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테제: 삶은 역사적 맥락 안에서 태어나고 이루어진다
질문 하나.
개개인의 삶은 역사적 맥락 ‘안’에 배태되어 있고 역사적 맥락에 ‘의해’ 형성된다고 하는데,
역사적 맥락은 실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종의 아우라로, 정념으로 나를 감싸는 것일까?
질문 둘.
역사적 맥락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작용할까?
시대정신(Zeitgeist), 처음 생애과정이론의 첫 번째 전제를 접하고 이 단어를 떠올렸다. 헤겔이 말한 형이상학적 의미보다 딜타이가 말한 해석학적 입장에 가까운 느낌일 텐데, 개인이 경험하는, ‘느끼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생활 체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한 시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연속 안에서 개인의 삶이 이루어진다는 말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주는 ‘느낌’이 같은 방식으로 머무르고 작용하지는 않을 것임을 또한 당연한 말이다.
이제는 짧지 않은 시간을 살면서 내가 속한 곳 안에서 계속해서 느끼는 이질감/이물감은 이 ‘느낌’을 공유할 수 없던 탓인지도 모른다.
생애과정이론을 밑바탕에 둔 작품 읽기를 하며 영화 <벌새>를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내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2019년(공교롭게도(?) 대학원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난 이듬해에)에 영화를 보며, 난 처음으로 내가 지나온 시간을 나와 비슷한/같은 느낌으로 체화한 (물론 구체적인 실감은 다르겠지만) 누군가가 구성한 1994년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바로 이 ‘느낌’이라는 데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그 도저한 비관주의는 어찌된 것이냐’ 하는 물음에 담긴 불안에 대한 감각, 그 감각에 대한 원초/무의식을 찾자면 난 갓난 시절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1994년과 1995년 그때, 그곳으로 가야 한다.
<벌새>는 1994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로 대표되는 대형 아파트 단지가 공간적 배경이다. 주인공 은희는 중학교 2학년, 또래 몇을 제외하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나눌 이가 없다. 그 친구들 역시 은희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오롯한 존재와 존재의 만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나이가 어려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에 대한 이해도 상대에 대한 이해도 부족할 뿐더러 이해를 해보려는 의지조차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몰이해 속에 스며들어 있는 폭력으로 구성된 은희의 일상을 덤덤하게 내보인다. 강제 철거가 이루어지는 등굣길을 배후로, 집 안에서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학벌우선주의가 기이하게 결합된 물리적 폭력이, 또래 사이에서는 부모의 직업과 소득 수준을 두고 또 다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학벌우선주의가 기이하게 결합된 정신적 폭력이 은희의 하루를 당연하다는 듯 무심하게 채운다. 그리고 영화는, 아마도 영화의 시간적 배경에 주목하는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밖에 없는, ‘붕괴’로 다가간다.
이런 시기에 만난 한문학원 선생님 영지는 은희에게는 ‘병원’과도 같은 존재다.
“이상하게 집보다 편한.”
1980년대 후반 학번으로 짐작되는 영지는 휴학이 잦아서 졸업이 늦어졌다고 한다.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보라가 쁘띠부르주아의 기운을 품지 않았더라면 1990년대까지 둘은 동료로 지냈을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을 최근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해보았다. 기회가 있다면, 시대가 끝내 이루지 못한 꿈들의 집합으로 이 드라마도 읽어보고 싶다.)
자신들이 폭력을 당하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아이들 앞에서 영지는 “잘린 손가락 묻고 오는 밤 설운 눈물을 흘리는 밤 피 묻은 작업복에 지나간 내 청춘” 하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폭력에 희생당한 노동자에 대한 노래를 불러준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여, 어찌 보면 그 구조 안에 거하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폭력, 그러면서도 영지는 은희에게 ‘그들’을 ‘함부로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잖아.’ 하고 말한다.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으니까.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실마리는 이후 영지가 병원에서 은희에게 건네는 말에 담겨 있다. “너 이제부터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같이 맞서서 싸워.”
그렇다. 맞서 싸우는 이들을 동정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동정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맞서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전술한 바, 우리는 이 영화가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알고 있다.
한강의 남쪽과 북쪽을 잇던 다리가 무너지고 버스 한 대와 승용차 여러 대가 추락하여 사람들이 숨졌다. 1994년 내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은희는 학교에서 뉴스를 접하고 그 길로 등교를 하는 언니의 안부를 허겁지겁 찾는다. 그리고 며칠 지난 시점에서, 영화는 은희 네 집에서는 해프닝으로 넘어간 사건이 영지 선생님의 부고로 이어진다. “다리가 어떻게 무너지니” 하며 오열하는 영지 어머니의 눈물과 한숨은 영지가 은희에게 불러준 노래와 건네준 말과 어쩔 수 없이 겹쳐지는데, 그 순간 은희가 가장 먼저, 강렬하게 떠올린 영지 선생님의 목소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
우리는 알고 있다. 이듬해, 또 다른 붕괴가 있을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아비규환 속에서 생과 사를 달리하고, 그와는 무관한 듯 아닌 듯 IMF라는 경제적 붕괴를 겪으며 1990년대 후반으로 달려갈 것을.
“도저한 비관”이라는 것은 이런 사건이 내 몸 어딘가 각인한 (주입한) 혈류 같은 것이 아닐까?
(여기에 2001년에 생방송으로 목격한 9.11 테러까지 더해지면 더욱 실감이 날까?)
하지만 은희는 성수대교가 무너진 자리로 가 예의 그 자세로 부서질 듯, 그러나 결코 넘어지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폐허를 바라본다.
“그때 만나면,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
영지 선생님의 그 이야기를 넘겨받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비관에는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듯이.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 이렇게 다시, 몇몇 사건을 잘 짜인 이야기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난 참으로 많이 부끄러웠고 반가웠고 따뜻했다.
cf. <82년생 김지영> <응답하라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