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브 카이유보트, 프티 쥬느비예르의 다알리아 정원, 1893, 157x114cm,개인소장
내가 이 그림을 처음 (그리고 실물을 본 것으로는 마지막) 본 건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의 특별전이었다. 인상주의 화가들과 그들의 정원에 대한 전시였다.
인상주의자들의 알록달록하면서도 뽀얀 수많은 그림들 중에서도 카이유보트라는, 인상주의 화가들 중에선 그다지 알려져있지 않은 화가의 덜 알려져 있는 작품에 푹 빠진건 화폭 구석의 개 한 마리 때문이었다.
#1. 피처럼 붉은 다알리아가 풍성하게 피어 있는 잘 가꿔진 정원. 햇빛은 강렬해서 그림자는 연보라색으로 보일 정도다. 화가는 잠시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원의 멍군은 주인이 돌아오는 걸 눈치채고 꼬리를 설렁설렁, 삼각형 귀는 아래로 축 떨어뜨렸다. 개 길러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기분 좋을 때 개들 귀가 어떤지. 정원에 있던 여인은 아직 화가의 귀가를 눈치 못챘다.
이게 얼마 전까지 이 그림에 대한 내 상상이었다. 오늘 다시 보니, 이 검둥이 멍군, 달려오고 있지 않다. 보통 개들이라면 주인이 집에 돌아오는 순간 바로 마중을 나갈 것이다. (물론 마중 안나오는 개도 있다. 우리집 개님 연두가 그러하다 ㅠㅠ)
#2. 화가는 자신의 정원에 화구를 펼쳐 놓고 다알리아 정원을 그리고 있다. 검은 개는 한 발 떨어져 엎드려 주인이 산책 나가기만을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어느 정도 그날의 작업이 완성됐을 무렵, 카이유보트는 화구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 낌새를 눈치챈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귀를 떨구고 꼬리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둘 중 어떤 상황이건, 카이유보트는 애견인이었다. 그의 사진엔 개가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한 화가이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와 다른 화가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3. 개인소장이라니, 나같은 미술관 중독자이면서 그 업계에 연줄 댈 데가 없는 사람에게 제일 절망적인 단어가 개인소장이다. 어디의 누구 소장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다시 이 그림을 실물로 보고 싶음 어쩌란 말인가? 사실 이 작품을 좋아하기 이전엔 그게 그렇게 사람 김새게 하는 단어인줄도 몰랐었다. 다음에 본 카이유보트 특별전에 이 그림은 안나왔다. 물론 지금도 내겐 기회가 있다. 되든말든 여기저기 메일을 보내 물어보는거다. 근데, 이 그림이 누군가의 저택 한쪽에 고요히 걸려 있다면 내 동동거림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