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이사를 했다, 집들이를 오기로 한 아버지가 아프다며 방문을 미뤘다.아버지가 투병을 시작하고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1년 가까이 흘렀다.
지난해 10월,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주말이었다. 집들이를 오겠다던 부모님은 당일에 돌연 다음에 오겠다고 했다. 아버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 두 분 모두 좀처럼 약속을 취소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진 않았다. 짐 정리할 것도 남았겠다, 잘됐다 싶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말, 또다시 아버지 몸이 많이 안 좋다며 다음에 오겠다 했다.
'술 좀 적게 드시지...'
그때만 해도 다른 이유가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
그렇게 부모님을 만나지 않은 채 한 달이 흘렀다. 11월 16일. 아버지의 음력 생일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네 아버지가 좀 아픈 거 같아.”
업무 중 듣게 된 어머니의 목소리와 통화 내용은 분명 평소와 달랐다. 곧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 거 아니야. 피검사했는데 수치가 조금 이상하게 나온 거야. 엄마가 괜히 오버하고 그래.”
60년 넘게 큰 탈 없이 지내온 탓인지 아버진 스스로 의사보다 더 과감한 의학적 판단을 하곤 했다. 당시에도 아버진 늘 그랬던 것처럼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며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이미 아버지의 이 같은 반응은 내게 신뢰를 잃은 지 오래, 더군다나 어머니 목소리에서 느껴진 불안함은 평소와는 분명 다르게 다가왔다. 그 직감은 '정말 괜찮은 지, 아닌지'에 대해 설왕설래할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아빠... 힘쓰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피검사 결과지 사진 찍어서 보내줘."
전화를 끊고 몇 분 뒤 아버지는 피검사 결과지를 보냈다. 건강검진 때 조금씩 높았던 각종 간수치는 정상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특히 'Total Bilirubin'이라는 것은 정상의 10배 이상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이제는 빌리루빈 수치가 '황달'을 의미하고 당시 상태는 초응급이라는 것도 해석할 수 있게 됐지만, 그때도 예삿일이 아니라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당장 큰 병원 진료를 알아볼 테니 그리 아시라"고 통보하고선, 서울대병원에 예약 문의를 했다. 12월 초가 가장 빠른 일정이란다. 보름이나 뒤였다. 너무 늦다.
신촌세브란스에 전화를 했다. 역시나 가능한 예약일은 한참 뒤였지만, 피검사 수치에 따라 응급 외래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수치를 불러줬다. 응급 예약 대상이라며 당장 오늘에라도 진료가 가능하단다. 응급이라 하니 걱정되면서도 진료 예약은 빨리 이뤄지니 잘된 것 같은 아이러니. 뭐가 됐든 일단 진료를 빨리 받을 수 있는 건 다행인 거다. 다음날인 11월 17일 오후 2시 신촌세브란스 소화기내과에 예약을 했다.
'큰 병원에서 진료보고 치료받으면 괜찮겠지.'
우리 가족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고 그날 저녁 부모님은 조촐히 생일 파티를 했다. 이때만 해도 이 날이 아버지의 마지막 생일이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