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길을 개척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제학교 나래 선생님
천안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제주에서 시작한 첫 교직생활. 누가 봐도 '안정적인' 삶의 궤도였지만 나래 선생님은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외로움과 방황 속에 제주를 떠나 서울로 향했고, 다시 국경을 넘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날아갔습니다. "이왕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한 거,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 하나로 시작한 여정은 어느덧 12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초임 시절 느낀 좌절, 서울에서 경험한 자유로움, 자카르타에서 마주한 성장까지, 세 도시는 선생님에게 각기 다른 배움을 선물했습니다. 지금 나래 선생님은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에서 '호학심사(好學深思)'라는 급훈 아래 아이들에게 '존중'과 '경계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안정을 추구하던 그가 어떻게 국경을 넘는 용기를 발견했을까요?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떤 성장을 이뤄냈을까요? 제주에서 시작해 세계로 쭉쭉 뻗어나가는 나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뷰: 선생님 안녕하세요! 방방뷰가 타국에 계신 선생님을 만나뵙는 것 처음입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나래: 안녕하세요. 자카르타 한국 국제학교(Jakarta Indonesia Korea School, 이하 JIKS)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나래입니다. 제주 교육청 소속으로 타시도 교류를 통해 서울을 거쳐 지금은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교직 생활을 하고 있어요.
뷰: 제주와 서울, 그리고 인도네시아까지 장소의 변화 만큼 선생님의 이야기가 다채로울 것 같아요. 오늘 인터뷰가 기대가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각 지역에서 몇 년씩 계셨어요?
나래: 제주에 5년, 서울에 3년,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4년이 되어갑니다. 올해로 12년차가 되었네요.
뷰: 섬과 육지, 나라와 나라를 오가며 교육 활동에 힘쓰고 계시는군요. 선생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나래: 어릴 때부터 교사가 꿈이었던 것은 아니에요. 성적에 맞춰 교대에 진학한 게 시작이었어요. 입학 직후에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어느새 자연스레 교대 생활에 녹아든 저를 발견했어요. 훌륭한 동기들을 만나서 즐겁게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오늘의 초등교사가 되었네요.
뷰: 대학생활에 이어 제주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셨어요. 선생님의 처음은 어떠셨나요?
나래: 처음 발령받았을 땐 모든 게 새로웠어요. 모든 게 새로운 만큼 많이 미숙하기도 했겠지요. 하지만 이때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동기들과 함께한 시간이에요. 첫 발령 받은 학교가 제주 시내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서 퇴근 후 동기들과 만나는 게 수월했어요. 배울 것도 많고 긴장도 많이 하던 시절이었는데 동기들 덕에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뷰: 초임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세요?
나래: 처음으로 결재를 올렸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당시의 저는 결재 라인에 순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교장 선생님께서 결재를 승인하는 일이 있었어요. 분명 선배 선생님들께서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보세요’라고 친절하게 챙겨주시지만, 내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게 초임이잖아요? (웃음)
뷰: 맞아요. 누구나 실수하면서 자라는 법이지요. 제주에서 5년 교직생활을 하시다가 서울로 파견을 신청하셨어요. 계기가 있으셨나요?
나래: 첫 학교에서의 4년 근무를 마치고, 서귀포로 학교를 옮긴 게 계기였어요. 서귀포에 있는 1년이 저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어요. 학년 당 한 학급이 있는 6학급의 작은 학교였어요. 그러다보니 교육과정도 처음으로 직접 짜야했고, 업무량도 많았어요. 돌아보면 힘들었던 만큼 교사로서의 역량이 성장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당시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환경이었던 것 같아요. 동료 선생님들도 다들 좋은 분이셨지만 모두가 바쁘다보니 고민을 나눌 수도 없었죠.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를 보면 타노스가 핑거스냅으로 인구의 50%를 사라지게 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저렇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심적으로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었어요.
뷰: 돌파구로 환경의 변화를 생각하신 건가요?
나래: 맞아요.
뷰: 제주에서 나고 자라셨고, 제주교대를 거쳐 제주에서 교직 생활을 하는 중이셨어요. 제주를 떠나는 선택이 어렵지는 않으셨어요?
