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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Writer May 28. 2024

새싹의 탄생

식집사의 탄생

오래전에 우리 엄마가 고이 길러 꽃이 이쁘게 만발할 즈음 나에게 건네주셨던 그 화분은 꽃이 제 수명을 다하지도 못하고 말라 떨어지곤 했는데 말이다.

그 아이들이 피는지, 지는지는 도통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이십 년 정도 흐른 지금, 나는 10여 개 식물을 우리 집 거실, 베란다에서 키우고 있는데, 이 아이들이 새 잎을 올리는 것만 봐도 신기하고 이뻐 어쩔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겨우내 잠잠하더니 역동하는 새 봄을 계기로 우리 집 식물들도 제각기 분주하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새로 올라오는 잎들과 새싹들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빛깔도 싱그럽거니와 그 반짝거림은 만지기 조차 아까운 느낌이다.

여리디 여린 새 잎을 피워 올리는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눈빛은 그저 사랑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바로 그 눈빛이 된다.


내 자식은 다 커서 내 품을 떠나 제 갈길을 간다고 나서는 한편, 이렇게 내 곁에서 바라봐주길 기다리는 존재 또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조그맣게 여린 빛깔로 살며시 고개 드는 새 잎들을 볼 때면 고맙고 이쁘기 그지없다.

어서 오렴, 어서 와, 이쁘게 잘 자라렴.


내 새끼 키우며 직장에서 집으로 왔다 갔다 하며 정신없을 땐 곁에 있는지 조차 모르던 존재들이

이제는 그 모양, 색깔, 자라는 속도, 습도, 햇빛까지 체크하며 돌볼 여유가 생겨난다.

잎들이 마르지는 않는지, 꽃잎이 시들지는 않는지, 꽃봉오리들이 꽃을 잘 피어내는지를 보면서 말이다.


식집사든 동물집사든, 우리의 삶에 들어온 집사의 삶

 어느 순간 우리는 사람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빈 공간에 무엇으로든 채워나가게 된다는 사실이 아닐까.


나의 경우엔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은 만큼 손이 덜 가는 식물들에 애정을 할애하게 되는 것 같다.

새로 자라 올라오는 새잎들을 기다리는 설렘과 그 잎들이 제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기쁨을 누리는 그 순간들이 나의 행복의 어느 한 자리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분명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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