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미술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어딘가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게.
이른 아침에 한 번 나오기 전 한 번 호두를 산책시키고 까와 함께 느지막히 나와 말라가 구시가지에 도착하니 피카소 미술관 앞에 줄이 길다. 그저께 이 앞을 지났을 땐 줄 없었는데? 더 늦은 시간이라 없었나? 그래봤자 줄 서 있는 동안 미술관 사이트에 들어가 티케팅을 하다보니 줄이 꽤 많이 짧아질 정도의 길이긴 했다.
참, 스페인도 포르투갈처럼 실내 마스크 의무가 폐지됐다(2022년 4월). 단 병원이나 약국 혹은 대중교통 안은 여전히 써야 한다. 은근 헷갈린다.
2009년에 말라가에 와서 피카소 생가와 미술관을 갔던 건 잊자. 아니다. 이미 잊었다. 좋은 방향이건 안좋은 방향이건 예전 여행과 비교해봤자 나이듦의 늪에 빠질 뿐이다.
상설전과 함께 특별전 둘이 진행중이었는데, 두 전시 모두 좋았다. 피카소와 고전 작품을 마주보게 놓은 Cara a Cara 즉 '얼굴을 마주보고' 전시에선 뜻밖에 엘 그레코의 작품을 만났다.
부에나비스타 백작의 저택. 16세기 건물을 리모델링. 부에나비스타 저택 뿐만 아니라 근처의 몇몇 건물도 미술관 부지로 사용됐는데 그 과정에서 옛 도시의 성벽, 페니키아와 로마인 유적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가운데는 엘 그레코가 그린 아들 초상화. 양 옆 피카소의 신사들. 모두 목에 레츄기야(원래 양상추라는 뜻이지만 17세기 스페인 귀족 남성들이 목에 하던 깃장식을 부르는 말이기도)를 두르고 있다.
말라가 피카소 미술관은 피카소의 첫째 아들 폴(피카소 사망 후 2년 뒤 사망)의 부인이었던 크리스틴, 그들의 아들 베르나르가 기증한 작품들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즉 피카소의 며느리와 손자가 설립한 재단이 만든 미술관인 것.
여인의 두상. 1945.
파울라 레구의 전시가 있었다.
살아 있는 포르투갈 화가 중 가장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화가일텐데, 젊은 때 런던에서 공부했고, 지금도 런던에서 산다. (어쩌면 남녀불문 생사불문 현재 포르투갈 출신 중 가장 알려진 화가일 수도. 잉글랜드의 데임 작위도 받으셨다) 포르투갈엔 리스보아 근처 카스카이스에 파울라레구 미술관이 있다.
그러나 유명은 유명이고, 내가 뭐 현대미술 무식쟁이라 그렇긴 하겠으나, 그리 좋아할 수는 없었다. 카탈로그는 커녕 일유로짜리 엽서도 한 장 안 살 거 같은 그런.. 내 취향 아닌 그 무엇.
그런에 이번 전시를 보고 이분을 좀 좋아하게 됐다.
전시 규모가 꽤 크고 스토리텔링이 촘촘해서 그동안 이해 안 됐던 세계가 약간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전시 마지막에 화가의 인터뷰 장면이 나오는데 아, 1935년생 할머니가 너무 매력적이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니 너무나 매력적인 미카엘 천사.
원래 천사는 성별이 없다. 파울라 레구의 다른 그림들을 쭈욱 보다 이 미카엘 대천사를 보니, 그래, 미카엘 대천사는 정의로운 천사, 선인과 악인의 무게를 재는 천사인데, 다부진 몸에 형형한 눈빛의 여성이 미카엘이라니 얼마나 믿음직한지!
느낀 바는 이것저것, 손에 잘 안 잡히는 구름처럼 여기저기 떠다니지만
현대미술은 아는척 안하는 걸로..
추천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