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세상에, 福YOU

나를 나답게, 너를 너답게 하는 힐링 에세이

by TORONTO sunny





STILL WITH YOU




20161130 정물3.jpg DONGYOO KIM

STILL -LIFE,OIL ON CANVAS, 100* 80.2CM, 2016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든 사랑의 경험이 있다. 나 혼자만 한 사랑, 둘이 나눈 사랑, 셋이 하는 삼각형 혹은 더 엮이고 복잡해지는 다형의 사랑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살다 보면 마주하는 낯설고 설레고 혹은 지긋하기도 했던 사랑이란 감정 안에 놓이곤 한다.

그리고 매번 겪어내고 습득해도 또다시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랑에 빠져 행복과 불행, 안락함과 불완전함을 느끼며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만다. 그럼에도 우린 꿈을 꾼다. 어딘가에 있을 진짜 사랑을 찾기를 바라며. 수많은 인연들 속에 내 하나의 사람이 있기를 바라며. 그것이 어쩌면 텅 빈 내 삶에 하나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어떤 인간관 계보다 친밀하고 비밀스럽고 또 치명적인 감정적 파동을 불러온다. 설렘으로 와서 죽도록 아프기도 하고, 뒤통수를 후려치는 아픔을 느끼기도 하고, 드디어 어느 한 품에 안착하기도 한다. 이처럼 밑도 끝도 없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의 과정이 지나면 우린 어떤 결론을 얻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 순간들은 힘겹게 내게 다가온 기적이었음을. 생의 빛나는 한 때였음을.





사랑의 완성이 어떤 모습에 종착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한때 열렬히 사랑을 했던 그 순간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완전에 다다른 건지도 모른다. 그때의 그 모습과 그 느낌 그 시간을 모두 잊어버린다고 해도.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강한 생명력을 타고나서 반드시 생겨나면 생을 갖게 되고 변화를 거듭하며 결론이 내지는 것이 속성이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라틴말처럼 사랑도 우리네 삶처럼 정확한 결론을 내포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고 나이를 먹고 결국에 죽음의 문을 통과하는 특별한 각자의 인생사가 있는 것처럼 사랑에도 이런 자기 겉만의 역사가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 사랑을 할 때는 환각이고 마취고 들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외칠 만큼 저릿저릿하다. 하지만 달궈지고 끓어오르던 사랑이 식으면 관계에는 균열이 가고 차곡차곡 쌓아놓은 견고한 추억이 흔들린다. 수없이 맺어왔던 불변할 것 같은 약속도 깨진다. 이렇게 부풀던 사랑이 터져버린 후에는 완전무결했던 상대에 대한 원망과 미움 이후에 찾아오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부서짐일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도 나도 무참히 쪼개지고 부서져 내린다.

탄탄한 자존감과 자아도취는 실연의 순간을 맞이하여 거대한 망치가 내려친 것처럼 일순간에 부서진다. 죽도록 사랑했던 상대를 부정하고 난 후 돌아오는 것은 내 존재에 대한 질책이다. 그래서 누구나 사랑의 과정을 마친 뒤에는 찬란하고 빛나는 한때를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이 생명력을 잃고 나면 우리는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사랑을 시작한 순간, 사랑을 하고 있는 순간, 사랑을 잃은 순간, 다시 사랑을 꿈꾸는 순간. 화가의 정물화는 사랑의 숱한 찰나를 한 장의 그림에 파노라마처럼 펼쳐놓고 있다. 지난 사랑과 현재의 사랑, 앞으로 꿈꾸는 사랑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오가는 열두 마리의 나비처럼 머릿속을 분주히 드나든다.


그림 속 꽃들은 아름답게 피어 있지만 한때의 생명력을 잃고 지금은 무미건조하다. 살짝만 닿아도 바스러질 것 같이 처참해 보인다. 꽃의 형태는 갖추고 있지만 제 색깔마저 잃어버렸다. 아름다웠던 과거로 돌아가 다시 제 빛을 찾는 것은 엄두도 못 내겠다는 듯 그대로 박제되어 멈춰 있다. 이토록 버려지고 잊힌 것만큼 서글픈 게 없다.



꽃들은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혹은 기억조차 나지 않아 재생될 수 없는 기억처럼 어두컴컴한 창고에 처박혀 존재의 가치를 잃어간다. 불운한 마법으로 일순간에 생명력을 빼앗기고 그 자리에 머물러 숨을 거두고 있다. 한때는 나를 달뜨게 하고 활활 타오르게 했던 그 사랑이, 차갑게 식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그토록 찰랑찰랑 물결치던 아름다움은 이제 차갑고 서늘한 기억이 되었고, 그때의 추억은 원형을 상실한 채 정물화<Still- Life>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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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YOO KIM


STILL - LIFE,OIL ON CANVAS, 100 * 80.2Cm 2016



지금 이 순간 사랑을 잃은 자들은 상실과 깨어짐에 눈물을 흘리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아픔조차 까맣게 잊을 것이다. 고통조차 망각이 될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 기억은 그림의 꽃처럼 생명력을 잃고 기억에 균열을 일으켜 언젠가는 산산이 조각나 존재했던 것도 잊을 것이다. 하지만 실연은 그것으로 영원히 존재하지만은 않는다.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란 이름을 갖은 나비처럼, 열두 시간을 단위로 돌고 도는 시계처럼 불현듯 찾아들 것이다.

실연의 아픔으로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는 이가 있다면 이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말없이 무의미한 눈빛으로 마냥 바라보고 있으면 잃어버린 사랑의 역사를 떠올리며 위로받을 수 있다. 사랑을 다 태워내고 사랑의 결론에 도달한 성숙해진 자신과 새로운 사랑을 빈 가슴으로 기다릴 수 있는 이 정적.

봄날의 전령처럼 <Still -Life 스틸 라이프>에는 새싹을 돋게 하는 설렘이 있다. 생명을 잃은 것에 입김을 불어넣는 나비는 운명 같은 사랑을 다시 실어다 줄 테니까. 나비의 날갯짓은 산산조각 난 실연의 아픔을 모으고 쓸어내어 또 다른 사랑을 그려 넣을 것을 기대하게 한다. 사랑은 언제나 이렇듯 언제 봄이 왔나 싶게 팔랑팔랑 날아올 테니까.

사랑을 잃은 것은 내 탓이 아니다. 안타까운 사랑이 비록 생명을 다했다 하더라도 활짝 핀 꽃처럼 한때는 충분히 아름다웠다는 것만 기억하자. 추억은 마음의 창고에 고이 넣어두면 되니까. 언젠가 거기에 두었던 사무치게 그리웠던 것조차 잊는 순간이 오면 나비는 반드시 날아온다.

'놓친 사랑에 밤새워 울지 마세요. 어차피 사랑은 그렇게 뜬금없이 찾아와서 머물다 떠나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나비 같은 거니까.'

DONGYOO KIM

FLOWER AND WOMAN, ACRYLIC ON CANVAS, 162* 112CM 2003


DONGYOO KIM


STILL - LIFE, OIL ON CANVAS, 100*80.2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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