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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Feb 29. 2024

굳이 분노하지 않아도  

열받게 구는 저 인간은 사실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에는 ‘아무도 죽은 개를 걷어차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있다. 학생 때 봤던 문장임에도 여전히 뇌리에 선연한 것을 보면 지난날 나는 특출나지는 않아도 온갖 재주를 다 갖고 있다는 이유로 수많은 까임의 대상이 될 때가 많았다. 숨만 쉬어도 욕할 거냐고 되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일일이 상처받고 일일이 분노했던 거 같다. 그럴 필요 없었는데. 그렇다면 요즘에는 상처받을 일이 없고 분노할 일이 없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요즘 나는 빵집에서 샌드위치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출근하면 입구에 샌드위치 코너부터 확인하는데 아무래도 날이 날인지라 사람들이 빵집에 와서 케이크를 사지, 딱히 샌드위치를 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전날 근무자가 만들어 놓은 것이 거의 팔리지 않았다. 출근은 이미 했는데 팔린 게 거의 없으니 만들 것도 별로 없어서 일이 거의 없었다.     


두 달이 넘게 주말 근무자 대신 대체 근무 중이어서 쉬는 날이 절실했고 안 팔린 샌드위치들을 보자마자 통밥을 굴렸다. 그날 사장이 매장에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샌드위치를 안 만들어도 될 상황인데 만들기까지 하고 있으니 아예 내일 팔 거까지 조금 더 만들고 크리스마스날 출근 안 해도 되냐고 물었다.


 사장은 딱히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1년도 넘게 이곳에서 일한 주말 매장 알바의 말에 따르면 지각도 되고 당일 펑크도 봐준다고 하는데 크리스마스에 출근 안 하는 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사장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단호한 태도를 보였고 눈으로는 ‘너는 지금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있어.’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완고한 태도여서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나?’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마치 사장은 정의의 사도고 나는 약당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에게 있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모두에게 정의인지 누구든 항상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주말 대체 근무 덕에 주휴도 못 받고 최저임금으로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누가 악당인지.      


 근데 이게 법으로는 딱히 하자가 없다. 처음에 근로계약을 할 때 주 15시간 미만으로 신고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지금 초과해서 일을 하고 있지만 급여액이 월기준보수의 두 배가 넘지 않는 이상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아냐면 내가 과거에 밥 벌어먹었던 일이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험생활을 할 때 나는 사대보험법 강의를 들어야만 했고 그 강의를 했던 노무사 밑에서 일을 했었다. 내가 했던 일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을 안내하고 돈을 버는 일이었다.     


  통밥을 굴린 대가로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도 크리스마스도 모두 출근했다. 양일 세 시간씩 일했다. 하루 일할 것을 사장이 쉬게 해주는 척하면서 야무지게 쪼갰다. 가뜩이나 주휴 때문에 근무 시간에 제약이 있는데 그걸 또 반으로 쪼개니 조금 화가 났다. 출근하는 게 제일 힘든데 크리스마스날 케이크는 못 줄망정 고작 하루 세 시간 부려 먹으면서 남들 다 노는 날 못 쉬게 하다니.     


 그때 생겨난 미약한 분노는 예상과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주말에는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토요일에 와 있었다. 1년 이상 주말 근무를 했던 분이 3주 후에 돌아오기로 내게 약속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2주만 더 대체 근무를 하면 되는데 아예 사람을 바꿔버린 것이었다.      


 졸지에 인수 인계를 하고 왔다. 뭔가 억울했다. 대체 근무를 한 보람이 없었다. 주말 근무자를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사람, 평생 같이 이곳에서 주말 알바하기로 약속했다던 주말 매장 알바도 화가 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석 달 이상 지속성을 가지고 주 15시간 이상 근무를 하면 사대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된다. 더불어 보수총액 신고할 때 적어냈던 월 기준보수액이 연이어 석 달이 넘을 것을 우려했던 것 같다. 넘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말에야 일이 없어서 근로 계약한 시간에 맞춰서 일을 할 수 있지만 평일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랑 크리스마스날 그렇게 악착같이 집에 보낸 건가.     


 애초에 주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을 시키면서 주휴를 안 주려는 몸부림이란. 사랑이 없는 곳에는 언제나 계산기와 폭력,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인 줄 알았으면 안 했을 것이다. 사대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들을 수 없는 강의를 듣고 있어서 선택한 일이었는데 그 강의는 이미 끝났고 지금 내게 남겨진 건 집에서는 설거지 한 번 제대로 안 하는 손으로 주 5일 주방일을 해버리는 바람에 시큰거리는 손가락뿐이었다. 알량하게 더 번 몇 푼 안 되는 돈은 벌써 통장을 스쳤고 말이다.


 주말 매장 알바가 사는 곳은 우리 집에서 십 초 컷이다. 주말 매장 알바는 빵집 말고 우리 집 근처 카페에서도 알바를 하는데 그곳에 나는 가끔 노트북을 들고 글을 쓰러 간다. 그러다 주말 알바 퇴근 시간에 맞춰 같이 퇴근할 때가 있는데 주말 근무자가 원래 일하던 사람도 나도 아니란 것에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때려치라며 자신도 곧 때려칠거라며 크리스마스날 내가 퇴근한 후에 사장이 제빵실 기사들에게 피자 돌린 일을 말해주었다.      

 거참, 사장이 나를 크게 엿 먹이려고 계속 열받게 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건비를 아끼고 싶은 것도 케이크는 팔아야 되니까 피자로 퉁치려고 했던 것도 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나란 존재에 철저히 관심이 없어서 생긴 일일 것이다. 전직 수학 강사 출신으로 지금까지 직원들 월급 계산을 틀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장의 계산하에 이루어지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내 안에 있는 분노 버튼이 눌리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가고 있었다.     


 며칠 전 일을 하고 있는데 웬 노인네가 매장 문을 열고 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딱히 인사를 하며 들어올 일도 없고 목소리가 사장 같긴 한데 그 목소리를 듣자니 관속으로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양반처럼 힘이 하나도 없었다. 사장인가 아닌가를 고민하고 있는 동안 내 시야에 사장이 들어왔다. 사장이 맞았다.      

 생각해보니 사장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으나 염색 안 하면 백발이고 하니 노년에 접어든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 숟가락집을 힘도 없는 것 같은 목소리를 듣고 나니 의도치 않게 나는 온갖 전의를 상실했다. 화가 나지 않았다. 원체 이기고 지는 것 따위에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굳이 이겨 먹겠다고 에너지를 쓸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었다.      


 나를 분노하게 하는 저 대상, 내 인생에 크게 의미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에너지랄게 별로 없는 존재라서 내 에너지 빨아먹으려고 작정하고 더 열받게 구는 걸 수도 있다. 그들의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일이 분노하며 내 소중한 에너지를 그들에게 주지 않겠다. 내 에너지를 뺏기느니 차라리 욕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욕도 아무나 먹는 거 아니라서 말이지.


      

이미지 출처_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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