나래: 고민은 정말 많았지만 교직을 떠날 용기는 없었어요. 하지만 제주라는 지역사회 분위기와 제 성향을 생각하면 환경을 바꿔보자는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보는 제주는 취업, 결혼, 출산 등 인생의 과업을 빠르게 해가는 분위기인데 저는 발맞춰 갈 자신이 없었어요. '결혼 적령기'라는 나이에 놓여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웹툰에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두려움은 감수하라는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뷰: 결정을 하기까지 큰 용기가 수반된 결정이셨겠어요. 도망이 아닌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모습이 멋집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에서의 생활은 어떠셨어요?
나래: 서울에서의 생활은 개인적인 시간과 학교에서의 시간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를 떠올리면 꼭 시골쥐 같아요. 송파에서 근무를 했는데 집을 나서면 미디어에서만 접하던 석촌호수, 롯데월드, 송리단길, 올림픽공원이 있으니 매일매일이 신기했어요.
한편으로는 제주에 있을 때보다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제주는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고, 제주교대 출신이기 때문에 교직에도 아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거든요. 그런데 서울은 워낙 넓은 데다 저는 지방에서 왔으니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서울 생활을 하면서 결혼, 출산 등 인생의 과업에 대한 무게도 덜 수 있었어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게 저를 자유롭게 한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에서의 생활은 인프라가 놀랍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주 아이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롯데월드를 서울 아이들은 연간 회원권으로 이용하는 모습,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이 있는 박물관, 예술 강사님들만 봐도 인력풀이 참 넓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롯데월드가 있는 동네라 영향을 끼쳤겠지만요.) 이런 부분이 놀랍기도 하고, 편리하기도 했어요.
뷰: 수도와 지역, 육지와 섬이라는 환경의 차이가 확실히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겠어요. 새로운 환경에 완벽히 적응했다 싶을 시기에 다시 한번 도약을 하셨어요. 이번에는 국경을 넘어 인도네시아로요.
나래: 타시도 교류 2년에 1년 연장까지, 야무지게 3년을 채웠어요. 제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고민이 커졌어요. 제주에 돌아가면 다시금 인생의 과업에 대한 부담감을 마주하게 될 텐데 그런 부담에 눌리지 않고 자유롭게 일에 집중하고 싶었고요.
그때 서울에서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들이 큰 힘이 되었어요. 격려에 힘입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 20년 뒤에는 국제학교에 다녀온 2년을 후회하진 않을거야!”라고요. 그래서 해외를 택했습니다.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이유는 코로나라는 당시 배경이 한몫했어요. 국제적인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 국가, 공산국가인 중국은 생활할 자신이 없었어요. 공산국가를 가는 것이 더 조심스러워졌거든요.
뷰: 자카르타에서 근무하신지도 어언 4년째라고 하셨어요. 이제 많이 익숙해지셨겠지만 언어와 문화라는 장벽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적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나래: 인도네시아는 발리로 유명한 곳이에요. 그래서 대부분 ‘인도네시아에서는 영어 할 줄 알면 되겠지?’ 생각하시지만, 현지인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인도네시아어(인니어)를 사용하지요. 그래서 처음에 언어 장벽이 매우 컸어요. 첫 3개월은 주말마다 어학원을 다니며 인니어를 배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다행히 자카르타는 제법 큰 국제 경제 도시여서 한국 기업들이 많이 들어와있어요. 한식당이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은 참 좋아요!
뷰: 홀홀단신으로 타국 생활을 시작하셨어요. 이에 따르는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나래: 재외 한국학교 면접을 볼 때 단심부임들에게 꼭 하시는 질문이 있어요. “어떻게 외로움을 극복할 것인가?”, “계약을 파기하지 않고, 계약기간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가?” 등을 꼭 물어봐요. 아무래도 타지 생활이 가져다주는 외로움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가족들이 없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자카르타에서 일하는 2030 여성 모임’을 만들었어요.
뷰: ‘자카르타에서 일하는 2030 여성 모임’이라니 정말 멋있어요! 교사뿐 아니라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모여서 교류를 하며 힘을 얻을 것 같아요.
나래: 네, 힘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서 온 이곳에서 다양한 직군의 친구들까지 만나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는 재미도 있고요.
뷰: 적응력이 만렙(?)이시군요. 지금 계시는 학교는 어떤 곳인가요?
