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작별, 사랑의 흔적들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지난 1월 속초 여행, 당시 가족 세 명이 모두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은 몰랐다.2023년 11월,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았고 의사로부터 수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치유가 된다면 어떤 것도 바랄 게 없었다.
2024년 1월, 의사는 수술실에서 간전이가 된 것을 확인하고 폐복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내 간을 몇 개라도 내놓을 수 있으니 수술을 해달라’고 했다.
수차례 고통스러운 친척의 암치료 과정을 봤기 때문에 항암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던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치열하고 간절히 화내고 부탁했다.
항암 독성에 지쳐가고 있던 날들엔 새벽마다 앓던 신음을 들을 때마다 컨디션을 물어보고 그 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게 좋았다.
의료대란 시국, 아버지에게 고열과 오한이 왔을 땐 원주에서 신촌까지 내달렸고, 각종 부작용과 복수가 찼을 때마다 하루종일 전화통을 붙들어 방법을 찾았다.
지난 6월, 1차 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아버지가 더 이상의 치료를 그만하겠다고 했을 땐 앞으로의 나날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우수한 호스피스 병원을 물색했다.
아버지가 섬망으로 사경을 헤맬 때 여명이 길어지길 바라기보다는 눈을 감아 평안하길 기도했다.
진단부터 사망까지 8개월의 기간. 돌이켜보니 그간의 나의 행동과 마음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었고, 지난 7월 18일 아버지의 소천 뒤 장례식을 찾아준 친지들의 이야기와 눈물을 보면서 70년 간 아버지가 베풀어 온 커다란 사랑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일흔 가까이되는 나이에도 변화하는 세상을 기쁨으로 적응해 내고 젊은 날의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내 평생에 벗이자 청년이었던 아버지,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것 하며 살라”는 문장을 건넨 아버지, 여태 잘 몰랐던 사랑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떠나셨네요.
일찍이 느껴서 감사를 표현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많은 일이 그렇듯 진작 알고 하면 좋았을 것을.
감사하고, 곧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