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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 중독자 May 15. 2022

나의 두 번째 말라가 2

카르멘 티센 미술관


이번에 나를 말라가로 부른 건 카르멘 티센 미술관이다. 2009년 피카소의 고향에 왔을 때는 피카소 생가와 피카소 미술관이 있긴 했으되 전시된 작품이 스케치와 작은 규모의 판화가 대부분이어서 흥미를 잃었었다.


2011년 티센 남작부인이 자신의 개인 컬렉션으로 말라가 구시가지에 미술관을 열었고, 4년 뒤 퐁피두 센터가 부둣가에 알록달록 투명한 큐브와 함께 등장하면서 말라가는 스페인 남부 뿐만 아니라 지중해 해안 전체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는 예술 도시가 됐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게다가 내가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피카소 미술관도 상설전시 작품이 훨씬 다양해지고, 알찬 특별전을 갖추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도 피카소 미술관에서 열린 파울라 레구 특별전이었다.



말라가 항구의 퐁피두 센터.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전시장 입구가 나온다.






카르멘 세르베라, 즉 티센 남작부인과 스페인 정부가 카르멘 티센 컬렉션을 마드리드의 티센 미술관에 대여하는 문제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한 지는 꽤 오래 됐다. 그 긴 과정을 모두 이야기해서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고 싶진 않다.



판데믹이 절정이었던 2020년 4월, 남작부인은 마드리드 티센 미술관에 전시된 자신의 소장품 중 가장 대중적인 네 점을 문자 그대로 미술관에서 빼 버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모네, 드가, 고갱, 호퍼의 작품이었다. 스페인 정부와의 재계약을 놓고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를 쥐기 위해서였다.



뉴욕의 소더비 경매장에서 모네의 ‘채링 크로스 다리’가 2400만 달러에 낙찰되었고 드가의 작품은 더 이상 카르멘 티센 소장품 카탈로그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2021년, 스페인 정부와 카르멘은 고갱의 ‘마타 무아’를 포함한 컬렉션을 매년 650만 유로에 대여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2022년 2월, 마타 무아는 마드리드 티센 미술관으로 돌아왔다.



클로드 모네, 채링 크로스 다리, 1903

에드가 드가, 경주마, 1894



에드워드 호퍼, 웰플릿의 마사 맥킨, 1944 그리고 카르멘 세르베라

폴 고갱, 마타 무아, 1892


스페인 정부와 몇 년에 걸친 줄다리기를 하는 도중, 자신의 소장품으로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카르멘 티센의 바람은 2011년 말라가, 2017년 피레네 산맥의 도시국가 안도라에서 이루어졌다. 2023년엔 카탈루냐 지로나에도 카탈루냐 화가들의 작품이 주인공이 되는 카르멘 티센 미술관이 문을 열 예정이다.




말라가 카르멘 티센 미술관 입구. 말라가 구시가지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사연 있는 말라가 카르멘 티센 미술관. 말라가 구시가지 중심, 16세기 건축물 비얄론 저택에 자리잡았다. 19세기 이후 스페인 미술, 특히 안달루시아 화가의 작품 혹은 안달루시아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 주를 이룬다.


18, 19세기에 이국적인 풍광을 찾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스페인 여행 붐이 일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가장 짙게 남아 있는 안달루시아가 인기 여행지였다. 스페인은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로 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안달루시아 전통 의상과 강렬한 햇빛을 반사하는 흰색 벽, 더위를 피해 만든 안뜰 파티오의 정경, 이슬람 영향이 뚜렷한 전통 건축, 투우 등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그림이 그려졌다.




16세기 건물인 비얄론 저택의 무데하르 양식 나무 천장. 무데하르는 그리스도교 영토에 살던 무어인들의 양식이다.