나래: 자카르타 한국 국제학교는 대한민국 정부와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동시 인가를 받은 학교에요. 한국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현지의 특색을 융합한 교육과정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한국’과 ‘국제’가 혼합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곳만의 특색은 세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국제학교다보니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요. 그리고 3-6학년 학생들은 주 38시간 수업을 듣습니다. 오전 6시 50분 아침 활동을 시작으로 오후 2시 20분에 8교시가 끝나요. 한국 학생들이 주 30시간 수업을 듣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지요?
둘째, 다양한 체육시설을 구비하고 있어요. 야외수영장, 테니스장, 농구코트, 천연 잔디 운동장 등이 학교 내에 있어서 다양한 체육 활동을 부족함 없이 할 수 있어요.
셋째, 생활 속 다문화 교육을 할 수 있어요. 교사, 교직원 등 학생들이 외국인과 직접 생활하면서 다문화를 경험할 수 있지요.
뷰: 수업은 영어로 진행하시나요?
나래: 그렇진 않아요. 저희 학교는 부모님 중 한 분이 한국인이면 입학할 수 있어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이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아요. 그래서 한국어로 수업을 하고, 영어로 보충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분수의 덧셈과 뺄셈’을 수업하는데 한 학생이 오더니 제게 이렇게 물었어요. “선생님, What is the 대분수?” 그래서 빠르게 검색 후 ‘Mixed fraction’을 찾아 개념 설명을 해준 게 기억나네요. 한국인 선생님이 각 학급 담임을 맡고 있고, 현지 선생님께서 부담임을 맡아서 서로 보완하며 학급 운영을 하고 있어요.
뷰: 자카르타 현지에서 한국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계시다고 하셨어요. 현지 교육과정이 아닌 한국 교육과정을 따르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나래: 대부분 과목은 어려움이 없지만 사회 과목 활용은 다소 어려워요. 3-4학년 사회과 교과서에서는 ‘지역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이곳 아이들은 태어나서 한번도 한국을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도 있거든요. 봄, 가을, 겨울의 변화를 겪어본 적 없는 학생들, 해안과 산지를 방문해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대다수거든요. 그래서 현지 상황을 반영한 교육 활동을 재구성하고 있어요.
올해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았어요. JIKS 4-6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북크리에이터를 활용한 인도네시아 문화 이해교육 교수학습 자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재외한국학교 교수학습자료 개발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4학년은 학생들과 캔바, 북크리에이터 두 가지를 활용해서 ‘우리 지역 문화유산’ 전자책을 제작했어요.
또 2학기에는 전남교육청 Innoclass 수업연구회 선생님들의 ‘2030 국제교육 교류 사업’에 지역전문가로 협조해서 지역 사회의 문제(사회과목)를 꺾은선 그래프로 나타내는(수학과목) 프로젝트형 수업을 함께 했습니다. 지역 자료와 에듀테크를 활용하는 새로운 시도였는데 흥미롭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뷰: 두 나라가 떨어져 있지만 연계해서 수업을 연구하며 연결되는 게 뜻깊어 보입니다. 제주든 서울이든 인도네시아든, 장소와 환경이 바뀌었을 뿐 교육활동을 계속 하고 계세요. 가르치는 일은 공통인데요. 각각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나래: 제주는 지역 특색이 매우 뚜렷한 곳이지요. 항몽 유적지, 4.3 등 근현대사 유적지 등 지역과 관련된 역사를 다룰 수 있는 게 아주 많아요. 아름다운 자연도 손꼽을 수 있고요. 현지에 있는 자연물을 교육에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반면 서울은 앞서도 말했지만 교육 인프라가 매우 잘 되어 있어요.
사회적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으니 교육적 인프라의 양질이 높은 것은 당연하지만 하다못해 전국대회도 주로 서울에서 열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스케일이 크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반면 이곳 자카르타는 학교 내 시설이 잘 갖춰져있어요. 앞서 말했듯 다양한 체육시설이 구비되어 있고요. 이곳은 초등이라면 학교를 정말 즐겁게 다닐 수 있어요. 주 38시간으로 수업 시수가 많긴 하지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교를 재밌게 다닐 수 있습니다.
