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북토크 #4, <아무튼, 메모>를 읽고 줌(zoom)에서 모인 날
처음 만난 사람들과 깊고 쫀쫀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걸로 유명한 인디스쿨 문화팀 북토크. 네 번째 시간에는 CBS 정혜윤 PD의 <아무튼, 메모>를 읽고 모였습니다.
"비록 내가 쓴 글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일기도 메모로서 분명히 장점이 있다. 자기 자신을 보게 만든다.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도덕적인 것의 출발이다. 자신의 못난 점을 인정하는 것도 대단한 용기다. 그러나,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 좋다.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내 속에 들어오는 이야기들에 빠지는 것이 더 좋다. 내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새로 포착한 문장이 나를 보게 만드는 것이 좋다. 그때 쓴 것과 비슷하게 재현하면 이런 메모들이 나올 것 같다." - <아무튼, 메모> 중에서
<아무튼, 메모>는 메모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실용서는 아니고, 메모하는 사람의 일상과 사유를 담아낸 에세이집입니다. 글쓰기보다는 쉽게 느껴지는 ‘메모'라는 주제를, ‘아무튼'이라는 가벼운 인상을 가지고 권하는데요. 한 선생님의 말처럼 글쓰기의 심리적 허들을 낮추어 주는, “그래, 메모 수준에서라도 시작해보자!” 마음먹게 해 주는 책입니다. 이미 메모를 성실하게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왜 메모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오프라인 북토크를 열 수 없게 되면서 인디스쿨 북토크 담당자는 참 섭섭했는데요. 안타까운 마음을 어쩌지 못해 아쉬운대로 랜선 북토크를 열게 되었습니다. 과연 오프라인 모임 같은 풍성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실험적으로 시도해본 첫 랜선 북토크. 희한하게도 인디 공간에서 모이는 것보다 더욱 친근하고 편안했다는 기묘한 소식 전해드립니다. (...)
제한된 모집 정원으로 인해, 적지 않은 선생님들께 “마감되었습니다. 가능하면 더 자주 이런 자리를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락을 드리면서 죄송한 마음이 컸는데요. 함께하지 못해 아쉽고 죄송한 마음을 가득 담아 그 날 참여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자세히 공유해보겠습니다. (첫 랜선 북토크의 소회도 듬뿍 담을 예정이니, 온라인 책 모임을 시도해보자 하는 선생님들께도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자기만의 방식으로 메모하는 여덟 사람
>> 나를 간직하고, 증오에 균열을 내고, 끓어올라 넘치는 마음을 쏟아내기 위해 쓴다
>> 언택트, 사람이 그리운 시절. 교실 이야기는 하지도 못하고 세 시간을 훌쩍 넘겨 대화 나눈 선생님들
>> 랜선 책모임이 이렇게 후련하고 애틋할 일인지!
인디스쿨 북토크는 연차(연령)와 학교를 돌아가면서 소개하는 자기소개를 지양합니다. 연차와 학교야말로 자기 자신을 가장 덜 설명해주는 내용이 아닐까 가정하고, 각자의 이야기로 자기를 소개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특정 성향에만 잘 맞을지도 모를 인위적인 아이스브레이킹도 하지 않습니다. 어색하지 않게 대화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지만, 처음 만난 사이의 ice를 조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인디 북토크의 기본값입니다.
그런데 오프라인 모임 아닌 온라인으로 북토크를 하려니, 억지로라도 친해지려는 시도를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인디스쿨 공간에서 진행했던 북토크에서는 서로에게 보내는 다정한 눈빛, 지지와 공감이 드러나는 작은 추임새, 공간의 온도와 분위기를 포함한 어떤 총체적인 실감이 참석자들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좁혀주곤 했는데요.
랜선으로 서로의 얼굴을 볼 수야 있다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아니기에 따뜻하고 안전하다는 감각을 어떻게 부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줌(zoom)은 독서토론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마음을 꺼내놓는 인디스쿨 북토크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감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메워보고자 [랜선 북토크 커뮤니케이션 가이드(클릭)]를 작성해 참석자 분들께 공유했는데요. 모두 이를 숙지해 주신 건지, 아니면 좋은 분들이 모였기 때문인지 분위기가 무척 좋았답니다. 다행스럽게도요. “정말 긴장되네요!” 긴장과 걱정을 역력하게 드러내는 호스트를 향해 모든 게스트가 웃음으로 공감하면서 인디스쿨 북토크 ‘메모 좀 하는 사람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메모 좀 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요약은 이렇습니다.
