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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스쿨 Jun 18. 2020

메모 좀 하는 사람들의 랜선 회동 (2)

인디 북토크 #4, <아무튼, 메모>를 읽고 줌(zoom)에서 모인 날


<아무튼, 메모> 읽고 모였던 인디스쿨 북토크 리뷰 2편입니다. (아직 1편을 읽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메모  하는 사람들의 랜선 회동 (1) 먼저 읽고 오셔도 좋겠습니다*)


>> 자기만의 방식으로 메모하는 여덟 사람

>> 나를 간직하고, 증오에 균열을 내고, 끓어올라 넘치는 마음을 쏟아내기 위해 쓴다

>> 언택트, 사람이 그리운 시절. 교실 이야기는 하지도 못하고 세 시간을 훌쩍 넘겨 대화 나눈 선생님들

>> 랜선 책모임이 이렇게 후련하고 애틋할 일인지!



나를 간직하고, 증오에 균열을 내고, 끓어올라 넘치는 마음을 쏟아내기 위해 쓴다


<아무튼, 메모>를 읽으며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질문했던 것은 ‘나는 왜 쓰는가'였습니다. 다른 참석자분들도 의식의 흐름이 비슷했는지, 쓰기의 동기를 주제로 가장 뜨겁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요. Y 선생님은 자신이 왜 쓰는 삶을 사는지 이 북토크 덕분에 정리해보게 되었다고 하면서, ‘내가 좋은 기회를 잘 잡았구나! 잘 참여했구나!’ 싶다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쓰는 이유’는 겉으로 드러난 ‘쓰기의 현상’보다 훨씬 공통점이 많았는데요. 메모 좀 하는 사람들의 쓰는 동기는 “나를 간직하고, 증오에 균열을 내고, 끓어올라 넘치는 마음을 쏟아내기 위해 쓴다” 정도로 압축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씩 말씀드릴게요.



[ 나를 간직하기 위해 ] 쓴다 


나의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쓰는 선생님들 많이 계시지요. 학급의 아이들과 일어난 일을 간직하기 위해 메모하는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북토크에서도 “내 사건을 내가 기억해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써요", “누가 나를 기억하나, 내가 나를 기억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어요"라는 말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기억과 간직의 관점으로 이야기해주신 J 선생님과 Y 선생님 덕분에 일상을 기록하는 행위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글을 읽는 선생님들께서도 나의 역사를 기억한다는 마음으로 짧은 메모부터 시작해보시면 어떨까요?


Y 선생님의 메모 방식 공유 장면



[ 증오에 균열을 내기 위해 ] 쓴다 


우리가 메모하는 이유 중, 가장 폭발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은 바로 미워하는 마음, 슬픈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쓴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정혜윤 저자가 책에서 ‘메모에 관한 열 가지 믿음’을 언급하며, “아홉. 마음이 증오나 원한으로 꽉 차는 날이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꽉 찬 마음에 균열을 낼 수 있도록, 재빨리 펼쳐 볼 수 있는 것이 손에 잡히는 가까운 곳에 있으면 좋다”라고 말했던 대목을 인상 깊게 기억하는 선생님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메모를 잘하지 않는 선생님도 군대에서는 꾸준히 메모를 했다고 하는데요. 힘든 시절을 지내는 중에 메모가 좋은 해우소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현재 무척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한 선생님은 <아무튼, 메모>를 읽으며 메모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쓰는 행위는 고통에 품위를 더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지요(쓰기의 말들, 은유). 몸과 마음이 어려운 시절, 의지를 다해 쓰면서 지나가보시면 어떨까요.


증오를 배설하는 메모는 아니지만, W 선생님이 군 복무 시절 837권의 책을 읽으며 작성했다는 독서 메모


한편, 증오의 대상이 언제나 타인은 아니지요. 우리는 책에서 나왔던 “나는 왜 이렇게 후진가"의 감정에 관해서도 공감하면서, 나 자신이 싫을 때 쓰면서 이겨낸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저 자신이 진짜 싫은 감정이 들 때가 있는데 이 마음을 살피려고 글을 썼어요. 쐐기풀로 짠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일 때, 늪 같이 깊어지는 감정을 이겨내려고 써요”라는 한 선생님 말의 여운은 지금도 남아 있네요.



[ 끓어올라 넘치는 마음을 쏟아내기 위해 ] 쓴다 


R 선생님은 살면서 겪는 일들 속에서 “끌어올라 넘칠 때”,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을 글로 남긴다고 했습니다. 훌륭한 공연을 본 후의 감동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도 쓴다는 말에 우리들은 웹캠 앞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고, Y 선생님은 벅찬 순간의 기록들을 공유해주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쓴다', ‘쓰기 위해 쓴다’ 등 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글을 읽거나 대화를 하다가 재미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면 오래 기억하기 위해 적어두는 선생님들도 많았고요. 책의 내용을 더 잘 흡수하기 위해 필사로서의 메모를 하는 선생님들도 서너 분 있었습니다. 쓰기의 유익이 워낙에 많다 보니, 왜 쓰는지도 단 몇 가지 이유로 간추려내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쏟아지는 모든 이야기에 공감하며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쓰기의 유익이 대단하기 때문이겠지요.




