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백예순네 분 선생님과 함께한 교단일기클럽을 리뷰합니다.
지난해는 인디스쿨 중앙에서 참 다양한 프로젝트가 우후죽순 일어나는 해였습니다. 그중 하나는 편집부가 주관한 ‘교육적 단상과 일상을 기록하는', <교단일기클럽>인데요. 3월 0기, 8월 1기, 10월 2기 세 기수가 운영되었죠. 0기는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정식 론칭 여부를 가늠해보기 위한 일종의 파일럿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학교생활만으로도 지치고 부치는 새 학년, 그 3월에 매일 쓰기로 결심하는 선생님이 과연 얼마나 되실까 염려하면서 오픈한 클럽에 참가자 정원을 네 배나 웃도는 분들이 신청해주셨고, 계속해서 앵콜 문의가 들어오면서 이른바 ‘정규 편성'이 되었습니다.
바쁠수록 오히려 쓰면서 내 마음을 돌아본 새 학년의 0기
이보다 알찬 방학이 있었던가 싶던 여름방학의 1기
글 쓰기 딱 좋은 계절의 2기
를 운영하면서 164분의 선생님을 만났고, 126종류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인디스쿨은 2021년 한 해 동안 126종의 책을 발행한 출판사라고도 볼 수 있네요. 사실 164명의 참여자와 126종의 책이 인디스쿨 전체 회원 약 14만 명에 비하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닙니다만, 가볍게 시작한 클럽 기획자들에게는 감당 가능한 최대치의 수였기도 하여, 참 뿌듯합니다. 과장을 보태어 말하면, ‘추수 때 농부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싶었달까요.
시작할 때의 마음은 참 애잔하면서도 심플했습니다. 운영진과 사무국 내부 공유를 위한 기획 노트에는 클럽의 목적과 기대효과를 갖가지 갈래로 적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바람은 ‘우리 모두 스스로 자기를 더 잘 돌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였습니다. 언제나 많은 소진을 야기하는 새 학년인데, 여기에 팬데믹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업무와 블렌디드 수업이라는 과제까지 닥쳐오는 등 여러 가지 혼란이 ‘또’ 예상되었기 때문이에요. 힘들 때 가까운 이를 만나서 수다라도 떨면 힘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우리 모두 강도 높게 거리를 두던 시절이잖아요. 선생님들이 매일 쓰면서 하루를 돌아보고, 이만하면 잘했다고 자신을 다독이고, 소위 ‘현타'가 올 때 내 일의 가치를 되새기면서 마음을 다시 세우고, 단단하게 시절을 지나실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혼자서라도요.
그러한 마음을 바탕으로, "쓰기는 내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일"이라는 은유 작가의 말에서 받은 영감을 곱게 버무려 ‘자기 자신과 대화하면서 시간의 터널을 안전하게 지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서의 <교단일기클럽>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홍보를 위해 “매일 쓰시면 책으로 만들어드리는, 교단일기클럽" 같은 혜택 중심의 카피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사실 책을 만들어드린다는 점은 ‘매일 하루를 돌아보며 글 쓰는 일’에 동기를 부여하는 차원에 불과하답니다.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글 쓰는 행위 자체에 있다.
- 나탈리 골드버그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세상을 열심히 서핑하던 분이라면 <체리북>을 아실지도 모르겠어요. 체리북 웹사이트에 100일 동안 성실하게 글을 쓰면 배송료만 지불해도 자기만의 책을 받아볼 수 있었는데요. 그럴싸한 책 집필보다도 10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는 습관에 방점이 있는 챌린지였죠. 교단일기클럽 기획자 중 한 사람은 100일 연재에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책으로 완성하지 못한 바 있답니다. (0기 참가자 중 한 28년 차 선생님께서는 체리북 도전에 성공하신 바 있다고 하셨어요. 완전 리스펙트!)
교단일기클럽도 정해진 기간 동안 자유로이 연재하는 운영방침 대신 체리북의 방식을 차용해 ‘매일 쓰기'라는 규칙을 세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획자들의 시선이 작문과 창작보다는 ‘매일 내 마음 돌보기'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학기 중에 매일 쓰는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이 얼마나 혹사스러운(?) 일인지 잘 알기에 총 연재 기간이 한 달이면 20여 일 정도만 작성하셔도 목표 달성으로 간주하고, 패자(?) 부활전을 만드는 등 조금은 유연하게 운영했습니다.