뷰: 다른 언어, 다른 문화라는 장벽을 넘어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니 말씀하신 대로 교사 개인의 성장이 크게 일어날 수밖에 없겠어요. 한편으론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도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래: 맞아요. 보통의 경우 사실상 해외 국제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인은 동료 교사밖에 없어요. 다른 직군처럼 회사 간의 거래를 통해 사업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선생님들끼리의 관계가 정말 중요해요. 같이 카풀로 출퇴근을 하기도 하고, 가족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퇴근 후의 시간을 많이 보내요. 식사를 하기도 하고 취미활동을 공유하는 분위기에요. 요즘 한국에서 추구하는 문화와는 조금 다른 문화이기도 하죠? 공사 구분이 거의 없습니다. 교민사회가 원래 좁기도 하고요.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이곳에 있는 동안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 실제로 선생님들끼리 라포를 쌓은 게 업무 협조, 발 벗고 도와주는 문화를 만들고 있고요.
뷰: 타지 생활, 교사,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등 몇 개의 공통점만으로 서로에게 느끼는 유대감이 클 것 같아요. 같이 지내는 기간이 짧든 길든 어느 정도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JIKS는 아이들이 학교 다니기에 즐거운 곳이라고 하셨는데, 선생님들에게는 어떤 곳인가요? 한국은 교권 관련 이슈가 여전히 첨예한데 그곳은 어떤지 궁금해요.
나래: 해외 국제학교는 교권의 그레이존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께서 고용휴직계를 내고 해외에서 교육활동을 하는 중인데, 과연 휴직한 교사의 교권을 한국의 제도로 지켜줄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이곳은 교권 침해가 일어났을 때 신고를 할 기관이 없고, 저희는 외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현지 규정에 속하지도 않아요. 학교폭력 같은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교민 사회가 작기 때문에 다들 예방하려는 분위기입니다.
만약 학폭에 준하는 사안이 발생한다면 신고할 교육청이 없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는 선도위원회로, 가정에서는 부모님들끼리 해결하는 모습을 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밖에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뷰: 말씀하신 것처럼 별 일이 없어서 다행입니다만, 해외 국제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을 위해 회색지대가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 있겠어요. 한국과 확실히 다른 점이 있는데, 한국이 그리울 때도 있을 것 같아요.
나래: 크게 세 가지 상황일 때 한국이 생각나요. 첫째, 환경 때문이라기보다는 정말로 ‘환경’ 때문에 한국이 그리워요. 자카르타는 공기오염도가 매우 높은 곳이에요. 수질 상태도 좋지 않아요. 대부분의 한국인은 필터를 끼고 생활하고 있어요. 워낙 환경오염이 심한 곳이다보니 깨끗하고 맑은 한국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리고 둘째, 일을 일사천리로 해내고 싶을 때 한국이 그립습니다. 자카르타에서 통용되는 말로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다’가 있어요. 하나의 일을 처리하려면 언제 해결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빠릿빠릿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한국의 시스템이 그립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 생각이 날 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불효하는 마음(?)으로 타국 생활 중이네요.
뷰: 제주와 서울, 그리고 자카르타까지, 환경과 아이들은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선생님만의 교육 철학이 있으실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지도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나래: 정해진 답변 같지만 경청과 메모를 학생 지도에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최대한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라포를 쌓으려고 노력해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게 아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종이로 받고, 월요일 아침 다같이 운동장을 도는 활동 시간에 한 명씩 불러서 대화를 하고 있어요. 이렇게 기록해 놓으면 학부모 상담시에 유용하게 쓰이더라구요. 하니 학생들 마음이 열리는 게 보여요.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귀엽습니다.
뷰: 선생님과 관계가 좋으면 아이들이 학교 오는 게 즐거워지죠.
나래: 호학심사(好學深思), 몇년 째 급훈으로 삼고 있는 사자성어에요. 아이들이 즐겁게 배우고,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 학교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생각주머니, 마음 주머니를 키워갈 수 있도록 돕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뷰: 교실이 호학심사하는 곳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학급 운영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으시다면요?
나래: 여러 가치가 있겠지만 ‘존중’을 가르치려고 하고 있어요. ‘요즘 아이들이 버릇 없는 일’은 비단 오늘날 대두된 문제가 아니라며, 고대 이집트 비문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이집트 피라미드 내부에서 발견된 기원전 196년의 상형문자를 풀이해보니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뜻이었다고 하잖아요. 무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왜 이런 말이 진리(?)로 통할까?를 고민해보면, 결국 배우지 않아서, 즉 모르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돼요.
