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세상에, 福YOU

나를 나답게, 너를 너답게 하는 힐링 에세이

by TORONTO sunny


로맨스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마돈나 차일드.jpg DONGYOO KIM

Madonna and Child, Oil on Canvas, 180* 180cm, 2014






딸이 이 방 저 방 옷장을 열며 온갖 옷들을 끄집어냈다.

“또 뭐하시려고 사방팔방 어지를까?”

어질러진 옷들을 정리하는 건 네 몫이니 한마디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드레스 코드가 <블랙>이라서.”

“어딜 가시는데?”

“결혼식”

나 같이 이민 세월이 짧은 사람은 이곳의 결혼식에 초대되는 일이 생소하다. 한국 같으면 친인척 친구 회사 동료 이웃까지 챙겨야 할 경조사가 많지만 토론토는 다르다. 정말 절친과 아주 가까운 친척만이 결혼식에 참석한다. 축의금을 기록했다가 기브 앤 테이크 형식으로 주고받지도 않는다. 되도록 간소하고 오붓하게 하는 결혼식이 이곳은 일반적이다. 그리고 나는 단 한 명의 친인척도 없고 이곳에 연고도 없기에 경조사에 불러줄 이가 없다. 그래서 좋다. 그런데 고등학생인 딸이 결혼식에 갈 일이 있을까 싶어 물었다.

“우리가 아는 사람 중에 결혼할 사람이 어디 있어? 누구 결혼식인데?”

학교 선생님이 결혼식에 제자를 부르는 일도 없는 캐나다 문화라 나는 물었다.

“친구 엄마 결혼식.”

“...... 아!”

친한 친구 엄마의 재혼식이란다. 딸 둘을 둔 엄마가 암울했던 초혼을 걷어치우고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는구나 싶었다. 그렇지, 이곳 문화란 게 이렇지 싶었다.

예전처럼 수명이 짧고 한 번 맺은 결혼의 인연에 책임과 의무로 살던 때는 이미 전설의 고향이다. 결혼을 하면 일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는 나름의 굴레를 넘어 새 삶을 선택하고 그것을 성대하게 알리는 것이 요즘 시대의 라이프 스타일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친구 엄마의 결혼식'이라는 말에 조금 재밌기는 했다.

여기서 크는 아이들은 이민자 부모와 가치관의 차이로 서로 생각이 다름을 느낄 때가 많다.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친구들도 국적이 다양하고 캐나다만의 정서적 차이도 있어 애써 내가 살아온 방식을 아이들에게 주입할 필요는 없다. 그래 봐야 꽉 막힌 사고와 자기주장만 하는 꼰대 같은 엄마가 될 테니. 사는 데는 옳고 그름을 나눌 일이 많지 않다. 서로 다를 뿐이다. 생각과 가치, 태도와 관습이.


“근데 결혼식에 드레스 코드가 왜 블랙이야? 그들이 블랙이라서?”

묻고 싶었지만 딸은 엄마는 ‘인종차별주의 자야’라고 질책할까 봐 꾹 참았다. 근데 궁금하기는 했다.

‘왜? 왜? 왜? 블랙인데? 기분 좋은 날인데?’

이것도 편견이라는 것을 알면서 타고난 대로 보고 습득한 대로 무지하게 궁금했다. 역시 생각의 편협함과 고정관념은 우매한 질문과 타인에게 무례함을 만드는구나 싶었다.




한창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던 시절이었다.

응답하라 1988. 그때, 그 시절.

나와 친구들은 공부 삼매경에 빠져도 모자랄 판에 공부를 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친구 집에 모였다. 당시는 최신형이었지만 속도가 컵라면 익는 시간만큼 느린 컴퓨터 앞에 앉아 ‘사주’를 보곤 했다. 언제가 인생의 황금기 일지, 언제쯤 위기가 닥치는지, 건강과 수명은 어떤지, 재물이나 성공에 대한 운은 있는지 등.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믿거나 말거나 식 정보에 의존하며 떠들었었다.

그 당시 우리의 최고 관심사는 역시 로맨스.