과정을 지나며 기획자들이 깜짝 놀란 것 중 하나는, 쓰기를 향한 선생님들의 열정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참여자분들이 교단일기를 반드시 책으로 만들고 싶다며 성실하게 연재하셨고, 실물 책에 크게 기뻐하며 클럽이 매월 열렸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많이 주셨어요. 교단일기클럽을 완주하시면 인쇄된 책 한 권과 더불어 인쇄용 파일, 인쇄소 주문 매뉴얼도 보내드리는데요. 이를 활용해 가족이나 동료들과 책을 나누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이 전파 활동의 영향으로 다음 차수 클럽에 지원하시는 선생님도 꽤 계셔서 뿌듯했어요.
좋은 것은 너무 애써 알리려 하지 않아도 구전되기 마련인데, 우리 클럽이 그렇게 입소문 나는 프로그램이구나! 싶었답니다. 교단일기 본문과 쪽지를 통해 매일 연재하는 유익에 관해 전해주시고, 교실의 학생들에게 “선생님 책 나왔어!” 자랑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으면서, 참여자 선생님의 변화와 채움과 성장의 여정을 함께 기뻐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교단일기클럽은 글쓰기를 교육하거나 서로의 창작을 돕는 목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쓰는 일'에 애정과 열망이 있는 많은 선생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꼭 나만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진, 내 이름으로 책 내는 일을 버킷리스트처럼 간직해온 선생님들과 연결되면서, 어떻게하면 클럽이 그 선생님들께 더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클럽 매 기수 종료 직후 참여자분들께 설문을 구하면서, “선생님이 만약 교단일기클럽 기획자라면"이라는 질문을 드리는데요. 혹시 에세이 쓰는 법 연수나 합평 혹은 피드백 세션을 열어줄 수는 없는지 조심스럽게 물어오시는 참여자분들이 꽤 계셨습니다. 교단일기클럽은 취지상 그 부분에는 준비가 되어있지 못해, 일단은 기획의 서랍에만 담아두었는데요. 언젠가 그런 확장형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해당 문항 응답에는 편집부와 한 팀처럼 고민해주신 고견이 참 많은데요. 그 내용들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고, 한계 안에서 하나씩 둘씩 적용해가고 있습니다. 참여자 덕분에 매 기수 조금씩 더 나아지는 교단일기클럽이에요. 일신우일신!
선생님들의 후기를 읽어보니, 클럽에 참가하면서 “머릿속에 어렴풋하던 생각을 정리해보는 기쁨", “감정의 해소", “자존감과 성취감", “성찰이 가져다주는 성장"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ㅋㅋ'와 ‘ㅎㅎ'가 없이 글 쓰는 일"과 "독자를 상정하는 글쓰기"를 훈련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기획자들은 ‘온전히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집중하게 하려면 게시판 연재가 아니라 비밀 일기를 쓸 수 있도록 기획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인디스쿨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 구성원 모두의 유익을 생각하면서 게시판 연재 방식을 고수한 바 있는데요. '독자를 상정하는 글쓰기'를 훈련하셨다는 후기는, '게시판 연재 방식이 참가자에게도 유익한 점이 많구나' 하는 안심과 뿌듯함을 안겨주었습니다. 현재 교단일기클럽은 타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조금 더 독자를 고려하는 글을 쓰는 <게시판 연재 트랙>과 검열이 덜하게 내밀한 글을 써볼 수 있는 <구글 문서 연재 트랙> 두 타입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디스쿨 게시판에 연재하면서 수많은 랜선 동료에게 유익을 끼치는 중에, ‘내가 글을 좀 쓰는구나?’ 새삼 깨닫는 선생님도, 교단일기클럽 원고로 브런치 작가가 되신 분들도, 클럽 원고를 기초로 투고해 정식 출간을 하게 되신 선생님도 계셔서 클럽 기획자들은 무척 기뻤습니다. 이런 말 조심스럽지만, 자기만의 성취를 해낸 제자를 바라보는 옛 담임의 마음 비슷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책을 내고 작가가 되기 위한 고시반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절이잖아요. 그와중에 우리 클럽은 ‘야 너두 이 법칙만 따라 하면 작가 될 수 있어' 식의 콘텐츠 비즈니스와 다르게, 자기답게 쓰는 일에 동기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성취를 이루어가시는 작가 선생님들이 생겨나는 곳이라는 점에서 더욱 보람됩니다.
