시가 아닌 다른 입에 풀칠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그를 떠올릴 때면 왠지 내가 시답잖은 시를 써 들고 그를 찾아갔던 그 날, 그는 철없던 내게 시를 써서는 먹고살기 힘들다고 이야기 해준 뒤 퇴근길에 포장마차에 들러 혼자 깡소주를 들이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면 아직까지 발표하지 않은 시 한 편쯤을 썼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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