마리아노 포르투니, 투우. 부상당한 피카도르. 1867년경, 카르멘 티센 미술관, 말라가


피카도르는 투우 중 말을 타고 긴 창으로 소를 찌르는 투우사이다. 부상당한 피카도르는 화면 뒤에서 사람들이 들고 나가고, 성난 황소와 나머지 투우사들이 한쪽 편의 대본만 완성된 싸움을 이어간다. 황소의 끝은 정해져 있지만 투우사들과 말의 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호세 가르시아 라모스, 스페인식 구애. 1883년경, 카르멘 티센 미술관, 말라가


흰색 벽, 나무 덧창 외에도 상자형 쇠 창살이 덧붙여 있는 창틀, 창틀에 기댄 집 안의 여성과 거의 얼굴을 맞대고 사랑을 속삭이는 말 탄 남자의 길이가 짧은 재킷과 알록달록한 허리밴드와 검은 솜브레로. 어머어머 저것 봐 하며 다가오는 다른 여성들의 프릴 달린 드레스에 화려한 무늬의 어깨를 덮는 안달루시아식 스카프. 하나도 안달루시아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나도 관광객이다보니 이렇게 안달루시아스러운 장면에 혹해서 이 그림의 엽서를 샀다.



이러한 분위기와 정반대로 자연을 담백한 시선으로 바라본 작은 크기의 자연주의 풍경화들이 19세기 후반에 인기가 높아졌는데, 이는 중산층이 미술 시장의 고객이 된 결과이다.


19세기말엔 스페인 화가들이 외국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화풍을 받아들였고, 스페인에서는 물론이고 파리에서도 성공한 라몬 카사스, 호아킨 소로야 등의 작품도 말라가 카르멘 티센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다리오 데 레고요, 꽃 핀 아몬드나무, 1905, 카르멘 티센 미술관, 말라가



라몬 카사스, 훌리아, 1915년경, 카르멘 티센 미술관, 말라가


라몬 카사스는 카탈루냐의 모데르니스모 운동 멤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모델 훌리아와는 훗날 부모의 반대(경제적 차이와 나이 차이 때문이었을 듯) 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호아킨 소로야, 멜론을 팔면서, 1890, 카르멘 티센 미술관, 말라가


내가 편애하는 작가 호아킨 소로야.

안달루시아 어느 마을, 바구니에 담긴 수박을 파는 사람들, 골목에 의자와 바느질거리를 들고 나와 앉아 있는 여인들, 한켠의 연못, 두레박, 오리들. 한참 들여다보면 나도 그 길에 도착해 있을 것 같은 순간.

스페인의 가난과 열악한 노동자의 환경을 그리기도 했으나 아무래도 그런 테마의 그림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진 못했고, 스페인의 풍경, 그 안의 사람들을 그린 그림과 초상화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말라가에서도 소로야를 몇 점 만날 수 있었다.




에두아르도 사마코이스 이 삼발라, 수도원으로 돌아가는 길, 1868, 카르멘 티센 미술관, 말라가.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된 화가. 빌바오 출신, 20대에 이미 실력과 수완을 갖춘 화가였으나 29세에 갑자기 사망하면서, 남긴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 까와 내가 동시에 좋아한 그림.

수도원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고집 센 당나귀와 누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수도사, 그 서슬에 박살난 과일, 배를 잡고 웃는 동료 수도사들, 점잖게 돌아온 동료 당나귀들, 무슨일이야? 뭐야? 하면서 뛰쳐 나오는 공중부양 검둥개. 다 너무 귀엽다.



참, 미술관 입장료는 10유로인데, 스페인 점심시간인 두시반-네시 사이에 입장하면 6유로다. 우리는 두시 십분쯤 도착했더니 친절하게도 매표소 직원이 알려줘서, 말라가 구시가지 산책을 하다가 시간 맞춰 들어가 할인을 받았다.



*개인 소장이라는 단어는 미술관 애호인간인 내게 늘 머리아픈 단어다. 칼라가의 카르멘 티센 미술관도 미술관이지만 그림의 소유는 카르멘 티센 컬렉션이다. 즉 언제 컬렉션 주인이 어디에 판매할지도 모르고, 모든 컬렉터가 자기가 어떤 작품을 샀다고 공개하진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 컬렉터에게 어디까지 기대를 해야하는가, 잘 모르겠다. 자기 그림이니까 자기 마음대로 팔 수도 있는 건 맞으나, 그동안 대중에게 공개해놓고 갑자기 그 기회를 없애버린다니. 드가의 경주용 말, 에드워드 호퍼의 푸른 바다와 흰 요트 앞에 한참 서성였던 기억이 있다. 아직 호퍼의 그림은 카르멘 티센 그림 목록에 뜨지만 언제 어디로 갈지 모른다. 허무하기도 하고 박탈감도 든다. 무엇보다 있을 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건 그림이건. 볼 수 있을 때 많이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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