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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 중독자 Apr 19. 2020

멍군의 식성을 아느냐



주세 줄리우 드 소자 핀투 José Júlio de Souza Pinto, 실망한 손님, 1884, Millenium BCP 컬렉션


#1. 

개가 나오는 그림을 좋아한다. 인간하고 가장 가까이 사는 동물 맞구나 싶은게, 어떤 주제, 어떤 배경에 어떤 순간에 들어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동물이 이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왕실 초상화의 오른쪽 아래에서 졸고 있어도, 네덜란드 겨울 풍경에 사냥꾼과 함께여도, 어느 부유한 가문의 볼이 발그레한 딸내미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안고 있어도 잘 어울리는 동물. 그러고 보니 개가 나오는 그림을 좋아한다는 문장은 별 변별력 없는 문장이 돼 버렸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부분), 프라도 미술관
피터 브뤼헐, 눈속의 사냥꾼(겨울), 빈, 미술사박물관
조슈아 레이놀즈, 미스 제인 볼즈, 월래스 컬렉션 이 아이와 강아지를 보고도 무덤덤하다면 요즘 삶이 좀 힘든 거다. 





#2. 그림의 제목 실망한 손님은 우리의 주인공, 이 흰색-갈색 바둑이다. 뭉툭한 발, 아직 근육 발달이 덜 된 체형, 머리와 몸의 비율 등으로 봐선 한살이 아직 안 된 강아지 같다. 앞발에 머리를 괴고, 실망한 눈빛으로 앞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고 있는 이 녀석, 배가 불렀다. (흐흐 너무 귀엽다!!) 갈색 바둑이의 주인은 붉은 바가지머리를 한 남자아이다. 한 손에는 강아지 목줄을 대신하는 흰색 끈을 잡고, 식사를 하고 남은 음식을 접시에 모아 담은 다음 강아지 앞에 내려놓았는데 글쎄 이 녀석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 먹어 멍멍아!” 바둑이는 실망한 눈빛으로 말한다. “고기도 아니고 이게 뭐냐.” 

개의 식성을 잘 모르는 걸로 봐선 개를 처음 길러보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바둑이를 집으로 데려온 첫 날일 수도 있다. 제대로 된 개목걸이와 줄이 아직 없는 걸로 봐서. 어쩌면 바둑이가 심드렁한 게 아니라 낯선 환경이라 식욕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요 귀여운 녀석들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될 것이다. 어쩌면 학교 갈 때 몰래 데려갈지도 모르겠다. 들판에서 갈색 바둑이와 빨간머리 남자애가 뛰어 노는 상상을 하니, 아, 흐뭇하다. 

벽난로 앞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남자는 이 아이의 할아버지일 것 같다. 늦둥이를 본 아버지일 수도. 혼자 심심해하는 손자를 위해 이웃집에서 강아지를 데려왔을지도 모른다. 소박한 집안 살림이 벽난로 주변에 보인다. 두 남자의 옷차림을 봐선 아주 부유하진 않더라도 딱히 큰 부족함은 없는 시골 사람들 같다. 이곳이 화가의 고향인 포르투갈의 시골인지, 화가가 공부하고 많은 시간을 보냈던 프랑스인지는 모르겠다. 남자의 머리에 쓴 모자와 둘이 신고 있는 신발이 딱히 포르투갈 스타일로 보이진 않는다. 확인해 볼 문제이긴 하나, 신발의 모양이 왠지 프랑스식 나무신과 비슷하다. 



#3. 

화가 주세 줄리우 드 소자 핀투는 포르투갈 아소레스 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공부하고 활동했다. 중간중간 포르투갈도 계속 방문했다고 하고, 프랑스와 브라질에서 전시도 여러 번 했던 화가다. 19세기 후반 자연주의 화풍을 따른 화가인데, 이 때의 포르투갈 화가들이 훌륭한 이들이 많다. 리스보아의 시아두 미술관이나 포르투의 소아레스 두 헤이스 미술관에 가면 이 시대의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실망한 손님’은 밀레니움 BCP라는 은행의 컬렉션 일부인데, 은행 컬렉션들이 자주 그렇듯, 상설 전시되어 있지 않아 원할 때 늘 볼 수가 없다. 내가 이 작품을 본 것도 3년전쯤 밀레니움 BCP 컬렉션의 전시장(리스보아 바이샤에 있다)에서 특별전을 할 때였다. 은행들이 미술 작품들을 대출금 대신 받기도 하고 일부러 작정하고 컬렉션을 하기도 하는데, 어찌되었건 은행들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나같은 사람이 만날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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