[C] 메모 고수들에게 배우고 싶어서 신청함. 오래전, 싸이월드 혼자만의 다이어리를 열심히 썼음.
[H] 일기 쓰는 습관이 있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함. ‘언어를 수집하는 메모'도 꾸준히 함. 메모장에 ‘언어 수집' 탭이 있음.
[J] 글쓰기 연습을 함. 일주일에 두세 번, 한두 단락 정도 글을 씀. 하나의 그림책을 3년째 쓰고 있음.
[M] 하루의 마음을 정리하며 주로 밤에 씀. 다이어리, 인스타그램 등 각기 다른 주제와 용도의 기록 남김. 일기를 타이핑하여 제본하기도 함.
[R] 메모에 욕망 있으나 실천을 열심히 하지는 못하고 있음. 쓴다는 행위에 엄중한 마음을 느낌. 페이스북 ‘나만 보기' 기능을 활용하여 기록 남김.
[S] 책 <아티스트 웨이>에 나온 명상 기법 ‘모닝 페이지’를 매일 아침 수행함. 일기는 에버노트에 주로 씀. 예쁜 원고지에 쓰는 걸 좋아하는 편. 좋은 글을 필사하거나, 책 읽고 든 생각을 적을 때 원고지에 씀.
[W] 인스타그램 죽돌이. 매일 아침 7시 10분 포스팅 하면서 하루를 시작함. 예전에는 사진 위주로 올렸는데 요즘은 단상을 적으려 애쓰고 있음. 꾸준히, 루틴을 만들어 쓰는 사람. (참고: INTJ임.)
[Y] 블로그에 그림책 소개글을 업로드하고 있음. 기록 습관을 유지하고자 모임을 찾아다님. 나중에 작은 책방을 열고자 하는 꿈이 있음.
메모를 주제로 줌에서 모인 우리는 메모하는 빈도와 메모의 도구, 메모 스타일이 다 달랐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메모를 별로 하지 않는다고 했던 C 선생님의 말에서는 ‘싸이월드 혼자만의 다이어리'에 관한 이야기가 싹틀 수 있어 공감하는 재미가 있었고(쓰는 행위의 트렌드가 최근 십수년간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하는지도 이야기 나누었어요), 가장 메모 고수처럼 느껴지던 S 선생님의 말에서는 명상 기법을 추천받고 에버노트와 원고지에 관한 꿀팁을 얻을 수 있어 무척 유익했습니다. 메모의 정도와 모양이 달랐지만 모두가 기여하는 시간이었답니다.
참석자 선생님들이 활용하는 메모 도구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었는데요. 수첩이나 원고지 같은 아날로그한 도구도 있었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는 스마트폰이었습니다.
메모 도구로서의 스마트폰 활용에 있어, 에버노트나 메모 앱을 활용하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SNS를 활용하는 선생님이 많았습니다. 영화나 책에 관한 소감을 블로그에 성실하게 포스팅하는 선생님, 인스타그램에 단상을 조금씩 올려두었다가 이를 모아서 블로그에 긴 글을 포스팅하는 선생님, 페이스북 ‘나만 보기' 기능을 활용해 자신의 생각을 적어두는 습관을 가진 선생님 등 저마다의 방식이 비슷한 듯 조금씩 달랐습니다.
메모 고수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왔다는, 자신은 메모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소개한 C 선생님은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 기능을 활용해 메모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장기하와 얼굴들의 <나와의 채팅>이라는 노래가 생각나기도 하고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작심하고 메모하기는 쉽지 않지만, 메신저 앱은 매일 빈번하게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주 메모할 수 있게 되더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데요.
혹시 ‘나는 메모를 잘 안 하게 되더라' 싶은 선생님 계시다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C 선생님처럼 [나와의 채팅]을 상단에 고정해두고 생각나는 것들을 가볍게 적어보시면 어떨까요? 친구에게 가벼운 메시지를 보내듯이요.
여기까지 첫 번째 랜선 북토크를 시작하던 마음을 말씀드리고, '메모 좀 하는 사람들'에 참석한 분들과 참석자들의 메모 도구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 날 우리는, 메모 잘 하는 기능인이 되는 방법보다는 '메모하는 마음'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그러다보니 '우리가 메모하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뜨겁게 나누었답니다. 그 이야기는 메모 좀 하는 사람들의 랜선 회동 2편(클릭)에서 이어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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