삶에서, 의미란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의미는 관계를 짓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 존 버거
교단일기는 인디스쿨 커뮤니티 초창기인 2000년대부터 운영진을 중심으로 무척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교사 성장의 촉매인데요. 내 교실에서 일어난 일을 돌아보며, 이름 짓고, 기록하는 일은 교사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을 돕고, 전문성을 키워가는 일에 기여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연수, 논문, 동료 교사의 말에서 접해보셨을 거예요. 잘 알려진 교단일기의 유익에 더하여 마음을 돌보고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세워가는 일까지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교단일기클럽 운영하길 잘했어!’ 싶게 하던 영향들이 있는데요. 바로 교실의 학생들에게 가 닿은 일과 인디스쿨 전체 커뮤니티에 기여한 일입니다. 클럽을 처음 기획하던 당시만 해도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라는 관점에서, 선생님 마음을 돌보는 일이 어린이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바람으로 지녔을 뿐, 구체적인 상을 그리지는 못했는데요. 회차를 거듭하면서, 선생님이 꾸준히 글을 써서 책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학생에게 안기는 좋은 자극을 비롯해, 클럽의 운영 방식이나 클럽에서 제공하는 글감을 실제적으로 교실에 적용하시는 등의 사례를 접했고, ‘역시 교사는 무얼 경험하든 교실과 연결 짓는 사람들이지!’ 감탄하고 또 일타쌍피, 아니 일거양득의 보람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1기 때 실험해본 자매 프로그램 ‘교단일기클럽 - 환경 글쓰기 챌린지'의 경우 교실에 가 닿는 영향이 정말 멋졌는데요. 챌린지 참여가 어린이들과 함께 환경적 실천을 시작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고, 클럽에서 제공하는 실천 가이드와 클럽 내에서 공유되는 내용들로 교실 속 환경 교육이 더욱 다채로워지기도 했습니다. 환경 글쓰기 챌린지는 교단일기클럽과 맞붙여 운영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어 2기부터는 잠시 멈추었지만, 조만간 그때의 경험에 기획을 덧대어 새로운 형태로 다시 선보일 계획입니다.
클럽 활동의 일환으로 연재하시는 선생님들께 클럽 밖에서 “원래 인디에 이렇게 양질의 글이 많이 올라왔었던가요?”라는 댓글을 달아주시는 독자가 나타나기도 했고, 환경적 실천에 관한 내용은 환경문제에 진지한 관심이 있는 적지 않은 수의 독자에게 외롭지 않다는 감각과 실천 지식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참가자분들 중에는 인디스쿨에 가입한 지 십 년이 넘도록 자료 다운로더, 시쳇말로 ‘눈팅족'에 불과했던 자신이 처음으로 글을 써보는 경험을 다 해본다고 말씀하신 분도 계시는데요. 클럽 참여의 일환으로 올려본 글에 격려와 공감의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면서 신기해하며 마음 따뜻해하고, 또 ‘댓글이 달리지 않아도 생각보다 민망하지 않구나!’ 경험하면서 공동체와도 한 발 더 친숙해지신 것 같아요. 개인을 돌보고자 시작한 일이 전체 공동체의 밀도를 높이는 일에도 1그램 기여한 셈이네요.
기록한다는 것은 조수간만처럼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오는 인생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죠. - 김영하
다음 차수를 계획하고, 한 해 동안 운영하려면 ‘이 일을 왜 하는가?’의 답변쯤 되는, 프로젝트의 의미가 마음에 더 많이 밀착될수록 좋은데요. 그러한 탓에 미담과 보람에 관해 많이 적었습니다만 아쉬운 모습들도 있었어요. 게시판 연재를 거듭할수록 사람들 반응이 너무 신경 쓰여서 쓰기 힘들어진다고 고백하시는 분도 있었고(정말 있을법한 일이죠), 클럽 참여자 간 상호작용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거나, 매일 쓰는 일이 마음을 돌보기보다는 너무 큰 부담으로 작용하더라는 피드백도 지속적으로 받았습니다. 이 한계들을 어떻게 해소하면서 조화로운 운영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됩니다. 매월 운영하지 못하는 점도 늘 죄송하고요.
교단일기클럽 다음 기수는 지난해보다 뭐라도 나은 모습으로 3월에 다시 시작될 예정입니다. 모집은 2월 중순~말 경을 예상하는데요. 2022년 3월이라는 엄청난 챌린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록으로 나를 돌보고 교실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인디스쿨 알립니다(공지사항), 편집부 인스타그램을 유심히 봐주세요. 그럼, 지난해 편집부와 함께 아름다운 날들 만들어주신 백예순네 분의 선생님께 감사와 사랑 보내며, 글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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