불같은 사랑, 알콩달콩한 사랑을 하고 종착역인 결혼은 내 생애 언제쯤일까? 내 미래의 그는 어디에 있을까? 과연, 내게 최상의 파트너는 누구인가? 우리는 각자 운명의 남자를 상상하며 수다를 떨어댔다.

그 시절 떠도는 소문에는 자정이 넘어 흰옷을 입고 머리를 헤쳐 푼 채 입에 칼을 물고 거울을 들여다보면, 남편 얼굴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만큼 미래의 남자는 소녀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예나 지금이나 하라는 공부보다는 로맨스가 갑이었다.

수려한 외모에 다정다감하며 나만을 무한대로 사랑해줄 것 같은 남자를 꿈꾸지 않은 소녀는 절대 없을 것이다. 많은 소녀들이 하이틴 로맨스를 탐독하며 연애소설 속 주인공들의 아슬아슬한 연애에 밤잠을 설치고, 짜릿한 첫 키스를 상상하며 뭣도 모르는 첫 밤을 추측하며 성장기를 보냈을 것이다. 밀당과 꼬인 운명, 재회 등등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지는 운명적 사랑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기대하며 그때의 우리는 로맨스에 들떠서 밤을 새웠었다.


그런데 실제로 환상 속의 남자를 만나 꿈을 이룬 소녀가 있었다. 진짜, 리얼, 트루 스토리.

귀족 가문의 자녀들이 다니는 유치원의 교사로 일하며 왕자의 간택을 받고 세기의 결혼식을 한 여인. 그저 평범한 여인에게 일어난 동화 같고 기적 같은 일. 왕자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왕자에게 청혼을 받은 여자. 그의 로맨스 소설은 낭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 결혼은 리얼 다큐가 된다. 부부 크리닉이 된다.

바로 그 주인공은 다이애나 스펜서다.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에서 1만여 개의 진주가 달린 우아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그는 왕세자비가 되었다. 그에게 결혼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끝판왕이었다. 생애 최고의 선택, 상상만 하던 로맨스가 현실에서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2008.12.29 다이애나1(여왕2) 150호.JPG

DONGYOO KIM


DIANA (QUEEN ELIZABETH II), OIL ON CANVAS, 227.3*181.8cm, 2008








왕자와 결혼한 그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로 훈훈하게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다큐멘터리는 막장 스토리를 이어가며 로맨스는 진흙탕을 굴렀고 환상은 깨진 달걀 껍데기처럼 버려졌다.

세계인의 부러움과 호기심, 질투를 불러일으키며 화려하게 시작한 결혼은 남편인 찰스 왕자의 끊임없는 스캔들로 잔혹 동화가 되고 말았다. 나만 바라봐줄 것 같던 남편에게는 결혼 전부터 여자가 있었고 남편의 외도는 그칠 줄 몰랐다.

그는 결국 남편의 연인인 카밀라 파커 볼스를 찾아가기에 이른다. 다이애나는 남편의 불륜 상대에게 우리 가정을 지키게 해 달라고, 조용히 경고했다. 하지만 내연녀인 카밀라는 전혀 놀라지도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찰스에게 수많은 혼담자 중에 당신과 결혼하라고 한 건 나였어.”

다이애나는 이 말에 절망했다. 그리고 결혼식 날 남편이 끼고 있던 반지에 새겨진 이니셜이 두 사람이 서로를 부르는 애칭의 첫 글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모든 사실을 안 후에 여러 차례의 자살 기도와 폭식증과 거식증을 반복하고, 심한 우울증을 겪고 나서야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막장 드라마 주인공에서 빠져주기로. 이미 남들이 부러워하는 왕관은 족쇄일 뿐이었다.

