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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Writer Jul 21. 2024

억지로 시키지 마요, 그러면 다쳐요.

계단을 내려가다가 넘어진 사건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중학교 3학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우리 집은 부모님이 작은 동네 슈퍼를 운영하고 있었다. 1층은 가게, 2층은 주거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날은 엄마가 외출 중이었고 아빠 혼자 가게를 지키고 계셨던 날이다. 아빠는 급한 볼일이 있으셨는지 2층으로 인터폰을 해서 누군가 내려와 가게를 봐주기를 원하셨다. 텔레비전에서 뭔가 재미나는 걸 보고 있었던 걸까. 무얼 하던 중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도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큰딸이라는 이유로 억지반 끌려가다시피 내려가던 나는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다 그만 발을 헛디디고 굴러 떨어졌다.

‘으아악‘ 소리에 놀란 아빠가 뛰어나오셨고 그 뒤는 나도 모르겠다. 혼이 나갔던 것 같다.

오른쪽 발목 앞부분이 심하게 다쳤는데 다행히 뼈나 다른 부분은 이상이 없었나 보다. 내 기억에 깁스 같은 걸 한 기억은 없는 걸로 봐서는. 엄마가 종종 드레싱을 해주시곤 했다. 엄지랑 검지를 맞붙여 놓은 크기의 흉터가 두 군데 생겼고, 그  흉터 자국은 다른 곳 하고 달리 피부색도 약간 어두웠고 피부결도 다른 곳과 달리 좀 더 매끈거렸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늘 그때의 기억을 어렴풋하게나마 상기시켰었는데 지금 들여다보니 거의 표시도 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는 그때 아빠 심정이 어땠을까 싶은 생각만 든다. 자책하고 계시진 않았을까. 상대방 특히 부모님의 입장에서 헤아릴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그 시절, 철부지 딸내미는 지금 하늘에 계신 아빠가 문득 보고 싶어 지네요.

아빠 미안했어요.


두 번째 사건으로 넘어가 보자.

7, 8년 전쯤인 것 같다. 회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당시 일하던 사무실은 별관으로 2층짜리 작은 건물이었는데 우리 부서는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에 한 선배가 갑자기 자기를 차로 어디까지 좀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다. 업무적인 일이 아니고 개인적인 사정이라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하도 사정을 하는 바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알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으로 투덜투덜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아, 왜 업무시간에 이런 걸 부탁해. 귀찮게..‘

그날따라 7센티 하이힐을 신었던 나는 불만에 가득 차 터덜터덜 내려가다가 계단 중간쯤에서 미끄러져 버렸다. ’으아악‘

나도 놀라고 선배도 놀라고. 그 뒤는 역시 모르겠다. 역시나 다행히 뼈를 다치지는 않았고 나는 그 뒤로 한의원을 몇 차례 다니면서 침을 맞고 부황을 뜨고 고인 피를 빼고 물리치료를 받았고 일정 기간이 지나 회복할 수 있었다.

사람 좋기만 한 그 선배도 놀라고 미안해 하긴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병원비를 보상받았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기도^^


쓰다 보니 계단 넘어짐 사건은 아닌데 또 하나 생각이 난다.

첫 번째 사건과 비슷한 시기였을 것 같다. 그날도 아빠 심부름이었다. 난 또 장녀라는 이유로 차출당한 것으로 기억된다. ‘왜 나만..’ 억울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고개를 처박고 가던 나는 갑자기 별을 보고 말았다. ‘으아악’

바닥만 열심히 보고 가다가 담벼락에 붙어있던 가게 간판에 머리를 부딪힌 것이다. 안 그래도 속상한 마음으로 가던 길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머리에 혹 하나 달고 집으로 돌아왔다.


억지로 억지로 하는 일은 결국 뭔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가 보다. 내가 다치든 일이 틀어지든

내키지 않지만 정말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들도 살면서 분명 생기게 마련일 것이다. 그럴 땐 마음을 바로 바꿔야 할 것 같다.  ‘그래, 가자’, ‘오케이, 해보자’

일단 하기로 결정을 했으면 말이다.

부모님의 부탁은 가게 일이나 심부름의 경우 큰 딸인 나를 시키는 게 믿고 맡기기에 더 안심이 되셨을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이 미치기엔 미성숙했던 나이였으니 그 뒤론 그런 부탁은 당연하게도 내가 하는 걸로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이나 조직생활에서는 다를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억지로 누군가 시켜서 불만 가득인 채로 하는 일이 있었던가? 그 뒤로 그런 이유로 다친 일이 없는 걸로 봐서는 내가 마음을 바꿨던 걸까? 어쩌면 거절을 잘하는 방법이나 합의를 하는 방법을 터득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내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게 잘 다루기로 하자. 그 억울함이나 부당함에 대한 생각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그 일의 본질과 상대방의 의도를 생각하는 방향으로 전환 해보면 다른 결론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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