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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Feb 02. 2016

[딩크의 학교문제집] 2. 일기, 문을 열다.

교사가 된 이후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일들은 종류도 다양하다. 학교폭력일 수도 있고 그저 내게 버거운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번 시리즈 제목은 [딩크의 학교문제집]이다.

내 교직경력은 <56655-6652-전담> 이다. 10년을 하면서 기억나는 일들, 그당시 적어놨던 것들(안적었던 것도 많겠지만...)과 떠오르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정리해서 시리즈로 적어보려 한다.

이렇게 작성하다 보면 혹자는 내 경험을 공감하거나 혹자는 내가 실수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 비판도 할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만한 부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믿는다. 수많은 간접경험을 통해서 나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거나 혹은 위안을 얻기를 바라며 시작해보련다.

ps. 연도의 순서는 왔다갔다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딩크의 학교문제집] 2. 일기, 문을 열다.



# Prologue



 2004년 9월 1일. 인수인계를 받은 나는 교실로 들어섰다. 1학기 내내 보건강사(이당시는 여선생님들에게 보건휴가라는 게 있어서 나는 그 선생님들이 보건휴가를 쓰실 때 시간강사로 일했다. 그걸 보건강사라고 흔히 불렀다. )


하나는 새학기 규칙정하기다. 나는 매일 새로운 반을 들어가니 항상 내가 필요한 규칙들을 정했었다.

두번째는 화내는 연습이다. 교사는 항상 아이들에게 화를 낼 가능성이 크다. (이건 악마쌤의 글을 참고해도 좋을거 같다. http://educolla.sharedu.kr/?r=educolla&m=bbs&bid=2015-renewal-01&uid=6064) 누가 조언도 해주지도 않았었기에... 나는 감정을 싣지 않고 화를 내는 이성적인 화를 내는 연습을 많이 했다. 나름 잘 되어간다고 생각했었다.


 5학년 교실에 배정받은 그날도 나는 당연히 내가 며칠동안 고민하고 만든 규칙들을 아이들에게 쏟아부었다. 나에게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신규였고 아이들을 자율 속에서 규칙을 찾게 하는 건 그 당시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아이들을 통제해야 했고 통제해야 했으며 통제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이들과 갈등의 시작이었다. 내 전임자셨던 선생님께서는 교감승진대상자셨으며 아이들에게 항상 너그럽게 대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기에는 경력도 없었고 속도 좁았다... 그리고 그 통제 속에서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한 아이가 보였다.


#1. 너는 만화 주인공.



그 아이는 현아였다. 현아의 첫 인상은 딱 이 친구였다.



바로 포켓몬스터의 주인공인 피카츄지우였다. 면티에 청조끼에 청바지를 입고 있던 그 모습은 영락없는 지우였다. 또한 뻗친 머리를 보노라면 집에서 관리는 참 안되겠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버티기 힘들었던 것은 나를 보는 시선이었다. 반항심이 가득한 눈초리에 가득감긴 무언의 말은


'니가 뭔데?''


라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친구는 그냥 봤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 당시에는 나를 그렇게 보는 걸 내가 버티지 못했던거 같다.



#2. 너와 나의 혈투



 수업시간은 매일 밤 아홉시까지 남아서 수업준비(20%)와 업무(80%)를 하던 나에게는 전장과 같았다. 특히 수학시간은 더욱 그러했는데 나는 즐겁게 설명을 하는데 몇몇 학생들은 힘차게 다음과 같은 안무를 즐겨했다.



단체로 꾸벅꾸벅 졸던 그 모습이란.... 그 중에서도 현아는 독보적이었다. 이때의 현아의 모습은 마치 켄시로처럼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헤드벵잉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다른 녀석들은 조는데 현아는 자는 것 처럼 보였다.


'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이걸 모르지?'


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현아가 점점 미워졌다. 그리고 사실 또한 이 당시 성은이가 참 힘들 때라(뭐 따지고 보면 한학기 내내 힘들었지만.) 다른 누군가를 보듬는 것은 나에게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 내가 얼마나 너희를 생각하는데 그걸 모르고!!!'


나는 현아가 점점 미워지기 시작했었나 보다. 그당시는 아니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감정을 싣지 않고 화를 내던 나는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그렇게 진심으로 화를 내게 되자. 포켓몬 트레이너가 꿈인 지우같던 현아는 점점 세기말에 홀로 살아남아 복수를 꿈꾸는 켄시로 같은 모습으로 점점 나에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현아는 언제나 불량한 자세에 삐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나는 그 애를 지배하려고 하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멀어지고 있었다.또한 현아는 남자아이들과도 다퉈도(싸워도) 지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었고 생활지도를 하는 건 점점 힘들었다.


#3. 그냥 던져봤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너무나도 신경전에 지쳐 있었고 성은이에게 내 신경이 다 쏠려 있어서 현아에게는 많은 신경을 쓰기가 싫었다. 더이상 경고와 신경전이 싫었기에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때 눈에 띄인게 일기였다.

그 당시는 일기를 일주일에 3일을 검사했다. 댓글도 길게길게 달아주고 방과후에 제일 열심히 하는 일이 일기 검사였다. (그 당시도 인권위에서 인권침해라는 판결이 나왔었지만 나는 믿는다. 일기에 쓰여진 그날의 일과 댓글은 그때 당시보다는 10년, 20년 뒤에 나에게 큰 힘이 된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과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일기에 댓글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썼다.

바로 편지였다. (내 마음속에서 각색이 많이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주된 내용은 나는 너를 기다리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 당시 5분도 안되서 쓴 이 편지의 실제 마음은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니 한번 두고보자. 나는 내가 할 걸 다 했어.

이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날 당번들은 아이들에게 일기를 나누어 주었다.



