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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Feb 29. 2024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는 것은

위 아래가 아닌 수평 상에서 관계의 모습을 말하다

 지난 관계에서 그러니까 우정이든 애정이든 끝난 관계 중에서 미련이 터럭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있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희한하게도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우정이든 애정이든 위가 있고 아래가 있어야 할 때가 많았고 여전히 많다. 돌아보면 고통만이 가득한데 미련이 남아있을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책 <언어폭력>에서도 상하관계에서는 필연적으로 폭력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건국 전 조선의 사상적 기반은 유교로 충과 효를 강조한 상하관계를 근간으로 한다. 조선은 500년이 넘게 존속했고 대한민국이 된 지는 100년도 되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이곳은 상하관계가 숨 쉬듯 익숙한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무너진 신분제를 나이 문화가 대체했다고 한다. 서열이 뿌리 깊숙이 박혀있다.      


 이쯤 되니 우리나라에 유교를 가져왔다는 사람에게 왜 가져왔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 유교를 가져왔다는 사람, 안향이란 사람인데 내 시조라는 거 같다.     

 

 물론 조선 후기 신분제 문란으로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쯤 되는 사람이 사실은 노비인데 어쩌다 모은 돈으로 돈 주고 족보를 사서 양반행세를 해서 사실은 시조가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진짜 양반이었다면 응당 받아야 할 대가일 것이고 가짜 양반이었다면 하필 사도 그런 족보를 산 업보랄까. 상하관계는 내게 항상 폭력으로 다가왔다.     

 

 학생 때까지는 상하관계랄 것이 없었다. 굳이 있었다면 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적이 뛰어나다고 할 건 아니었지만 딱히 나쁜 적은 없었으므로 상하관계로 인한 고통은 없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난 후 나는 수험생 신분일 때가 많았고 돈이 있을 때가 별로 없었다. 학생때는 성적이었지만 성인의 세계에서는 돈이 권력이었다.       


 그래도 친구 만나면 내 밥값은 신세 안 지려고 했는데 유독 밥값을 절대 못 내게 하는 친구가 있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는데 언젠가는 그 친구가 일주일에 이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직장인 수험생인 나에게 밥을 못 사게 할 때가 있었다. 하물며 나뿐만 아니라 고액연봉자인 다른 친구한테도 밥을 못 사게 한다는 말을 건너 들었다.      


 이쯤 되니 어이가 없어서 왜 밥값을 맨날 못 내게 하냐고 물으니 그 친구는 자신이 밥을 사는 사람이고 돈을 내는 사람이니 자신이 더 높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니 얹잖은 감정과 별개로 이런 말을 하다니 얘가 머리가 좀 모자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간 얻어먹은 밥을 다 토해내고 싶었다.     


 가뜩이나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중요한 시험을 한 달 앞둔 어느 날은 독서실에 안 오던 독서실에 굳이 찾아와서는 내가 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간 적도 있다. 어이가 없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예 저주를 퍼붓고 갔다. 어쩌자고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내가 억하심정으로 보복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싶었다. 그 친구 성적이 별로 안 좋았긴 했는데 그것과 별개로 지성이 모자른 건 확실한 거 같았다. 고등학교 때 친구였는데 그 말까지 들어버리니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그때는 마음은 마음대로 아팠고 내 지난 세월도 아까웠다. 이럴려고 친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더 볼 수 없다고 해도 마지막이 굳이 이런 모습이어야 했을까.     


 비단 망한 우정 뿐만 아니라 망한 애정도 크게 다를게 없었다. 우정을 쌓고 애정을 쌓고 싶었는데 그들은 서열을 쌓고 있었다. 되지도 않는 갑을을 따지면서 말이다. 나는 그런 거 따질 생각이 없었는데. 위가 있고 아래가 있으면 내 기준에서는 친구도 연인도 아니다.      


 과거에는 내 잘못인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자신들의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위 혹은 아래에서 찾아야만 안도를 느끼는 사람들과 엮였을 따름이었다. 위아래를 따지는 사람과의 관계는 여전히 불편하다.      


 이제는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별로 없고 있어도 가능하다면 멀리하는 걸 넘어 훌쩍 떠나 버리지만 일정 기간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할 때는 거리를 최대한 멀리 둔다. 그 멀리 두는 방법이란 게 별게 없다. 물리적 정서적 접촉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거리를 둔다고 하면 괜히 인간미 없어 보이고 치사한 거 같고 그랬는데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거리는 관계에서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 공간은 부정적인 감정의 폭풍을 막아주기도 마찰로 인한 불길이 한 김 식을 동안 시간을 벌어주기도 한다. 관계 안에서 물음표가 떴을 때 거리만큼 생긴 공간은 생각할 시간을 내어주어 사유의 결과로 ‘오해’가 ‘이해’란 것이 되기도 한다.     


 관계에 있어서 천장까지 들뜬 감정과 바닥까지 가라앉은 감정, 맹목적인 긍정과 막연한 불신 그 모두가 문제가 되기에 거리는 필수다. 물음표가 떴을 때는 거리를 멀찍하게 하고 그 물음표 느낌표가 됐을 때 기뻐하며 다가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과의 거리를 조절해나간다. 거리를 조절하는 모습을 배속으로 돌리자면 사람들이 때로 마주하기도 하고 등을 돌리기도 하면서 연신 거리를 좁혔다가 넓혔다가 하니 흡사 스텝을 밟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관계 안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느린 춤을 추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고통만이 난무하는 관계에 사람들이 꽤 염증을 느껴서인지 이제는 좋은 사람들도 만날 때가 돼서인지 제법 좋은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앞으로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느린 춤을 추면서 말이다. 


이미지 출처_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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