교실 이야기는 시작도 못하고 세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우리들


늘 그러하듯이, 이번 북토크에서도 ‘책의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하고’, ‘나에 관하여 말하고', ‘교실에 관하여 나누는' 흐름을 준비했는데요. 메모 좀 하는 사람들은 세 시간이 넘도록 세 번째 파트, 즉 교실 이야기로 넘어가지를 못했습니다. 각자의 쓰기에 관해 할 말이 너무 많고, 듣다 보니 묻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또 책 추천까지 활발하게 하다 보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더라고요.


책 추천 배틀 장면(각자의 공간에서 참여하다 보니 이런 유익이 다 있네요!)

우리는 급하게 교실의 글쓰기 이야기로 넘어가는 대신, 각자의 '메모하는 마음'에 관하여 충분히 이야기 나누기를 택했습니다. 우리 마음의 건강함이 결국 교실을 풍요롭게 하지 않겠냐는 합리화인 듯하지만 진리인 이야기를 나누며 모임을 맺었습니다.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제쳐놓고 생각하더라도, 쓰는 선생님이 쓰는 교실을 가꾸게 될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닐까요?


교실 이야기도 있긴 있었습니다. W 선생님이 말해주신 내용인데요. 아이들에게 글쓰기의 허들을 낮춰주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른들도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 일기조차 부담스럽잖아요. 아이들이 일기를 쓸 때 한 줄을 쓰더라도 꾸준하고 즐겁게 쓸 수 있도록 독려하면서, 선생님의 메모 이야기를 들려주셔도 좋겠습니다.


하나 더, H 선생님이 말해주신 일종의 꿀팁도 무척 인상적이었는데요. 일기를 쓸 때 날씨를 구체적으로 써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들께도, 또 아이들에게도 권하는 바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날의 날씨를 구체적으로, 나만의 감정을 담아 서술하면 그 날을 특별한 날로 기억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참고로 H 선생님은 작년 5월 16일 날씨를 “완벽한 날이었다"라고 적어두었다고 해요.



언택트, 사람이 그리운 시절의 랜선 모임


시작하기 전에 왜 염려했나 싶을 정도로 메모 좀 하는 여덟 사람은 친밀하고 밀도 높은 시간을 보냈는데요. 모두가 이 상황을 뜻밖으로 받아들인다는 점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W 선생님은 “책 모임이 랜선으로 매끄럽게 진행될 줄은 몰랐어요. 아이들하고 줌 할 때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응을 화면으로 살피는 게 피곤하게 느껴지던데 신기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제목이 ‘메모 좀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쓰든 쓰지 않든 ‘쓰는 삶을 지향하는’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서로에게 격하게 공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듯한데요. 그래서 우리는 다음에 한 번 더 모이기로 했답니다. 그때도 책 한 권을 우리 대화의 소재로 삼아볼 예정이에요.


온라인 개학과 등교 개학 이슈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고,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이 주는 위로가 그리웠던 우리였기에 모임이 더 애틋하지 않았나 하는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데 요즘 시국이 좋지 않아서 아쉬움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런 모임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신청했어요", “코로나 사태 터진 후로는 사람들 안 만나고 집에서 시집만 읽었어요”, “요즘에 사람들 많이 못 만나서 아쉬웠는데 오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아가요"라는 선생님들의 말은 보람을 느끼게 하는 한편, 어쩐지 서글픔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튼, 메모>를 읽고 모였던 지난 ‘인디스쿨 북토크: 메모 좀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참가자 분들께 공유해드릴 예정이기도 하고, 랜선 북토크는 처음이라 세세하고 길게 후기를 적어보았는데요.


안타까운 시국으로 인해 물리적으로는 계속해서 거리를 두어야 하겠지만, 랜선으로는 더욱 끈끈하게 연결되는 인디스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크고 작게 열리는 랜선 모임들에 관심 가져주시고요, 게시판과 자료실에서 뜨겁게 교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끈끈한 랜선 동료들이잖아요...(하트)


그럼, 마지막으로 J 선생님이 북토크를 마치며 헌사하신 [ 메모 2행시 ] 를 소개하면서 글 마칩니다.


J 선생님이 친히 메모 패드에 작성해 공유한 '메모(매모)' 2행시



* 혹시 랜선 북토크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보잘것없기는 하지만 기획안(진행자의 노트)을 비롯한 사소한 팁을 공유받기 원하는 선생님 계시면 min@indischool.com로 언제든 이메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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