#4. 그냥 던진 돌의 파문.


 당번이 일기를 나누어 줄 때 일기를 받는 현아의 얼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일기를 펼치자마자 편지가 씌여 있는 부분을 보며 무언가 엄청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은 현아. 그 눈망울은 몹시도 흔들렸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나는 왠지 그 시선을 피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학시간... 뻔할거라 생각했다.


'또 졸겠지. 그러면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화를 내야겠다.'


칠판에 문제를 쓰고 풀이를 하고 설명을 하면서 뒤를 돌아보는데 현아가 하고 있는 행동들을 봤다. 수업시간에 조는 자신을 깨우기 위해서 자기 뺨을 때리고 허벅지를 꼬집는 모습을 말이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놀랐다. 그 짧은 순간에 현아는 변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단 그날 뿐 아니라 그 뒤로 쭉 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업태도 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그렇고 일기를 써오는 내용도 적극적이었다.

나는 그저 편지를 하나 썼다. 그런데 그 편지가 아이를 순식간에 바꾸어 버렸고 그 모습을 직접 본 나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정말 별거 아닌 사소한 (진심도 많이 담기지 않았던) 그 한마디에 아이가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했었는데 진심이 정말 담겨 있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작은 말 하나의 파문....





#5. 나는 미숙했다.


내가 발령났던 학교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학업에 신경쓰기 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에 더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학군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공부에 투자를 하는 것은 사치일 수 있었다.


나는 많이 부족했다.

첫번째로는 아이들을 알아보려는 마음이 없었던 거 같다.내 생각을 아이들이 받아들이고 따라오는게 그 당시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인 듯 했다.

내가 중심이고 내가 모든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애들을 생각한다 했지만 막상 애들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현아만 해도 성은이 사건(http://educolla.sharedu.kr/?r=educolla&c=tuesday/02&uid=6066)을 겪으면서 그 아이의 가정사를 알게 되었다. 엄마 없이 아버지와만 살고 있는 아이. 현아의 외모가 왜 선머슴 같았을까? 현아가 왜 거칠게 행동하는 아이였을까? 아니 그것들은 둘째치고 나는 왜 담임이란 인간이 아이의 엄마가 안계시다는 것을 3개월도 지나서 알았을까? 성은이가 가출을 하고 현아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내 모습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두번째로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방법조차 몰랐다.

 왜 현아는 수학시간이 되면 그렇게 졸았을까? 왜 현아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을까? 현아 뿐 아니라 성은이등 많은 아이들의 수학실력을 테스트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많은 아이들이 5학년 수준의 수학을 이해할 수 없는 상태들이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던 또래교사를 활용하던가 다른 여러 방식이 있었을 터다.


실습때 담당하셨던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있다.


"어쨌든 니네 반은 니가 책임지는 거야. 아이들이 잘못하면 니가 잘못한거라 생각해. 그리고 어떻게 고쳐야하는지를 생각해. 그래야 니가 발전한다. "



#6. 얻다.


그 뒤로 깨달은 것이 있다.

첫번째로는 교사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아이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는 것 .

두번째로는 일기, 그리고 편지라는 것들의 효과를 말이다. 교사가 하루에 모든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하기는 참 어려웠다. 하지만 일기와 편지를 통하면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일기와 편지는 오래 남는다. 그 여운이라는 것. 잔향이 많이 남는 매개체다.




세번째로는 변화를 일으키고 싶을 때 그 매개체는 대단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닌 사소한(단순한) 것, 익숙한 것부터 시작해도 된다

는 것이다. 내게 익숙한 사소한 것 부터 시작할 때 오히려 내 마음을 잘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pilogue.


편지사건 이후로 현아는 정말 애제자가 되었다. 쉬는 시간에도 주위에서 알짱대고 말도 한번씩 더 걸어 보고 일기로 많은 이야기도 주고 받고....크리스마스 카드도 주었다.(미술시간에 만드는 거니 뭐...)






 그 해 겨울 방학에 아이들에게 '선생님께 편지 쓰기'를 숙제로 내주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안썼는데 현아는 엄청 정성스럽게 보냈다. 나는 답장을 써야지 했다가 못쓰고 개학이 되었다.



현아는 편지 받았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거짓말을 했다.

"선생님 편지 받으셨어요?

"응? 편지 못받았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잃어버렸나보다. 그러게 잘보내지~~ 우체부 아저씨 잃어버리지 말라고 쓰고~"


그리고 봄방학이 되었다. 군입대할 준비를 하고 있느라 집에 있는데 집배원아저씨가 초인종을 누르며 집에 내가 있는지를 확인하셨다. 현관에 나가니 편지를 주시며 말씀하신다.

" 아이가 선생님을 정말 좋아하나봐요. 이번에는 잃어버리지 마세요~"


편지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편배달부 아저씨 제발 저희선생님께 갖다 주세요~ 부탁해요."




지금 돌이켜 볼 때 가장 많이 미안한 아이다. 많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야기 해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ps.


일기안의 편지의 효과를 본 나는 사실 그 주에 큰 결심을 했다. 아이들의 모든 일기를 다 걷었고 일기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30명 정도의 아이들에게 편지를 다 써주는 것은 쉽지 않았고 일기는 내 책상위에 한달 동안 쌓여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명현이가 화낸다.

" 아 선생님. 일기 언제 줄거에요?"

"조금만 기다려"

"아! 선생님!! 엄마가 일기 왜 안 쓰냐고 그래요~"

"선생님이 가지고 있다고 그래~ 선생님이 아직 안준다고."

"그렇게 이야기 했다가 혼났어요~ 선생님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니가 어디다 숨기고 안주는 거 아니냐잖아요~ 아 사실대로 말해도 믿지도 않고 선생님 때문에 나만 혼났어요.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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