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스쿨 북토크 #2, 릴리쿰의 <손의 모험>을 읽고 이야기 나눈 밤
분기당 한 번 열리는 인디스쿨 문화팀 북토크. 두 번째 시간에는 '만들기'라는 말을 낯설게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삶'으로 우리를 초청하는 책 <손의 모험>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궁극적으로 '만들기'가 아닌가, 그런데 새삼스레 왜 '만들기'를 이해하겠다는 건지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거듭 쓰이게 될 '만들기'라는 표현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일상적인 말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언가를 만든다고 할 때, 예를 들어 의자를 만든다 빵을 만든다 할 때 우리는 결과물인 의자와 빵에 무게를 두어 생각하지 그것을 만든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따로 떼어 결과물보다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만들기'라는 말의 의미를 한정하고 낯설게 보고자 함이 이 책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ㅡ p. 27
>> 종이왕 선생님과 함께하는 북토크는 시작부터 공작스러웠다
>>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삶은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삶'
>> 그러나, '만들기 권하지 않는 사회'
>> 공작하기엔 너무 위험한 우리들의 교실
두 번째 북토크 기획 회의를 하는 중에, 인디스쿨 문화팀 구성원이 북토크를 직접 진행하기보다 '공작스럽고', '만들기적인' 분이 대화를 이끌어가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석자분들에게 보다 유익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밀레니얼 초등교사 연구 덕분에 알게 된 페이퍼크래프트 덕후, '종이왕' 장욱조 선생님을 진행자로 섭외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북토크에는 진행자 종이왕 교사를 비롯해, 학교에 있는 밭을 직접 일구고, 잡초를 뽑고, 모종 아닌 씨앗부터 시작하는 농사를 지어본 교사, 도예의 반죽 치는 감각을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 교사, 비록 민족적인 배달앱의 VIP 회원이지만 동시에 파타고니아 같은 친환경 아웃도어 마니아인 교사 등 다양한 분들이 자리해주었습니다.
문화팀 행사에는 '형식적인 자기소개'와 '부자연스러운 아이스브레이킹' 강요가 금지되어 있습니다만,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라면 시작하기 전에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지요. 장욱조 선생님은 종이왕답게 자신이 준비해온 간단한 만들기를 하며 얼음을 깨자고 제안했고, 참여자들은 종이를 오려서 작은 팽이를 만들고, 이를 후후 불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친밀함'을 다졌습니다.
'만들기의 허들'을 낮추고 싶어요.
진행자는 <손의 모험>을 읽고 '만들기는 일부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만드는 일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강하게 남았다고 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만들기를 탁월하게 잘하는 교사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교육현장에도 만들기를 적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그는 '허들이 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들기 재료를 준비해왔다고 말했습니다.
덕분에 어렵지 않은 가위질과 종이접기를 하며 무척 재미있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는데요. 한 선생님은 "가위질을 하는데 이미 좋아요!"라고 말했고, 우리는 "오! 오! 선생님 이 팽이 진짜 잘 돌아요!" 소리치고 웃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부모님은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드는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셨어요. 생산하는 분들이셨죠. 요즘은 많은 것이 '전문가의 분야'로 넘어가면서, 시도할 엄두를 잘 못 내게 되는 게 있어요. 일상의 기술이 떨어지는 데 문제의식을 느껴도, 시도를 안 하게 돼요. 일이 바쁘다는 좋은 핑계도 있고요."
직접 무언가를 해보는 경험이 드물어질 수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문화가 그렇습니다. 별 문제의식 없이, 무언가를 직접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일상 기술, 만들기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영역을 소위 말하는 '전문가'에게 위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손의 모험>은 다양한 예시를 들고 이론적 설명을 보태어 손의 감각이 무뎌지게 만드는 흐름, 일상을 위탁하는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어줍니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스스로 해결하던 시대,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와는 다른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직접 무언가를 해본다는 경험은 점점 드물어지고, 그럴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멈출 줄 모르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서 각자에게 주어진 전문 영역에서, 주어진 일을 최대한 잘 해내기 위한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한다. 그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러느라 내 삶 주변 일들을 직접 돌볼 수 있는 중요한 능력을 잃어간다. 이반 일리치는 이러한 현대 사회의 모습을 '가난의 현대화'라 말한다. ㅡ p. 45
"비용을 따지다 보니 직접 만들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사는 게 훨씬 싼 세상이니까. 만드는 것보다 사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가격 중심 철학이 지배하는 사회죠."
최근 다시 대두되는 DIY는 그저 필요한 것을 만드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본주의라는 프레임에 갇혀 생존을 위한 돈벌이와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로 이루어진 '상품'과 거리를 두고 소외되었던 진짜 자신에게 주목하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이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하고 직접 만들어 쓰거나 고쳐 쓸 수 있는 능력을 장착하는 것, 그러고자 노력하는 것은 내 삶을 이루는 물건들을 주도적으로 장악해 삶에서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에 가깝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듯 주어진 선택지에서 골라 삶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지 자체를 스스로 마련하는 일이다. ㅡ p. 101
직접 만들고 고치는 삶은, '내 삶 주변 일들을 직접 돌볼 수 있는 중요한 능력'이고, '자본주의로 이루어진 상품과 거리를 두고 소외되었던 진짜 자신에게 주목하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 집중하는 기회를 포착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시장과 문화가 우리를 그렇게 견인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쉽지 않지만 저항해보자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중에 어릴 때 메이커가 아니었던 사람 누가 있나요?
