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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Aug 21. 2022

어쩌다 보니 어둡고 아득한 곳을 걷고 있었다

나름 열심히 살았지만 손에 쥐는 것 없이 방황하는 삶

  대학 졸업 후 이렇다 할 곳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여러 곳을 전전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학에 가고 싶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때부터 내 인생은 울적했다. 내가 지금 아는 걸 아는 상태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고등학교는 중퇴를 하거나 아예 입학도 하지 않고 검정고시를 볼 것이고 대학은 웬만해서는 가지 않을 것이다. 가고 싶지도 않은 대학을 남들 다 간다고 간 결과 나는 고졸로 사회 나온 거랑 크게 다를 것도 없는 지금이 되었다. 나이만 거의 곱절 가까이 먹어버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뛰어든 취업시장은 듣던 대로 녹녹하지 않았다. 큰 기업은 물론이고 작은 곳이어도 그럭저럭 봐줄 만한 곳에 취업하려면 수개월에서 일 년까지 걸렸다. 그렇게 간신히 취업하고는 1년 버티기도 힘들었다. 직장이란 죽지 않을 만큼의 돈을 주고 죽을 만큼 부려 먹는 곳이었다. 몇 번의 이직을 경험하고서는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사 공부를 사부작사부작 오래 했다. 전공인 인력경영, 노동부에서 설립한 대학교를 버무려 나온 제일 그럴듯한 직업의 결괏값은 노무사였다. 그래서 졸업하고 일을 하면서 혹은 일을 안 할 때 항상 노무사 공부의 끈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상 노무법인에서 일해보니 내가 이런 걸 꿈이라고 꿨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는 일 중 주된 일은 근로자에게 가장 적은 돈을 줄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돈을 버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걸 나는 거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직업이나 그렇지만 노무사에도 등급이 있었다. 상위 10%가 아니면 먹고살기 힘들었다. 영업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여자 노무사들은 한 달에 기본급 50만 원을 받아갔다. 대학교 때 최연소로 노무사에 합격한 동기도 마찬가지였다. 그 동기가 공무원이 최고라며 공무원 준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걸 전해 들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한 노무사는 노무법인을 퇴사한 이후로 깔끔히 내 인생에서 지웠다. 나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그걸 꿈이랍시고 꿈꾸고 수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저 남들이 좋다는 것을 나도 좋아한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었다.      

     

  퇴사 후 소위 철밥통이라고 부르는 공무원 준비를 했다. 남들이 많이 하고 싶어 하는 건 웬만하면 피해오던 나였다. 하지만 할머니 돼서도 고정적인 수입이 나올 곳이 필요했고 내가 보고 들은 세상에서는 그 방법이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 하지만 내 길이 아니면 여지없이 사달이 나나 보다. 나는 긴 수험 생활을 맥없이 끝내버렸다. 방역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생겼고 거대한 사명감으로 공무원을 택한 것은 아니었으나 불신하는 집단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사회에 나갔다.     

     

  오랜 수험 생활을 끝내고 보니 세상은 코로나로 뒤집어져 있었다. 사실 코로나 덕에 수험생활이 더 길어진 것도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취업은 더 힘들어졌고 악착같이 합격해서 세상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알바를 구하려고 해도 사장이 나보다 어린 경우도 많을 정도로 나이가 먹어 버려서 알바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이룬 거 없이 나이만 먹었다. 지금 내 인생은 바닥이다. 뭐 하고 살지 막막하다. 세상에는 숱한 시련에도 극복하고 성공했다는 사례는 넘쳐나는데 지금 내게 그들은 모습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리고 기왕이면 책도 뭐라도 성취하고 나서 쓰고 싶었다. 지지리 궁상일 때 자폭하는 심정으로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실컷 좌절하다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이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수험생은 원래 결혼정보업체 등급상 탈북자 바로 위에 있다. 탈북자는 지원금이라도 나온다. 실제로 수험생이 바닥인 거다. 꿈을 이룬 후 모습을 나의 모습이라고 동일시해서 조금 버틸 수 있었던 거다. 지금까지 충분히 바닥이었다. 지금 바닥이라고 타박을 하는 건 그러니까 아주 새삼스러운 일이다.      

     

  지금의 내가 겪는 시련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힘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족한 경제력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집에서 사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거보다 더 최악인 경우도 많을 거다. 지금은 비록 깜깜한 터널을 지나가는 기분이지만 곧 빛이 밝아오고 긴긴 터널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터널이 좀 많이 긴 거 같긴 하지만 말이다.

     

이미지 출처_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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