상실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는 살아남기 위해 왕궁을 빠져나갈 결심을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궁전에 머물며 지위와 명예가 주어진다고 해도 남편의 사랑을 구걸해야 하는 아내로서의 운명은 가혹하고 비통했을 것이다. 그가 꿈꾼 것은 왕세자비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라 한 남자의 아내로서 행복한 삶이었을 테니까. 다이애나는 홀로서기를 다짐하며 탈출구를 찾아 나선다. 핑크빛 로맨스는 이때부터 쇼생크 탈출기를 버금간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맞바람이었다. 영국의 정신을 상징하는 왕실의 왕세자비가 외도를 했다는 사실은 영국 왕족뿐만 아니라 영국인들뿐만 아나리 전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상대는 그를 경호하던 보디가드였다. 수많은 사람에 둘러싸였지만 늘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고 외로워했던 다이애나는 자신 곁을 항상 지키던 경호원과 사랑을 나눴다. 또 다른 로맨스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 왕실은 경호원을 다른 부서로 보내며 둘 사이를 억지로 갈라놓았다.

그 뒤 남자는 갑작스러운 오토바이 사고로 죽는다. 다이애나는 남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타살 설을 제기했지만 어느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단지 ‘불륜을 저지른 여자’라는 죄가 추가되며 더 한 감시의 눈길만 남았다. 도망치지 못하고 또다시 갇힌 운명에 다이애나는 또 다른 남자들과 염문설을 뿌린다.

'로맨스는 로맨스로 잊는다.'

이런 몸부림은 명예의 상징인 왕실 가문에 먹칠이었다. 왕가의 얼굴을 더럽히는 며느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엘리자베스 여왕은 꾸짖기도 하고 설득도 했지만, 그의 도발적인 탈출 의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왕세자비라는 굴레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뿐이었다.


2010.04.13 다이아나2(여왕2) 80호.jpg


DONGYOO KIM


DIANA (QUEEN ELIZABETH II), OIL ON CANVAS, 145.5*116.6cm, 2010





그의 외도는 여자라는 이유로 남편 외도를 덮을 만큼 화제가 되었고, 부정하고 타락한 여자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체통과 위신을 지켜야 할 왕세자비가 무분별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 이슈였다. 왜 그랬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남편이 부정한 행동을 해도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내의 숙명이라는 관습과 가부장적인 태도를 강요하는 이들의 비난에 시달리던 다이애나는 결국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다. 비참하고 슬픈 자신의 현실을 솔직하게 담은 책을 출판하며 과감히 왕궁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텔레비전 쇼에 나가 남편과 자신의 불륜을 만인에 고백하기에 이른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자 신데렐라 신드롬은 위기의 부부, 현실의 부부가 되고 아름답던 결혼식과 러브 스토리는 잔인하게 끝이 난다.


우리들이 꿈꾸는 로맨스란 무엇일까?

그가 입었던 웨딩드레스에 박힌 진주는 그가 흘린 눈물만큼 많았고, 그가 쓴 티아라에 박힌 다이아몬드는 그의 가슴에 박힌 한이 되었다.

'그들이 한 때 사랑하기는 했을까?'

사랑과 로맨스, 그리고 결혼에 대한 기대심이 너무 큰 탓일까? 로맨스라는 달콤함에 빠져 이가 썩는 걸 미처 몰랐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고 가두는 것인가? 인간이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게 결혼이라는 제도에 몰아넣고 '결정됐으니 알아서들 사시오'하는 걸까?

아무튼 살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은 어느 것 하나 내가 알던 대로 상상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가치관과 내 견고한 생각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고 또 바뀐다.





그의 극단적인 탈출 방법이 외도인 것은 옳지 않지만 돌을 던질 일도 아니다. 어쩌면 그 불편한 사랑은 힘든 삶을 버텨내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그의 이혼을 반대하던 엘리자베스 2세는 급기야 별거를 인정하고, 이혼을 허락한다. 드디어 다이애나의 몸에 묶인 사슬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영국 왕실을 떠나 자유로운 몸이 된 그는 자신의 손길이 닿기를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인도로 가서 마더 테레사를 만났고,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 환자들의 손을 잡아주었으며, 지뢰가 묻힌 곳에서 해체 작업을 돕기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이혼의 상처를 가진 여자도 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고,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싱글 맘들의 우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영국 왕실을 벗어났건만 그는 여전히 세간의 시선에 갇혀 살아야 했다. 쇼핑을 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어디 가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싶었지만 대중의 감시에 그 사랑 또한 이룰 수 없었다. 그럴수록 그는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에 울어야 했다. 로맨스의 주인공이 당하기에는 너무나 리얼리티 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즈음, 파리의 어느 지하차도에서 연인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다. 불과 서른여섯의 나이. 미처 생을 다하지 못하고 어린 두 아들을 남겨놓은 채였다.


