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화파, '왕의 샘 Chafariz d'el Rey', 1570-80, 93x163cm, 베라르두 컬렉션
#1. '왕의 샘'이라는 그림을 프린트물로 처음 본 것은 포르투갈에서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었던 때, 1500년대 리스보아에 대한 얘기를 듣던 중이었다. 지금도 알파마를 등지고 테주 강으로 향하다보면 볼 수 있는 샘인데, 지금은 샘으로 기능은 안하고 (즉 물이 나오진 않고) 동일한 이름의 아름다운 호텔 밑둥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샤파리스 델 헤이는 13세기, 리스보아 시내에 식수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첫번째 공공 샘인데, 아무리 리스보아가 강변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짠물과 민물이 섞이는 위치이므로 식수로 부적합), 그리고 알파마가 샘물로 유명하다고 해도 (Alfama가 뜨거운 샘물이라는 아랍어에서 나온 명칭이다) 건조한 여름이 되면 물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이 나오는 토수구가 여러 개 있었고, 인종과 사회 계급에 따라 사용하는 토수구가 구분돼 있었다. 지금의 모습은 19세기에 다시 만든 것.
이 작품은 16세기 리스보아(물론 1755년 대지진 이전)와 왕의 샘 앞의 풍경을 담았다. 플랑드르 출신 화가의 작품으로 추정. 포르투갈인은 물론이고 다양한 복장의 아프리카인들을 볼 수 있어서 당시 리스보아에 얼마나 아프리카에서 온 이들이 많았나, 그리고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나 엿볼 수 있는 그림.
그리고 처음으로 이 그림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는(실물을 보기 전) 개인소장이라고만 했었다.
#2. 지난 번에 개인소장에 대한 불평을 했으니 이번엔 즐거웠던 경험 하나.
보그 코리아에서 포르투갈 아줄레주를 배경으로 화보를 찍는 팀이 왔을 때, 아줄레주가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 중 섭외 가능하면서 촬영팀 맘에도 든 곳 중 하나가 세투발의 바깔료아 저택이었다. (이 때가 유일하게 촬영 코디네이터라는 일에 응했던 때다. 16-18세기 아줄레주를 배경으로 찍는 우아한 화보라니,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행복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스타일리스트와 포토그래퍼 선생님들도 아주 유쾌한 분들이었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이 촬영 전날, 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똥꿈을, 아주 똥을 제대로 뒤집어쓰는 꿈을 꿨는데, 그게 아름다운 건물, 아줄레주, 가구, 모델, 디자이너 옷 등을 한 큐에 볼 꿈이었던 거다)
15세기에 건축된 바깔료아 저택에서 16세기 아줄레주를 배경으로 촬영을 한 뒤, 저택 내부를 잠깐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지금 바깔료아 저택은 바깔료아 와이너리의 주인이면서 리스본 CCB 센터에 전시된 현대미술 컬렉션의 주인인 주세 베라르두 소유인데, 그가 저택에 늘 사는 건 아니고, 행사가 있을 때나 친지들과 파티를 할 때 정도만 사용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가구와 아줄레주, 창 뒤로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에 감탄하고 있다가 뒤돌아보니, 그때까지 개인소장이라고 알고만 있던 '왕의 샘'이 걸려 있었다. 표현하기 힘든 통쾌함이 당시의 내 기분이었다. 나도 '개인소장' 작품을, 그게 걸려 있는 남의 집 거실에서 직접 보는구나.
#3. 지금은 누구나 관심만 있다면 이 작품이 베라르두 컬렉션 소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위안 삼자면, 그게 바깔료아 저택에 걸려 있다는 얘기는 안 나와 있다. ㅋㅋㅋ 이 심보)
2017년 초, 리스보아의 고미술 박물관(MNAA)에서 '글로벌 시티, 리스보아'라는 전시를 했었는데, 이 특별전에 '왕의 샘'이 걸려있게 됐다. 그러나 전시 시작 전날, 두 사학자가(미술사학자가 아니라, 사학자) 이 작품의 진위 여부를 묻는 글을 유명 주간지 Expresso에 실으면서 갑자기 '왕의 샘'이 세간의 화제에 오르게 됐다. 당연히 주세 베라르두가 이 그림의 주인이라는 것도 기사의 한 편엔 늘 실렸다. 베라르두는 이 그림의 진위 확인을 다시 해보도록 허락했고 (당시 진위 여부가 도마에 올랐던 다른 작품의 소유주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영국의 한 단체였다.) 검사 결과, 1500년대 플랑드르 지역에서만 사용하던 안료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로써 두 사학자들이 제기한 대로 19, 20세기에 만들어졌을 거라는 의심은 안 해도 되었다.
이 작품이 진짜냐 아니냐를 유명 주간지 지면에 묻기 전에 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에 의문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론 모작 또는 위작일수도 있는 그림을 사료 삼아 연구를 할 수도 있다는 게 미술사 연구란 생각을 하니 뭔가 머리 한쪽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