한 선생님은 어렸을 때 야구 배트를 직접 깎아서 만들고 학교에서 테니스공을 주워 야구를 했던 경험, 시골에 있는 농기구로 썰매를 만들어 타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만든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이고 정체성의 표현'이라는 책의 말에 공감한다며, 지금도 마음에 드는 티셔츠가 없어서 직접 만들어 입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 말에 어떤 선생님은 "나의 취향과 사이즈 같은 것을 부정하지 않고 내게 맞는 걸 만드는 경험, 꼭 해보고 싶어요. 이미 만들어진 것에 나를 맞추는 거 말고요. 내게 맞는 걸 만듦은 나를 부정하지 않고 정확하게 알아가는 일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떠올리고, 어떻게 만들지 계획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탐색하고, 마침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했던 사물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사용하고 소비하는 방식까지 고민하면서 관계와 환경 속에 놓인 우리 자신을 생각해볼 수 있다." ㅡ p. 133
어떤 선생님은 교실에서 만들기를 하고 있는 자신에게 "한가한가 봐?"라고 물었던 동료 교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요. 그렇습니다. 책의 말처럼, 만든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이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것'이고, '직접 만들어 쓰거나 고쳐 쓸 수 있는 능력을 장착하는 것'이고, '내 삶을 이루는 물건들을 주도적으로 장악해 삶에서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시간이 남아서 하는 일로 인식되곤 합니다. 저 역시 책을 읽기 전에는 그랬던 것도 같아서 부끄럽네요.
"하위징아는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생산하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놀이 정신이 깃들게 된다고 했다. 쓸데없는 것이 주목하는 시간,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는 시간, 정신과 두 손을 자유롭게 움직여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은 최고의 빈둥거림이 될 수 있다. 어른이든 아이든 마음속에 있는 '놀이'의 가치를 되살리는 것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힘 그리고 보다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으로 연결된다. 스스로 놀이의 방법을 발견하는 잉여 짓, 자기 자신을 깨우는 놀이가 필요하다." ㅡ p. 162
교사들이 모였으니 역시 교실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한 선생님은, "만들기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고민이 돼요. 결과물이 어떻든,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을 잘 알려주고 싶어요. 결과물보다 과정을 즐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책의 내용에 공감했어요."라고 말하며 아이들이 만들기 자체를 즐거워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 지점을 나누었고, 그 말에 다른 참여자 선생님은 아이들이 만들기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돕는 일로 '작은 성공 경험'을 지속적으로 쌓아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경험, 그 성취감이 자존감 형성에도 영향을 많이 미칠뿐더러 재미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요.
그런데, 교실에 만들기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삶을 누리도록 습관을 길러주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동 연필깎기로만 연필을 깎을 줄 아는, 급식에 생선이 나올 때는 생선 가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사회를 거스르는 것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안전문제'가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약 30명의 아이들에게 안전하게 가위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한 선생님의 말,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다가 3명의 아이들이 보건실에 가는 바람에 '앞으로 만들기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절망이 되었다는 또 다른 선생님의 말은 우리 모두를 슬픈 공감으로 이끌었습니다. 안전한 만들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이디어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안전하게 가르칠 수 없어서 가르치지 않다 보니, 아예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습관을 배우지 못하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 걱정이에요.
(핀란드의 초등학교 이야기) 만들기를 비롯한 실기 과목을 다른 과목과 똑같이 중요한 비중으로 두고 교과 시간을 편성한다. 공작은 단발적 체험이 목적이 아니다. 양질의 실습 도구와 재료로 실생활에 직접 쓸 결과물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직접 만들어 쓰고 고쳐 쓰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는다. 초등 교육이 이럴진대, 대학에 워크숍을 제대로 갖추어놓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 어떤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른 이정표가 만들어진다. ㅡ p. 69
"무의식적으로 너무나 많은 물건을 구입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재사용 고민 없이 다 버리죠. 소비자로 사는 것에 회의감이 들어요. 나도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소비만 하고 생산하지 못하는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요. 릴리쿰처럼 함께 손으로 움직일, 땡땡이 공작을 함께할 이들도 찾고 싶고요."
"택배를 받았을 때도, 빵을 사 먹으며 빵 끈을 바라보면서도 죄책감을 느껴요. 할머니가 따라주시는 식혜가 아니라 캔에 들어있는 식혜를 따서 마시고, 빈 깡통을 버릴 때 죄책감이 들어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어요. 내가 동네 마트에서 흙이 묻어있는 감자를 집까지 그냥 들고 오게끔 시장이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아요."
사실 <손의 모험>은 만들기 외에도 만들기와 연결된 '소비'와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인데요. 그래서 중간중간 소비사회에 길들여진 우리들에 대한 문제의식, 최근에 더욱 불거진 플라스틱과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눈 바 있습니다. 스스로 만들고 고쳐 쓰는 문화가 소비 사회의 대척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죠.
"저는 파타고니아를 정말 좋아하고, 구제 시장에서 옷을 사입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비를 많이 하고, 사실 배달음식 앱 VIP이기도 하거든요. 아. 무슨 고해성사를 하는 것 같네요 지금. (웃음)"
시간의 한계로 소비와 환경 문제를 깊이 나누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북토크는 소비 또는 환경을 주제로 한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마 5월쯤 세 번째 북토크를 열 예정이니 슬슬 책을 물색해보아야겠어요. 인디스쿨 공지사항 / 인스타그램 / 페이스북으로 소식 들려드릴게요!
* 서로에게 질 좋은 콘텐츠가 되어 주신 모든 참여자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특히 갑작스럽게 요청드린 북토크 진행을 흔쾌히(라고 쓰고 '재미를 느끼면서도 몹시 부담스러워하며'로 읽는다) 수락해주신 종이왕 장욱조 선생님께 Special Thanks를 보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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