그렇게 그가 떠나간 지 20년이 훨씬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우리의 왕세자비이자 변하지 않는 세기의 연인이다. 그는 ‘여성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남자를 잘 만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적으로 서는 것’이어야 한다는 진리를 보여주었다. 비극적인 삶 속에서 자아를 찾았고, 자신에게 덧씌워진 그럴듯한 올가미를 용기 있게 벗어던졌으며, 적당히 거짓 행복을 가장하며 코스프레(Cospre)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허물을 솔직히 들어낸 담백한 사람, 세속적인 가치보다 자신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는 여인, 이것이 다이애나 스펜서의 가치다. 아름다운 외모와 남을 돕는 마음, 자애로운 품성. 그리고 두 아이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어머니 그래서 그는 아직도 우리에게 잊히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는 건지도 모른다.


다이애나와 엘리자베스 2세의 얼굴이 겹쳐진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정신이 바짝 든다. 아름다운 시절의 다이애나와 근엄하게 법도를 지켜온 여왕이 함께 그려진 캔버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이 둘의 이미지가 겹치며 그 둘 사이에 오갔을 숨 막히는 정적과 갈등들. 미움과 원망들.

놓아달라고 애원하는 며느리와 잔혹하지만 붙잡아야 하는 시어머니의 첨예했던 순간이 상상된다. 그저 평범했던 한 여인과 태어나는 순간부터 계승이라는 막대한 임무가 주어진 여인의 서로 다른 일생. 평생 한 남자와 결혼생활을 유지한 여인과 결혼을 허물처럼 벗어던진 여인. 왕을 키워내야 하는 책임감을 지닌 어머니와 왕이 될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했던 어머니. 이혼만은 막아야 했지만 끝내 막을 수 없었던 시어머니와 반드시 왕실을 나가고야 말겠다고 의지를 관철한 며느리. 모든 게 내 탓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엔 핏줄의 강력함을 보여준 시어머니와 그 사실에 절망했을 며느리. 아들의 불륜을 막을 수 없었지만 며느리의 불륜은 참을 수 없었던 시어머니. 이들 사이에는 수많은 마찰이 있었을 것이다. 그 속사정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이런 두 사람의 얼굴을 하나의 그림 안에 겹쳐놓은 화가의 발상이 상당히 문제적이며 도발적이란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을 하나의 그림에 붙잡아둔 화가는 우리에게 극적인 인연과 상당히 불편한 관계, 첨예한 갈등을 연상케 한다. 이 둘의 애증이 어우러진 충돌은 아름답게 처연하다.

과연 두 사람은 이 그림 안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필연의 운명으로 받아들일까? 두 사람의 관계는 다이애나의 이혼으로 남이 되고 말았지만 한때 시어머니와 그의 자손을 낳았다는 의미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강한 운명으로 맺어져 있다. 이렇게 다이애나는 죽어서조차 영국 왕실의 사람이 되고 만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자식을 낳아서 핏줄을 이어준 관계성과 인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다이애나와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중 그림은, 이들의 관계를 지속시키고 끈질기게 묶어두고 있다.

그림을 보는 입장에서는 다이애나와 엘리자베스 여왕의 공존만으로도 마음이 심란하고 복잡해진다.


세상이 변했다고 한다. 예전 시어머니와 예전 며느리가 아니라 해도 우리는 여전히 남이지만 남일 수 없는 묘한 관계에서 상생하고 충돌한다.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 가까운 인연을 만들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여왕과 전 왕세자비의 겹쳐진 초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관계들이 이대로 괜찮은 건가?’

한 번쯤 돌아볼만하다. 어쨌든 두 사람의 동거는 어딘지 예사롭지 않다.



CRACK 3. 엘리자베스 여왕.jpg DONGYOO KIM

ELIZABETH ALEXANDRA MARY, OIL ON CANVAS, 32*32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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