‘버릇’이라는 것은 결국 ‘존중’의 문제이지 않을까요? 존중을 하기 위해서는 타인과 나의 경계선을 잘 알아야만 하고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선’을 알려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너와 나 사이의 선을 알고 존중할 때 교실은 즐거운 곳이 될 수 있어요. 또 학생과 선생님의 선, 나아가서 부모와 자식간의 선, 연인 사이의 선 등 경계선을 잘 인식할 때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초등 생활지도에서 이 부분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뷰: 환경이 바뀌어도 아이들을 가르칠 때 교육철학이 동일한 것처럼, 환경이 바뀌어도 동료 교사들과 협업하는 데에도 공통점이 있나요?
나래: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 ‘세 사람이 걸어가면 그 중 한 사람에게는 배울 것이 있다’는 뜻이에요. 제가 배우려는 자세로 동료 선생님을 경청하면 세 분 중 한 분이 아니라, 세 분 모두 제게 무엇이든 알려주려고 하시는 건 제주, 서울, 자카르타 모두 같더라구요.
2024년 서울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재외교육기관 온라인 소식지’ 기자단으로 활동한 적이 있어요. 이때 <be your side>라는 제목으로 JIKS에 계시는 외국어과 선생님들을 인터뷰한 글을 투고했는데 우수글로 선정되었습니다. 인터뷰를 계기로 영어과, 인니어과 선생님들의 교육관, 교육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배울 점이 많았어요. 나이와 국적을 불문하고 경청하는 것이 최고의 협업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뷰: 제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자카르타로 쭉쭉 뻗어나가는 동안 선생님에게도 성장이 있었을 텐데요. 어떤 성장이 있었나요?
나래: 글쎄요. 어느 하나를 내세울 만한 재능이나 성장은 제게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제 장점이라면 시키는 일, 맡은 일은 어느 한 번도 거절없이 다 해낸다는 점이에요. 그 과정 속에서 겪은 많은 경험이 제 자산이자 강점이 되었어요. 업무 스펙트럼뿐 아니라 6학급 소규모 학교에서 44학급 규모 학교, 국내 공립학교에서 국제학교, 한국 아이들뿐 아니라 외국인 아이들까지, 다양한 학교 형태, 학생 수를 경험하며 자연스레 스펙트럼이 넓어졌어요.
뷰: 교육자 나래의 미래를 그려볼 때 특별한 바람이나 목표가 있으신가요?
나래: 제 미래를 상상해보면, 한 지역에 오래도록 머무는 건 잘 그려지지 않아요. 아마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교직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게 저에게도 배움이고, 아이들에게도 넓은 세상을 보며 꿈꾸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뷰: 선생님의 넥스트는 어디일지, 과연 어디에서 교육 활동을 이어가실지 기대가 됩니다. 선생님처럼 국제학교 근무를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나래: 고민하고 계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우선 지원하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무조건 하라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자카르타에서만 근무해서 다른 나라는 어떤 분위기인지 모르겠지만 학교 근무는 교사로서 해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고, 해외도 다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다같이 오셔서도 즐겁게 지내고 계십니다. 지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겁 먹지 마시고 일단 지원해보시고 붙으면 스때 고민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참고로 지원서를 쓰실 땐 꼭 해당 학교가 나를 불러서 이야기 해보게끔 쓰시기를 권장드려요. 선생님만의 장점을 십분 어필하시면, 좋은 기회가 열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뷰: 이 인터뷰가 누군가에게는 도전의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인디스쿨 선생님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나래: 저 개인이 제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자카르타로 오는 동안 인디스쿨의 모든 선생님들께 참 많이 도움받았습니다. 훌륭한 자료 올려주시는 선생님들, 작은 고민에도 귀 기울여주시는 선새님들, 같은 일을 한다는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어주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합니다.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이 필요했던 과거의 저에게 용기가 되어주신 선생님들처럼 저도 고민이 많으신 선생님들께 하나의 등불이 되길 바라며 이번 인터뷰를 마칩니다. 다들 건강한 교직생활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